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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치 Jul 31. 2021

우리, 이혼할 수 있을까  #1

그렇게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된다.





 이혼을 결혼의 파괴적 결말로 본다면 이 글은 고작해야 수치와 모멸의 기억, 그리고 구토하듯 쏟아낸 분노의 토사물에 그치게 될 것이다.

 다행히 그런 쓰기도 읽기도 고역스러운 것을 굳이 연재씩이나 할 악취미도 없고, 어떤 모습에 학을 뗐는지, 나는 그에 비해 얼마나 더 결혼생활에 충실했는지 따위를 고해바치며 X를 비난받게 할 뜻도, 그렇게 비교우위에 서려는 욕심도 없다.

 그냥, 읽을만한 걸 써볼 생각이지.


 그러니까, 하필이면 내 이혼을 이유로 브런치에 복귀한 것은 누군가의 위로나 감정의 배설을 원해서가 아니라, 이게 글쓰기 좋은 소재라서에 더 가깝다. 뭐, 쓰다보면 나오겠지. 내가 쓰는 것이 글인지, 넋두리인지.


 연재분량이 쌓이는 만큼 우리는 멀어지고, 또 멀어져서 언젠가 완전히 사라지는 날도 올 거다. 그때, 나는 작품 하나를 낸 성취감을 느끼면서 오롯이 너 없이 그 행복을 누리고 싶다. 만약 다른 누군가와 사랑하게 된다면 더 좋겠고.




 


 쓰겠다 마음 먹었을 때, 불현듯 수년 전 누군가 지적했던 내 비대한 '에고'를 떠올렸다. 한문장 한문장마다 그걸 되새기면서, 적어도 내 세계에 갇혀 피해의식에 수몰된 언어로 X를 재단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감정이 너무 들어가면 지우자. X를 격없이 비난해서도 안된다. 이 글은, 명확히 우리 부부가 이혼에 구두합의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매일의 기록이다.

 그럼에도 넌 분명 세상에 유례없는 개새끼지만.







 지난 4년간 이혼 위기는 차고 넘쳤지만 둘 중 누구도 최후의 마지노선은 넘지 못했다. 무서웠다. 성급하게 뱉은 말 때문에 우리가 영영 갈라서게 되는 것, 그렇게 해서 정말 너를 잃게 되는 것이 겁났다.


 지난 일요일, 내가 뭐라고 운을 떼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제까지와 다르게, 무척 침착했다. 울먹이지 않았고, 분노로 몸을 떨지도 않았다. 생소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이혼이 두렵지 않았다.


 이혼을 결심하게 된 날은 지지난주 목요일이었다.

 몇주 전부터 공유캘린더에 등록되어있던 X의 강원도 강의 일정이 그날이었다. 시간이 하루종일로 되어있기에 시간설정을 깜빡한줄로 믿었는데, 출근 직전까지 아무말이 없기에 X에게 그 일을 물었다.


"오늘 원주 가?"




 사실상 4일만에 시작된 대화였다. X는 그주 월요일부터 쭉 전화 한통, 메시지 하나없이 내가 잘때 들어오고 출근 이후까지 잤다. 우리는 주 생활시간이 완전히 반대에 가까운 부부였다.


 그 아침도 말을 걸고 싶어 걸었다기보다는, 아마도 습관에 가까웠지 싶다. 오늘 네가 먹은 점심메뉴, 머릿속의 주된 이슈, 저녁은 혹시 나랑 먹을건지, 주말엔 우리가 같이 뭔가 할 수 있는지 같은 시시한 질문들을 하는 것. 연애하며 길렀고 너를 위해 버려야했던 습관들.

 반대로 X는 내 일정이나 안부를 구태여 묻지 않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내게 일일이 말해주기도 꺼렸다. 그래서 만든것이 공유 캘린더였다.


 


"어. 오늘 원주에서 강의있어.

 1박할 것 같은데."




 심드렁하고, 평온한 목소리에 울컥 눈물이 솟았다.

1박. 안 물어봤으면 넌 오늘도 그냥 갔겠구나. 밤이 늦어 전화하면 "지금 원주. 자고 갈게." 했겠구나.

 응, 잘 다녀와.

 건조하게 인사하고 집을 나섰다. 출근길 차 안, 많이 울었다. 외로웠다.









나 사랑받고 싶어.
나도 그럴 자격 있잖아.


 해피엔딩을 담보로 한 이혼선언은 의미없이 상처를 주고받는 힘겨루기에 지나지 않는다. 막상 진짜로 결심하고 보니, 미움이 넘쳐 홧김에 뱉었던 과거의 이혼선언들은 그야말로 애끓는 사랑의 표현에 불과했다. 내가 이렇게나 힘든데 왜 날 다독여주지 않는거야? 이혼하자고 할 만큼 힘들다고! 제발 날 좀 바라봐 줘!


 날이 새도록 효과도 없는 이혼협박만 줄창 내뱉다보면 아주 진이 다 빠졌다. 그중에도 제일 진 빠지는건 화해였다. 악에 받혀 연신 고함을 질러대다가도, 물 한잔 마시는 찰나에 눈이 마주치면 곧 화해로 이어졌다.

 우리 싸움이 매번 그랬다. 화를 낼 만큼 내고나면, 그와중에도 꼬물거리는 너의 엄지발가락이 못 견디게 귀여웠다. 혹은 포동포동 살 오른 네 볼떼기를 나 자신보다 더 사랑했거나. 역시 그놈의 사랑, 사랑이 문제다.


 그러니 목요일로부터 수 일이 지나도록 너에게서 어떤 사랑스러움도 발견하지 못한 것은 곧 사랑의 종말이다. 너와 싸우고 싶고, 화를 내고 싶고, 네게 사과받고 싶지 않은 것이 그 증거다.

 눈물의 출근에 이어 혼자 주말을 보내며, 나는 비교적 차분하게 일요일 저녁을 기다렸고, 명랑한 얼굴로 너와 마주앉았다.




"이제 그만 헤어지자.

각자, 자기 행복을 찾아서 가자."




눈물이 나지 않았다. 정말로 전혀 두렵지 않았다.

네가 없는 나의 날들을 하루빨리 되찾고싶어서 조금 웃음이 나고, 조금 설레기도 했다. 이 결정을 하게 된 사실이 뿌듯했다.


그러니까, 도무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던 나만의 너는 이제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1  그렇게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된다. 끝.

- 주1회 시리즈 연재 중입니다.

- 메인이미지 출처 :

https://www.barandbench.com/columns/indians-need-uniform-grounds-for-divorce-or-none-at-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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