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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03. 2024

왕따와 찐따

왕따를 자처하고 찐따가 되기로 했다


나는 어색하지만 당당하게 맨 뒷자리에 았다. 그런데 분명 처음 왔다고 말을 했고, 신상정보까지 작성했는데도 새 친구 환영시간에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광고를 하는 선생님께 전달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내심 서운했다.


나중에 친구들이 말하기를, 나를 보고 새로운 선생님이 왔나 보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얼굴은 이미 이십 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괜찮아, 자연스러웠으니 됐어!


예배시간이 끝나고 제각각 분반공부를 하러 가는 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어색함과 소외감이 들었다. 여기는 교회이고 나는 교회에 왔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가... 다행히 수상한(?) 나를 보고 먼저 말을 걸어주신 선생님 덕분에 나는 어느 반으로 합류될 수 있었다.


또 다행이었던 건, 내가 새해 첫날부터 간 덕분에 모든 아이들도 서로가 처음이었다는 것이다. 중등부에서부터 진급한 친구들은 안면이 있었겠으나 질풍노도의 그 시절, 그들 사이에도 기본적인 어색함이 장착되어 있었다.


공과공부가 끝난 이후, 선생님의 권유로 찬양팀 연습에 합류하게 되었다. 나의 빠른 적응을 위한 배려였다. 찬양팀에는 동갑내기 친구도 있었고 선배들도 있었다. 내가 놀랐던 건 동갑내기 친구들과 선배들과의 관계였다. 그들은 장난치는 모습마저 다정했고, 자연스러웠다. 나도 어느새 그들과 동화되고 있었다.


새로 사귄 선배들과 친구들은 순수하고 친절했다.

터치라는 명목으로 때리고, 존댓말은 기본이며 마주칠 때마다 구십 도로 인사하길 강요했던 학교 선배들과는 달랐다. 욕하면서 장난을 치고, 무안을 주고, 그래서 분명 웃고 있는데도 기분이 나쁘고, 그러나 분위기상 기분 나쁜 티를 내기도 애매했던 나의 친구들과는 달랐다.


각자 다른 고등학교에 입학한 나와 옛 친구들은  각기 다른 교복을 입고 한자리에 모였다. 그때쯤엔 신앙이 조금 더 깊어져 친구들을 교회로 초대하려 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말하길 교회에는 '찐따'들만 모여있어서 가기 싫다고 했다. 나머지 친구들도 웃으며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그들이 찐따라고 여기는 어떤 기준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에는 그들이 거부한, 그래서 갖지 못한 어떤 순수성이 있었다.


나는 그 순수성이 좋았고, 그것을 거부한 옛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조차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찐따'라는 단어와 함께 나의 순수성이 짓밟힌 것 같아서 서럽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들 사이에서 왕따를 자처했다. 그렇게 나는 찐따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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