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치 Feb 10. 2022

우리, 이혼할 수 있을까 #3

쫓던 자와 쫓기던 자


 이혼사유의 태반이 '성격차'라는데, 우리도 다를게 없었다. 평생 남의 일로만 보고 듣던것을  입에 올리는 기분이 묘했다.


 일테면, 싸움과 화해의 반복끝에 이혼에 이른 지난한 과정을 '성격차'라는 세글자로 축약하는 것에 대해 "내가 얼마나 미칠것 같았냐면-" 하면서 부연해야 하는지, '안그래보이는데 쟤도  성깔 하나보네.' 라고 생각하든말든 냅둬야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서류제출일이 정해지기까지 엄마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이 결정을 말하지 않았다. 그냥. 결혼을 내가 결정했듯 이혼도 내가 결정한다. 결혼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조율해나가는 과정이라 한다면 우리는 열심히 노력했고 그 결과, 포기를 선택했을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타인의 의견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식상한 부부싸움의 장면들을 일일이 열거할 생각은 없지만, 우리가 이혼을 결정한 대략의 사정은 기술해두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우리가 극복하지 못한 '성격차'에 대해 아주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있다.(집어쳐)


 그건 성격을 다루는 학문 '에니어그램'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걸 방패삼아 '이것봐 역시 우린 이혼할 수밖에 없는 사이였어. 어때, 내 말이 맞지?' 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강조하건대, 이혼은 그냥 이혼이니까.




https://www.bestenneagramtest.com


 인간성격을 다루는 학문 중 하나인 '에니어그램'은 반응방식에 따라 사람을 공격과 순응, 후퇴형으로 나눈다. 공격형은 대결구도를 통해 상대의 우위에 서는 반면, 후퇴형은 겁먹은듯 움츠러들어 자취를 감춘다. 순응형은 또 다르다. 맞서지 않고 상대에게 융화되기를 택한다.


 나는 순응형, X는 후퇴형이었다. 액팅(acting)과 리액팅, 쉽게말해 티키타카가 중요한 순응형과 '저는 아무 생각이 없으니, 제발 묻지 말아주시오', 로 일관하는 후퇴형은 소통에 관한한 서로에게 가장 쥐약같은 관계임이 분명했다. 응답을 채근하는 나를 피해, X는 전력으로 도망쳤다.



 "그래, 나도 그게 맞는것 같아. 좋아요. 우리 이혼해요."



 그래서 나는 이 전에없이 확실한 X의 의사표현에 조금 당황했던 것 같다. (이런사람 아니었잖아.) 내게 결혼이 족쇄같고 감옥같았다면 네게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테지만, 그는 과거 연애 당시 나를 아프게 했던것과 꼭 같은 방식으로 사무적인 태도를 보였다. 서류는 내가 준비할게. 너는 집을 알아봐. 우리 최대한 빨리 마치자. 이번엔 절대 흐지부지 하지말자.





 반응방식이란 달리 말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한 행동패턴이다. 공격형이 상대를 제압하고 성취하듯, 순응이나 후퇴형도 나름의 방식으로 목적을 이룬다. 의사표현이 힘든 X에게 지치지도 않고 물어댄 나의 공격적 성취방식은 말할것도 없지만, X도 조용히 일관된 공격을 이어갔다.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이 공격하지 않는 '비폭력 평화시위'의 공격성을 이해한다면, 후퇴형의 고집스런 침묵 역시 가열찬 공격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둘의 공통점은 상황이 절망적일수록 화력을 더하고, 종국에는 상대를 미치게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유형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상대를 미치게 만들 수 있다)


 인간은 스트레스가 커지면 시야가 좁아진다. 합리적, 이성적 사고를 거치지 않고 더욱 자기 방식에 목매게 된다. 우리도 그랬다. 그것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줄을 알면서도, 전심전력으로 각자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몰랐다.


  그런면에서 이혼통보는 갈데까지 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후이자 최강의 공격이었다. 이 결혼을 파괴하는 것은 네가 아니라 나라고 알림으로써 상대를 완전히 밟고 올라서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아침저녁으로 이혼 실행의 진척을 업데이트 해오는 X를 보면서 최초의 이혼 발언이 정말 내 입에서 나온게 맞는지 불쑥 의심스러워지고는 했다.










메인이미지 출처:  : https://burnerlaw.com/changing-your-will-in-the-middle-of-a-divorce/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이혼할 수 있을까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