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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치 Mar 29. 2022

우리, 이혼할 수 있을까 #11

나도 엄마가 있는데.



 당장 응급실에 갔다. 식중독은 아니었다. 사실, 별 진단이 안나왔다. 먹던대로 먹었고 친구들은 괜찮은데 나만 이러니, 음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약을 처방받았고, 당분간 밀가루와 육류, 유제품을 멀리하라는 말을 들었다(맙소사) 고기 못먹는것보다 빵 못먹는게 더 힘든 나는 그게 그렇게 서글펐다.


그래도 아침으로먹는 빵은 절대 포기하지 못해서 누가 뭐라든 그냥 먹었는데, 이것저것 시도해보니 알러지가 더 크게 나타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커피나 화학조미료가 들어간 인스턴트 음식들은 아주 뒤집어졌고, 아침으로 먹던 크루아상 정도는 무난했다. 가장 좋은건 김치와 밥이었다. 아무 알러지 반응이 생기지 않았다. 좋은거지만 명백히 말하건대, 하나도 안 좋았다.


고기들어간 육개장 먹었던 때.

 

 못먹고 출근해 못먹고 일하다 못먹고 뛰니 다이어트는 참 잘 되더라. 작아도 힘이 좋아서 남의 손 안빌리고 뭐든 척척 다해내는 사람이었는데, 기운이 빠지니 손에도 힘이 잘 안들어갔다. 세상 처음 내가 연약하다는 생각을 다 해봤다.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그때까지도 힘들다거나 스트레스 받고있다는 생각을 안 했었다. 힘들다는 생각조차 호사였다. '일이 생기면 해결하면 그뿐'으로 어떡하냐며 발 동동 구르거나 어물거리고 있을 틈이 없었다. 이사도 이혼도 벅찰만큼 진도가 빨랐다. 그와중에 회사일도 바쁘기가 아주 피크였고, 크루 운영도 손 놓을 수 없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줄 몰랐다. 힘들면 힘든대로 바둥거리면서 가능한만큼 해내고 말지, 내가 못하면 그냥 말았다. 도와달라며 남한테 기대는걸 싫어했다. 약자가 되는 기분이 싫었고, 그렇게 나를 낮추며 건넨 부탁을 거절당할까봐 두려웠다. 이혼 역시, 내가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내 이혼에 있어 가족은 사실,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빠는 말할것도 없으니 그냥 논외로 치고, 엄마는 오히려 내가 병간호를 해야할 판이었다.


 한번씩 시어머니나 X가 나를 내치는 언행을 할때면 엄마는 그날로 몸져누웠다. 전화로는 개새끼소새끼하면서 뺨이라도 올려붙일 기세로 욕을 하다가도, 막상 사위를 보러 남해에 오는것을 두려워했다.


 엄마는 무서웠던거다. 일말의 미안함이나 죄책감도 보이지 않는 X나 시가 식구들이 엄마에게도 똑같이 무례하게 굴까봐. 내 딸이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살면서 이런 대접을 받고 이혼해야하는 상황을 직접 대면할만큼 엄마는 강하지 않았다.


 애초에 누군가 나를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이혼을 결정하지도 않았을거다. 처음부터 내가 결정하고 내가 진행한 일이니 내가 책임을 진다. 그치만, 나도 엄마가 있는데. 딸이 이런 일을 겪는데 엄마가 좀 든든하게 큰소리좀 쳐주고 한다면 참 좋으련만, 내가 그런걸 바랄 수 없다는게 조금, 조금 서러웠다.


 특히나 시어머니가 막말을 할때 제일 그랬다.





 그때까지 나는 아직 그집에 살고있었다. 시어머니는 아들 일이라면 눈이 뒤집혀 달려드는 전통적 어머니들의 표본같은 분이셨다. 며느리일때도 자나깨나 아들을 끼고 사시는 분이었지만, 이제 혼자 될 아들에 대한 걱정은 그분을 더욱 매섭게 만들었다. 나는 종종 위협받았고, 때때로 비웃음과 질책을 들었다. 혼자라는 사실도, 이걸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다는 사실도 슬프고 외로웠다. 그래도 한번도 안 울었다.


 이사를 며칠 앞두고부터는 많이 심란하셨는지, 시어머니가 마주칠때마다 계속 태도를 바꾸셨다. 살이 쪽 빠진데다 발진이 울긋불긋하게 올라온 내 몰골을 보고서, 못내 마음이 아파 이런저런 걱정을 하시다가도 또 돌아서면 태도가 돌변해 잔뜩 날을 세우고 나를 몰아붙이시기도 했다.


 그때쯤에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었다. 진짜로 좀 휘청거렸다. 편두통이 생겼고, 알러지는 사그라들줄을 몰랐다. X는 내가 알러지 올라온 모습이 마음에 안드는 모양이었다. 지나가다가 한마디 툭 던졌다.



"혼자 힘들고 아파보여서 좋겠네요. 불공평하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뷰와 관심은 항상 언제나, 무한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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