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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치 Apr 04. 2018

근무시간중의 ‘딴 짓’을 생각하다


내가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있는 모 기업의 리셉션 데스크는 그야말로 ‘꿀알바’다. 내방객들 안내와 우편물 분류가 대부분인 이 아르바이트는 서비스직의 범주에 들면서도 푹신한 의자에 앉아 추울땐 따뜻하고 더울땐 시원하게 일한다. 내방객이래봐야 그날그날 편차를 감안하더라도 하루 평균 3-4건을 넘지 않으니 그야말로 꿀알바인 셈. 나는 근무시간 5시간 내내 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쓰면서 또 실감. 완전 꿀알바.

나는 1시부터 6시까지의 오후를 맡고, 오전을 맡은 이는 따로 있다. 12시 50분 경 도착해 간단한 인수인계를 마치면 그이는 퇴근하고, 내가 바통을 넘겨받는다.

미래를 생각해 하는 일도 아니거니와, 근무시간도 분리되어 있는만큼, 우리는 서로의 스타일에 대해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특히, 쉬어야 하는 사정이 생길 경우에는 상대에게 종일근무를 부탁해야하니, 일단 잘 지내고 보는게 서로에게 좋은 일임을 잘 이해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평소보다 좀 일찍 출근했던 어느날, 나는 아직 로그아웃하지 않은 동료의 컴퓨터 화면을 보게 되었다.

“어, 넷플릭스네요?”

내가 아는체를 하자, 동료가 웃어보였다. 별것 없는 인수인계를 마치고서 그이는 곧 퇴근했다. 빈 자리를 넘겨받아 사내 메신저에 로그인 하면서, 즐겨찾기에 추가된 넷플릭스와 기타 사이트들을 훑어본다. 동료의 무료함을 달래는데 일조했을 이름들이 줄지어 리스트에 올라있었다.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다. 걱정이 엄습해온다. 행여나 그가 영화를 보고 있는 사실이 문제가 되어, 내가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일 마저 제재가 걸리면 어쩌지. 이걸 누구한테든 말해서, 눈치를 줘야할것 같은데. 누구한테 말하지.

고민중에 문득 오늘 근무시간에 읽으려고 가져온 책이 눈에 들어왔다. 다섯시간 동안 집중해 읽고, 리뷰까지 마치려던 문고판 단행본 추리소설이었다.

불현듯 머쓱해졌다. 그러니까 ‘엄연한 근무시간’에 책을 읽는 내가, 역시 ‘엄연한 근무시간’에 영화를 본다고, 그를 비난하는 거였다.

넋을 놓고 앉아있다가, 과거 귀밑 15cm에 염색 및 펌을 금지했던 고등학교 두발제한규정을 떠올렸다.


일학년 때, 같은 반에 선천적으로 머리 색이 엷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머리카락은 잦은 고데기에 상해 점점 붉은 빛을 띠게 되었는데, 맑은 날 운동장 조회라도 할라치면 햇볕을 받은 머리가 유난히 붉게 빛났다. 충분히 예상 가능하겠지만, 그 친구는 ‘불량학생’으로 낙인찍혀 수도 없이 교무실에 불려가야 했다.

반면, 태생이 곱슬머리인 나는 단정하고 차분한 머리를 원해서 주기적으로 ‘스트레이트 펌’을 했다. 칠흑같은 검은빛으로 염색도 자주 했는데, 학주선생님이 머리검사를 할 때면 종종 나를 지목해 예시로 들었다. 나처럼 하라고 했다. 나를 가리켜 모범적 학생의 정석이라고 했다. 우리는 교칙의 모순을 비웃었다. 머리색이 빨간 그 친구만 불쌍하게 된 꼴이었다.


오늘, ‘넷플릭스’와 ‘소설책’, ‘컬펌’과 ‘스트레이트펌’의 사이에서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생각한다. 염색과 펌을 금지했던 학교의 규정은, ‘검은색 직모’ 머리를 가진 학생만을 인정하려던 걸까.


나는 어떤 딴짓을 제한하려던 걸까. 알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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