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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Aug 27. 2024

지켜보고 있다는 것

감시가 아닌 관심


이후로도 아들의 활약은 계속되었다. 나는 아들이 페이퍼로봇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지 않는다. 집중을 하고 있을 땐 웬만해선 건드리지 않으려 하는 의도도 있고, 무엇보다 내가 편하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내게 자유시간이다. 그 대신 다 만들고 나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완성작을 내미는 아들에게 마음껏 칭찬을 해 준다.


"와! 정말 멋지다. 이거 네가 접은 거야?"


이렇게 반응해 주면 끝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모습을 지켜보던 딸아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엄마아빠가 감탄할 만한 걸 만들고 싶어."


그 순간 아차, 싶었다. 그동안 책 읽는 것만 좋아하던 딸아이가 갑자기 종이접기를 한다고 나섰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굳이 어려운 단계의 작품을 고집했던 이유도. 동생에게 아낌없는 감탄과 찬사를 보냈던 부모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함이었다.


종이접기 '기술'은 많이 해봐야 실력이 느는 영역에 해당하는 반면 독서는 그렇지 않다. 가시적인 성과가 없을뿐더러, 감탄을 보낼 만한 당장의 결과물이 없다. 책의 양으로 이만큼이나 읽었다고 말하기에는 어느샌가 만화책으로 방향을 틀어서 왠지 당당하지 못했을 터.


독후활동을 통해 새롭게 알아낸 정보나 지식을 체크해 주거나, 느낀 점을 끌어내는 방식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를 표현하고 완성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기라도 했다면 좋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그 순간 그나마 성장지표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영어책이었다.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영어캠프에 참여해 받은 충격(?)을 상쇄하고자 딸은 영어책을 매일 읽고 있다. 나는 도움을 주기 위해 영어책을 읽는 과정에서 항상 함께 했고, 딸이 더듬더듬 한 줄씩 읽고 넘어갈 때마다 Good,  Great, Excellent! 등의 감탄사를 해주었다. 한 권을 다 읽고 나서는 하이파이브로 마무리했다.


몇 번을 반복해서 읽은 결과, 딸아이는 큰 어려움 없이 읽어낼 수 있는 문장이 점점 늘어갔다. 틈만 나면 종이접기를 하며 '실력'을 키워갔던 동생처럼, 영어 읽기에 대한 노력의 결과가 있었다. 딸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내겐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영유아기 때 곁을 지키던 놀이만큼이나, 학습의 목적을 갖고 오롯이 함께 하기란 인내심이 꽤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분명 중간중간 표현한 감탄과 칭찬이 딸에게는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한 방의 감탄이 더 강력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설명해야 했다. 너와는 책 읽는 과정을 함께 하며 여러 번으로 나눠서 표현을 해주었고, 동생에게는 과정에서 전하지 못한 감탄을 한꺼번에 표현해 준 것뿐이라고. 엄마가 각자에게 감탄하는 마음의 합은 똑같다고.


다행히도 딸은 엄마의 나지막했던 Good,  Great, Excellent를 기억해 주었다. 자신의 과정에 함께 참여해주고 있다는 사실도 특별하게 여겨진 듯했다. 엄마가 너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니 한 번에 모든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아이에게 위안이 되길 바랐다.


무엇보다도 엄마의 바람에서 시작된 영어캠프와 영어책 읽기였다. 답답함과 함께 배움의 필요성을 느끼길 바랐다. 필요성을 느꼈을 테니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라고 하는 엄마의 제안에 그래! 라며 화답하고 따라주는 딸에게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엄마 말을 잘 들어서가 아니라, 엄마의 말을 믿고 따라주는 그 마음이 고맙다고.


다만 딸이 따라오게 하는 그 과정에서 너무 앞서가지는 말자고 늘 다짐한다. 읽은 문장을 정확한 발음으로 들려주고도 싶고, 배운 표현을 써보게도 하고 싶지만 아직은 욕심인 것 같다. 딸은 엄마를 따라가기보다는 엄마와 함께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따라가기 벅차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딸은 내 손을 놓아버릴지 모른다. 그러므로 오늘도 함께 간다. 먼저 의지를 내는 것은 내 몫이지만, 언젠가는 딸이 먼저 앞서가길, 가보지 않은 길도 성큼 가보길 바라면서.



《내가 듣고 싶던 말, 네게 하고 싶은 말》


"엄마는 매일 놀라고 감탄하고 있어. 아직은 스스로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일이 어렵겠지만, 엄마 말을 믿고 따라주어 고마워. 꾸준히 보낸 시간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경험할 수 있도록 엄마가 곁에서 도와줄게. 시간이 쌓일수록 너의 실력도 쌓여가는 것이 정말 놀랍구나. 엄마가 너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니, 한 번에 모든 것을 증명할 필요는 없단다. 엄마는 너를 믿어. 그리고 엄마를 믿어줘서 고마워."



과정을 지켜보는 것, 어제보다 오늘 성장했음에 감탄하는 것, 나아진 게 없어 보일지라도 꾸준히 행하는 태도를 응원하는 것. 나 또한 무엇을 꾸준히 함으로써 그 가치를 드러내는 것. 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엄마로서의 나의 역할이다. 흘러가는 시간의 무게를 아이에게만 맡겨두지 않기로 했다. 스노볼 효과가 아이의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그저 춥다고 얼른 집에 들어가자 하기보다는, 손이 시려도 작은 손을 붙들고 눈뭉치를 하나 둘 만들어두기로 했다. 내가 시간의 기세 앞에서 느꼈던 무력감이 아이에게는 위대함으로 느껴질 수 있길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 사진 출처: Pixabay, Penny Sala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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