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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치 Apr 01. 2022

우리, 이혼할 수 있을까 #번외

혼인신고하면 잘 살 줄 알았다



 요즘은 신혼부부들이 결혼식 올린 후에도 혼인신고를 잘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평균적으로는 아이를 가지면서 하는 것 같은데, 아마도 그전까지는 최대한 돌이킬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기 위한 선택이지 싶다.


 결혼을 결정한 2018년, 내 친구들도 하나같이 그렇게 말했었다. 절대 혼인신고하지 말고, 길게 여행 떠나듯이, 그냥 시골살이 체험하듯 살아보러 가라고 했다. 마치 미래에 닥칠 이혼을 미리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평소 주위에 의견 묻기를 밥먹듯 하지만, 귀가 닳도록 듣고나서 결국 답은 내가 정하는 뚝심있는(?) 사람이다. 친구와 가족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다음해 초, 내 뜻에 따라 혼인신고를 했다. 혼날 것 같은 일은 일단 저지르고 나서 통보하는게 효과적이므로, 혼인신고도 그렇게 했다. 친구들은 어처구니를 잃었다.





 짧은 결혼생활이 이혼으로 마침표를 찍기까지, 주위에서 가장 많이 물었던 것이 '서울 언제 갈거냐' 다음으로 '혼인신고 했었냐'는 말이었다. 서울 왜 가. 나 안 갈거고, 했었다고 대답하면 '하지 말지 그랬어' 하는 탄식이 이어진다. 아니 왜 나도 안쉬는 한숨을 너네가 쉬어. 쉬지마.


 오늘은 휴대폰을 뒤적이다 발견한 2018년, 결혼식 두달 후에 적었던 혼인신고에 관한 메모를 공유해보려고 한다. 이것으로 누군가의 눈엔 성급한 실수, 또는 과오에 불과할 혼인신고가 내겐 치열한 노력의 일부였음이 전달되길 바란다.





2018. 12. 13. 오후 6:09


시골에서의 삶은 멀리서 보면 푸르고, 정작 긴장감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복귀를 염두에 두고 이곳에 정을 붙이기는 어려웠다. 일종의 스파이같다고 여겼던 것 같다. 언제라도 태세를 바꾸고 나의 조국, 나의 진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있지만 현재에 충실한 사람처럼 보이기는 내가 잘 할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니었다.


잠을 설치고, 책 한장 쉽게 넘기지 못하고, 정작 하루의 삶을 살기에 급급해 시간만 점점 흘러가는 것을 망연히 바라보면서 나는 이게 대체 어디서 부터 잘못된건지 헤아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나서 깨달았다.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고, 마음에 없는 말을 못하는 내가 실패한다면 하루빨리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이곳에서 잠시 살아본다는 작전은 그야말로 궤변이었음을. 나는 실패를 전제로 이곳에 왔음을. 나는 나에게도 거짓말을, 더욱이 X에게 너무나도 큰 거짓말을 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는 모두의 의견을 고루 반영하여 최적의 선택을 했다고 자위했다. 이게 대체 누굴위한 바보같은 생각이었던가.


지난 수요일, X에게 혼인신고를 하자고 말했다. X가 고맙다고 말했다. 나도 그간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실패할 경우를 감안한 선택은 나 답지 않다.


 내가 선택한 사람, 내가 선택한 이 길이 정말 옳은 선택이었음을 스스로 자신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현재에 최선을 다하겠다. 혼인신고를 하겠다. 이 글이 어리석은 실패의 한 장면으로 남더라도.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이킷은 용치에게 책임감과 에너지를 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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