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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치 Feb 07. 2022

우리, 이혼할 수 있을까 #2

엄마가 늙어있는 집

 


  작년 추석, 이혼을 마무리한 후 처음으로 엄마를 보러 서울에 갔다. 엄마의 집은 내 식대로 말하면 '임시거처'같았는데, 일단 서향에 가까워서 볕이 거의 들지않았다. 그늘진 집은 빨래도 잘 안 마르거니와, 부엌이며 거실에 습하고 추운 기가 돌아서 집 내부를 보고 있으면 새벽녘 필터를 씌운듯 스산함마저 감돌았다.


 또, 살림살이도 너무 많았다. 근 40년간 모아온 엄마의 세간은 고작 열평 남짓한 빌라에 욱여넣기에는 많아도 너무 많아서, 현관을 열자마자 보이는 사방의 벽이 잡동사니로 그득했다.



"엄마, 집에서 냄새 나."

"무슨 냄새?"

"몰라, 냄새 나."




 엄마가 부스스한 얼굴로 창문을 연다. 손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옆 건물 벽이 시야를 막는다. 갑갑했다. 엄마는 이미 익숙해졌는지 집의 월뷰(wall view)에 대해 별 감흥이 없어보였다. 딸과의 인사는 그걸로 끝이었다.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꺼내며 식사준비에 집중할 따름. 난 먹겠단 소리도 안했는데.


 못본사이 엄마는 진짜 환자가 되어있었다. 숙려기간을 거쳐 내가 단독세대주의 등본을 갖게 되었던 그 시기에 당뇨위험판정을 받았는데, 그때 나는 이 참에 다이어트 하는거지, 하면서 엄마의 시련을 외면했었다. 변명하자면 그때는 당장의 내 삶, 그외 어느것에도 마음 쓸 겨를이 없었다.



"별로 맛은 없는데, 그래도 먹어볼래?"



 엄마가 저녁으로 먹는 것은 간을 하지 않고 토마토와 계란, 우유를 넣어 끓인 일종의 스프였다. 뭐든 전해듣는 것은 직접 보는것만 못한지, 그저 엄마의 힘빠진 푸념으로만 생각했던 당뇨관리의 고충은 직접보니 상상 이상으로 거북한 것이었다.


 그제야 식탁이 눈에 들어온다. 엄마는 그동안 무슨 맛인지도 모를 건강식품들을 밥이며 반찬삼아 끼니를 때워 온 거였다. 그 풀죽같은것을 먹고 난 엄마는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버렸다. 



"벌써 누워? 나랑 운동 가."



 나가자는 말을 재깍 알아들은 강아지들만 신이 나고, 엄마는 침대에 더욱 깊이 몸을 묻는다. 이불속에 숨은 엄마의 침묵이 길어지자, 나는 하릴없이 서서 집안을 둘러보았다. 냉기가 감도는 그늘진 방, 늙은 개와 약상자들, 켜켜이 쌓인 잡동사니와 묵은 냄새. 나는 그때 돌연 깨달아버렸다. 엄마의 무력함을.


 덮치듯 찾아온 허탈감에 정신을 빼앗기고 멀거니 서서, 나를 등지고 누운 엄마의 실루엣을 바라본다. 간헐적으로 떨리는 듯 싶던 몸이 들썩였다. 엄마가 흐느껴 울며 일어나 앉았다.



"너무 미안해. 우리 딸, 엄마가 힘이 없어서. 엄마가 쓸모가 없어서 미안해. 너 힘든데. 엄마가 버팀목이 되어줘야 하는데."



 서른여섯에 사별하고 삼십여년을 홀로 살아온 엄마는, 마치 본인의 박복함이 원인이 되어 그 삶을 내가 물려받기라도 한 것처럼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는 한대 크게 맞은것처럼 휘청였다. 착각에 빠져있었다.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필사적으로 일상을 지키며 이혼을 마무리하기까지, 까딱하면 나를 쓰러트리고 말 그 이혼의 타격들에 맞서 내가 완벽하게 이긴줄로만 알았는데,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혼의 풍파로부터 나를 지키는동안, 엄마가 쓰러져있었던거다. 





 나는 이제, 엄마앞에서 세상 두려울 것 없는 대장부다. 내가 무너지면 엄마가 무너질 것을, 내가 의연해도 엄마는 이미 간신히 부여잡고 있음을 알기때문이다.


 시시때때로 나에 대한 불신과 막연한 불안감, 좌절감이 엄습해오지만, 나는 망설이거나 징징댈 여유가 없다. 갈길이 멀다. 무너질 수 없는 이유가 너무 많다. 무엇보다도 나는, 증명해야 한다. 엄마는 지금 그대로 충분하고, 당신의 딸은 이렇게도 훌륭하게 한 어른으로 성장했음을.


 이혼 6개월차, 예상치 못한 난관은 여전히 불쑥불쑥 찾아오고, 그때마다 엄마는 한숨과 쓴 눈물을 삼키지만 나는 그때마다 당당하게 외친다.



"결혼이 망했지, 내가 망했어?

울지마! 왜 울어! 이게 울 일이야?!"





나는 괜찮다. 괜찮기 때문에 괜찮다.

나는 나를 응원하고, 행복할거다.

그러기위해 결정한 이혼이니,

그 선택을 내가 책임진다.


매일밤 막막하고, 기대된다.





오래 기다리셨죠. 기다리신 많은 분들께 죄송합니다.

연재를 결심했지만, 쉽게 글을 쓸 수 없었어요. 당시의 저는 약해지면 안됐거든요. 혹시나 글을 쓰다가 감정에 사무쳐 울까봐, 그것이 저를 나약하게 할까봐 겁이나서 지난 6개월간 이혼과 그 심경에 대해 일부러 더 외면하고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간의 일들을 풀어낼 수 있을만큼 단단해졌어요.


약속했던 이야기를 이제부터 조금씩 풀어가겠습니다. 외람되지만 위로는 받지 않습니다. 저에게 쓸 동정은 슬프거나 불쌍한 사람에게 두배로 전해주세요!


그리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용치 올림-





메인이미지 출처

 : https://burnerlaw.com/changing-your-will-in-the-middle-of-a-divo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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