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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Oct 11. 2024

빈 공간에 밑줄 긋는 힘

부끄러운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살아가는 힘


끝냈다. 해냈다. 치렀.


오늘 나의 일을 마쳤을 때 적당한 표현을 고르라면 '끝냈다'에 가깝다. 행사를 마쳤으니 '치렀다'도 맞는 표현이겠으나, 제대로 치른 느낌은 아니다. 행사의 흐름이 매끄럽지 않았고 프로답지 못했다. 이제 와서 용역업체와 나 사이에 책임을 전가할 만한 이유도, 의지도 없다. 그저 지긋지긋한 행사를 '끝냈다'. 이것으로 그저 방점을 찍고 싶다.


그리고 나는 집에 와서 물걸레체럼 늘어진 몸과 마음을 뉘인 채 글을 쓴다. 한껏 머금은 더러운 물을 짜내려는 의지로 손가락을 움직인다. 앤 라모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관절염을 막기 위해. 활자 사이로 내가 흘려보낸 마음들이 흘러내린다. 이것은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내내 스며 나왔던 식은땀이고, 속으로 흘렸던 눈물이고, 팽창된 혈관 속에서 거꾸로 던 피다.


나는 이 글을 다 써내고 나면 '해냈다'는 마음을 게 될 것이다. 어쩌면 하루종일 밖에서 움직이고, 서 있고, 긴장한 채 보낸 시간에 비한다면 감히 써선 안 되는 표현일지 모른다. 발 닦고 불 끄고 편히 누워서 겨우 한두 시간 만에 스마트폰으로 몇 자 적어낸 것이 '해냈다'는 표현을 쓸 정도라고? 몇 달 동안 준비한 행사를 겨우 끝내 내팽개쳐놓고?


잠시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역시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별로인 하루를 보냈지만 이것을 글로 쓰는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내가 비단 회사 일보다 글쓰기를 더 좋아해서만은 아니다. 그저 아무렇게나 끝내버리고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은 하루에 대해 쓴다는 것은, 빛나지 않은 내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이미 방점을 찍어버린 사건에 대해 쓰는 행위는 문장을 이어 쓰는 것과 같다.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볼품없는 나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기로 용기 내는 일이 분명하다.




행사를 치르는 일은 늘 버겁다. 앉은자리에서 내가 할 일만 감당하는 것도 때론 벅찬데, 행사는 확인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행사가 어려운 이유는 전체를 조망하면서도 세부사항까지 놓치지 않고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전체를 조망하는 것도, 세부사항을 챙기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대충 흉내만 내고 끝낸 것 같다. 전체를 조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진행의 흐름이고, 세부적이라고 함은 사람들의 마음이다.


세부적인 것들이 중요한 이유는 작은 것에서 느껴지는 불편함들이 모이고 모여, 행사 자체에 대한 불만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행사에는 취지가 있는데, 참석자들이 불만족할 경우 행사의 취지가 저해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귀한 시간을 내서 참여한 것에 대한 보상(만족감)이 충분치 않다면 행사에서 추구하는 가치마저 폄하될 수 있다.


애초에 방향이 틀어지면서 식순이 늘어져버렸다. 이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지만 그만큼 다른 부분을 신경 써서 배려할 순 없었을까. 중간에 투입된 나로서는 나름 준비한다고 했지만 애초에 나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어느 순간 그저 끝나기만을 바라며 그저 적당히, 예산에 맞춰서, 돈 주고 쓰는 업체에 떠넘기듯 얼렁뚱땅 진행하고자 했던 나의 태도는 고스란히 결괏값이 되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내향형에 정적인 성격이며, 신경 쓸 것이 많은 상황을 오래 견디지 못한다. 시끌벅적한 환경을 좋아하지 않으며, 우선순위를 세우고 빠르게 처리하는 일들에 취약하다. 멍 때리고 한 곳에 머물러 있기를 편안해하여 혼자만의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하는 내가, 직장인으로 살아남기는 분명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이런 내가 자발적으로 퇴사라는 퇴거를 하지 않고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가끔은 누군가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커리어의 세계에서 능력 발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은 아주 많을 것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기로 한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지만 나는 아직 배울 것이 많기 때문이다. 배운다는 표현보단 부닥친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아니, 부닥친다기보단 깨진다는 비유가 더 정확할 것이다. 글을 쓸 땐 충만함을 느끼지만, 글감을 찾아 나설 땐 비루함을 느낀다. 내게 글감이란 인생을 사는 일이다. 비루한 인생의 면면에서 나는 조용히 선을 긋는다. 그 선 위에서 문장을 짓는다. 문장을 힘주어 강조하고 싶을 때 밑줄을 긋는 것처럼, 그어둔 선 위로 간신히 채워 넣은 문장에도 힘이 있다. 인생은 쓰지만 나는 글을 쓴다. 쓰디쓴 인생에서 쓰는 글은 달지 않을지라도, 부끄러운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


* 사진 출처: Pixabay, Roberto Lee Cor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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