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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Sep 01. 2024

마음껏 아플 수도 없는 아이

아이의 아픔까지 감당하는 것


기관지가 약한 아들은 감기에 걸리면 폐렴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 무더운 여름부터 겨우 나았다가 다시 콧물이 났다가, 가래가 되었다가, 기침이 나는 사이클을 겪는 중이다. 결국 대학병원에서 사진을 찍고 기관지염과 폐렴 초기 진단을 받았다. 새로 약을 지어먹고 기침을 안 하는가 싶더니 럭, 심상치 않은 기침 소리를 잠결에 들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흠, 하며 코로 한숨을 내쉬었다.


항생제는 며칠째 먹고 있는 건지 마음이 편치 않다. 입원이라도 해서 뿌리 뽑고 싶지만 입원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병원에 왔다 갔다 하는 일도 힘들다. 매번 어르고 달래 가며 약 먹이는 것도 지친다. 한숨의 의미는 그러했다.


문득 나 어릴 적 감기에 걸렸을 때 엄마의 표정이 생각났다. 엄마는 내가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할 때마다 늘 인상을 쓰고 화를 냈다. 기침을 한 번 하면 인상을 쓰고, 두 번 세 번 연속하면 꼭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며 화를 내었다.


"으잇~씨!"


엄마는 내가 감기에 걸린 게 멋 내느라 얇게 입고 다녔기 때문이라고 했다. 학창 시절을 통틀어서 엄마가 사준 겨울옷은 카키색 떡볶이코트 한 벌뿐이었다. 교회 비자회나 친척이나 아는 집사님들에게 한 무더기씩 헌 옷을 얻어오긴 했지만, 내가 입을만하다고 생각했던 외투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은 의료보험이 없었다. 일용직을 전전하던 아빠의 직장가입 의료보험은 있을 리 없었고, 지역가입 의료보험마저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게 마음에 걸리셨는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유언으로 우리 집 의료보험을 해결해 주셨다. 엄마는 할아버지 마지막 길에 천국가시도록 인도해서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의료보험이 해결된 것을 큰 간증으로 여겼다.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 한 할아버지를 작은 집에 임시로 모셔놓고선 큰며느리로서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삼일 만에 돌아가신 것도 그녀에겐 감사 제목이었다. 그녀의 솔직한 심정이었겠지만 나는 어쩐지 좀 슬펐다. 아마도 시아버지의 연명은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짐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전까지 나는, 병원에 갈 때 다른 사람이 되어야 했다. 한 동네에 살던 내 또래 친구의 의료보험증을 빌려서 방문했다. 처음에는 엄마가 직접 부탁했겠지만 그 뒤로는 몇 번 내가 받으러 간 기억이 있다. 병원에 가는 길은 항상 긴장되었다. 나는 병원 접수처에서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있었고, 엄마는 손바닥에 볼펜으로 새긴 그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흘깃 보며 짐짓 태연하게 대답했다. 나는 엄마가 거짓말하는 걸 들킬까 봐 늘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접수가 무사히 끝나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순 없었다. 진료실에서 내 이름 석자가 아닌, 동네 친구의 이름 두 글자를 부르면 네! 하면서 걸어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의사 선생님께서 편도가 부은 상태를 보더니, 어린이가 이 지경이 되도록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많이 아팠겠구나, 하던 의사 선생님의 그 한마디가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한숨만 푹푹 쉬고 인상 쓰던 엄마와는 너무나도 대비되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는 정말로 궁금했다.


'아프면 걱정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왜 화를 내지?'


내가 아픈 게 너무 속상해도 그렇지, 꼭 화를 내야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많이 아프니, 괜찮니, 하는 말들은커녕 그녀는 터질 준비를 하고 있는 활화산처럼 나의 기침 소리에 조용히 한숨을 고르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는 기침을 참기 위해 그녀의 눈치를 봐야 했다.


내가 아프면 이 일련의 과정을 겪어야 했기에, 엄마는 내게 의사 선생님과 같이 따뜻한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속상하고 심란한 마음이 앞서서 아픈 내게도 화를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감기에 걸린 것, 그것조차도 그녀가 감당하기 힘든 짐이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병원에 데려가 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지만, 아픈 어린이에게는 서러운 기억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회개했다. 내가 방심했노라고. 아들의 기관지가 약한 것을 알면서도 기관의 냉방 온도를 고려하지 않고 카디건을 챙겨 보내지 않았음을. 병원에 가는 길을 귀찮아했음을. 더위에 지친다는 핑계로 면역력을 키울 수 있는 영양식단을 제공하지 않았음을.


《내가 듣고 싶던 말, 네게 하고 싶은 말》


"많이 아프니? 괜찮니? 네가 지금 돌봄이 필요하구나, 사랑이 필요하구나. 엄마가 좀 더 챙겨줘야겠다. 아프면 말해. 힘들면 쉬어야 해. 그런데 네가 아프면 엄마의 마음도 아파. 그러니까 약은 꼭 먹어야 해. 손도 꼭 잘 씻어야 해. 아프지 말고 얼른 나아서 맛있는 것 먹자."


아이가 아픈 것은 부모의 탓이 아니다. 그러나 아이의 탓은 더더욱 아니다. 설령 손을 깨끗이 씻지 않았거나 옷을 춥게 입는 부주의를 범했다고 해도, 주의를 줘야 하는 사항이지 아이 탓을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면역력이 좋고 건강한 아이들은 바닥에 뒹굴러도 감기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 아이들은 엄마의 걱정을 먹고 자라지만, 눈칫밥에 체해서는 안된다. 마음껏 아프지도 못해서는 안된다. 아이의 아픈 것을 감당하지 못한 나머지 한숨과 화를 내뱉어서는 안 된다.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는 부모를 감당할 수 있는 아이는 없다.



*사진 출처: Pixabay, Myriams-F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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