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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10. 2024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

내 인생의 출애굽이 시작되다

그렇게 찐따(?) 친구들, 선배들과 함께 매주 예배를 드렸다. 예배 후에는 장애우 봉사활동을 하고, 찬양팀 연습을 하고, 기도모임을 했다. 그리고 수련회에 두 번 참석하고 나니 어느새 2학년 진급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 고등부 회장직은 2학년에서 선출했고, 임원진 구성은 학교와 같았다. 선출방식도 투표로 진행했으며 전통 있는 대형 교회답게 회칙까지 있었다. 회장선거를 앞두고 후보를 등록하는 기간에 선생님께서 내게도 등록을 권유하셨다.


그동안 대표직이라고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순번대로 돌아가며 반장 했던 게 전부였다. 인기투표면 몰라도(?) 반장, 실장, 회장선거는 당선된 경험이 없었다. 그런데 신앙이 척도가 되는 교회 회장직이라니. 모태신앙이면서도 돌아온 탕자였던 내겐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회칙에서 정하고 있는 정회원의 기준에 미달되었다.


그런데 그다음 주인가, 임원회의를 거쳐서 정회원의 기준이 변경되었다고 했다. 회칙이 개정된 것이다. 몇 년 간 손대지 않았던 회칙이 왜 갑자기 개정되었단 말인가? 임원 선배에게 물어보니 되려 너무 오래된 회칙이라 바꿀 필요가 제기되었다고 했다. 선생님의 입김일 수도, 더 많은 차기 후보 등록을 위한 임원진의 자체적 결정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렇게 회칙은 변경되었고, 당시 교회 일이라면 예스걸이었던 나는 부담감을 안고 회장 후보에까지 등록하기에 이르렀다.


회장 후보는 나를 포함해 총 다섯 명이었다. 이 교회의 유년부부터 시작해 초등부, 중등부를 거쳐서 올라온 신앙이 탄탄한 친구들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교회에 발길을 끊어서 경력단절(?) 되었다가 이제 막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시작한 새 신자에 가까웠다. 말 그대로 어디서 굴러들어 온지 모른 돌멩이였다. 아니, 세상에서 굴러들어 온 오물 투성이었다.


회장선거가 있던 날, 투표에 앞서 정견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후보자 한 명씩 돌아가며 공약을 내세우는 자리였다. 교회에서 내세울 공약이랄 게 뭐가 있겠는가. 대체로 신앙고백에 가까웠을 것이다. 다들 어떤 공약을 내세웠는지, 어떤 방식으로 신앙을 고백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조차도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에 불렀던 찬양만큼은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라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라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뜻하신 그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찬양팀 연습을 할 때처럼 반주와 다른 팀원들의 소리에 묻어가지 않는, 오직 내 목소리만이 무반주로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때 그 가사, 그 고백, 그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이 글을 쓰며 다시 떠올리는 찬양의 가사는 오늘날 나의 고백이 될 수 있는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저 옮겨 적을 뿐이다. 확실한 건 그때의 내 고백은 진심이었다는 것. 찬양은 곡조가 있는 기도라고 했던가. 그 시절 나의 기도는 이러했다.

주님께 쓰임 받는 자녀가 되게 해 주세요.


이 기도는 수년간 변경이 없던 회칙이 개정되어, 자격 없는 나를 회장직에 선출되게 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를 시작으로 한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

학교 시절 방황을 하며 일탈을 일삼던 나, 이런 나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지 궁금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는 게 뭔지, 어떤 식으로 쓰임 받을지도 모르면서 그런 고백을 했다. 내가 내 인생을 써 내려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았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으니, 나를 만들어가는 것도 하나님이겠다. 하나님이어야 한다.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


어쩌면 주어진 삶에 대해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는 이 생각은 분명 믿음이었다. 그 믿음의 고백이 내 삶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 고백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똑같이 그 고백을 할 수 있느냐 하면, 망설여진다. 내가 어디에 가 있을지, 그곳이 어디든지 주님 말씀하시면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이 왜 지금은 보이지 않을까. 홍해를 가르고 애굽(이집트)에서 이끌어내었던 그 하나님을 경험했으면서도 끝까지 신뢰하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나는 다르지 않다.


태어나고, 십 대와 이십 대를 보낸 고향 땅을 기꺼이 밟지 못할 정도로 힘겨워하면서도 그때를 다시 돌아보며 이 글을 쓰는 것은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내 인생의 출애굽기를 쓰신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내 인생, 출애굽에서 끝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애굽에서 나왔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의 한 세대는 가나안 땅에 이르지 못했다. 그들은 광야에서 죽고 그의 후손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다시 방황이 시작된다. 이 말인즉슨, 하나님께 돌아오는 순간 방황은 끝이 난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순간 길은 다시 열린다. 홍해를 가르고, 광야에 길을 만드시고, 사막에 강을 내고 인도하셨던 하나님은 그때도 나와 함께 하셨고,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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