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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Sep 04. 2024

한 방 먹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가 쏘아붙인 뾰족한 말


"너 많이 변했다?"


이 말에서 오는 느낌은 다소 부정적이다. 나는 늘 변화를 갈망해 왔다. 스스로 체감하기로는 갈망하는 정도에 비해 아주 천천히 변화되는 것 같은데, 주변에서 느끼기에는 급진적인 태세가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저런 피드백을 받은 것은 살면서 크게 세 번 정도인데, 그중 별로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던 지인에게서 저 말을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는 내 앞에서 대놓고 자기 핸드폰에 내 번호가 없음을 말한 사람이었다. 누구누구 외에는 번호를 다 지웠다고. 그러니 어쩌라고...? 왜 내게 이 말을 하는 거지? 내가 그 핸드폰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지금 뭐라도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와 아주 가깝지는 않았지만 내가 고등학생에서 성인이 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서 나는 저 말을 들었다. 이십 대 초반이었으니 변한 건 많았을 터. 그러나 그의 표정이나 말투의 뉘앙스를 봤을 때 어떤 순수한 놀람이나 긍정적인 경탄은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알아채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 나머지 되바라지게 반응하고 말았다.


"그쪽은 여전히 변함이 없으시네요."


길가에서 마주쳐 몇 마디 하다가 헤어진 게 전부였지만, 이 뾰족한 말이 요즘 들어 나를 찌른다. 그의 말투에서 부정적인 뉘앙스를 내가 느꼈듯, 내 말에 심긴 가시가 그에게도 박혔을 것이다. 나는 왜 그렇게 반응했을까. 꼭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차라리 나는 나의 무엇이, 어떤 점이 그에게 그렇게 느껴졌는지 물었어야 했다. 가깝지 않은 사이였기에 더욱 그랬어야 했다. 연락할 기회가 그만큼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내가 어떠했고, 그는 내게 어떤 것을 보았으며, 당시에 어떤 것이 변했다고 느낀 것인듣지 못했다.


'자기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당시 내겐 이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충고나 조언, 나에 대한 평가는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서만 들을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내밀한 언어는 아프기도 해서,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들을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각을 쟀던 것 같다. 그는 핸드폰에 내 번호를 저장해두지 않을 만큼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핸드폰에는 그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긴 했지만 연락할 일은 없었다. 그러니 그의 평가도, 그 이유도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내가 그에게 했던 말 때문이다. 인생은 부메랑이라고 했던가. 누군가에게 상처 준 말이 돌아와 내 마음을 찌른다. 막상 그는 상처받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명백히 그에게 상처를 낼 의도로 뱉어낸 말이었다. 부끄럽게도 진실로 그러했다.

 

변화라는 단어는 상황에 따라서 좋은 말이 될 수도 있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기도 하고, 삶의 긍정적인 변화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러나 변하지 아야 할,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사랑이나 우정, 도덕과 순수를 비롯한 가치와 정서들이다.


반면 '변함이 없다'는 말도 누군가에겐 욕이 될 수 있다. 응당 변화가 필요한 삶에 진척이 없다는, 성격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여전히 그 모양이라는 실망을 담은, 아주 치명적인 비난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말을 하는가 보다도 어떤 의도로 하는 말인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말에 담긴 의중은 기가 막히게 흘러간다. 때로는 말을 하지 않아도 흘러가는 기가 막힌 경우도 있다. 그것이 부정적인 기운일수록 더욱 그렇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글을 사랑하는 이유다. 글을 쓰면서 글의 흐름을 본다. 쓴 글을 몇 번 읽다 보면 어떤 의도로 이 글을 썼는지가 눈에 보인다. 꼭 쓰고 싶은 문장도 다시 읽어보면 은근한 자랑일 때가 있다. 그런 냄새가 나는 글은 조용히 지우면 될 일이다. 물론 지우지 못한 채 세상에 발행한 적도 있다. 누군가는 그 글을 읽었을 것이다. 미처 지워내지 못한 기록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것에 대한 피드백은 정직하게 (외면) 받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쏘아붙인 말에 대한 피드백은 어떻게 받을까. 어느 한쪽이 더 센 말로 받아낼 수밖에 없는 게 말의 피드백이라면 나는 아직 피드백을 받지 못했다. 표면적으로는 내쪽에서 한방 '먹이고' 끝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끝나지 않은 것이다. 내 얼굴은 이미 그의 마음에서 일그러졌데 그의 얼굴은 여전히 내 마음에 둥둥 떠다닌다. 이건 무슨 피드백인가. 쏘아붙인 말이 화살이 되어 돌아온 이 상황이 꽤 당황스럽다.


결국 말이든 글이든 좋은 마음으로 진실하게 내어야 한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다. 십 수년 전에 방어적인 태세로 공격까지 서슴지 않던 미숙함은 지금도 남아있지만, 밖으로 낸 순간 다시 돌아오고야 말 것이란 교훈을 얻었으니. 수상한 의도를 알아채고 슬며시 걷어내는 건 역시 말보다는 글이 더 유리할 터, 앞으로도 말을 많이 아끼고 글을 많이 써야겠다.



*사진 출처: Pixabay, K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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