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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Nov 20. 2024

내가 진짜 미워했던 건 나였다


나는 이제 알았다. 내가 진짜로 그를 미워하는 이유를. 사실 알고 있었다. 내가 그를 많이 닮았다는 걸. 그러니까 나는 나를 많이 미워했고, 내가 미워하는 모습들을 그에게서 발견해 버린 것이다. 밖에선 아닌 척했지만 안에선 아닌 척하는 아빠가 보였다. 애써 감추려 했던 나의 약점들이 아빠에게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건 나였다.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던 나의 모습이었다.


내가 미워하는 그의 모습을 나열하자면 이렇다. 방향감각이 없는 길치인 것, 말귀를 제대로 못 알아듣는 것. 맥을 짚지 못하고 겉도는 말만 하는 것. 그러면서 아는 척하는 것. 두루뭉술한 것. 사고가 분명하지 않은 것. 모호한 것. 정직하지 못한 것. 성실하지 못한 것. 책임감이 없는 것. 실력은 없으면서 정으로 통하려 하는 것. 지식도 지혜도 없는 것. 세상물정도 모르고 경제관념도 없는 것 등등....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렇다고 볼 수 없는 모습들도 있지만, 내가 그와 연결 지어서 인식했던 나의 모습들이다. 그가 나를 보게 한 걸까, 내가 그를 보게 한 걸까. 그는 나를 비추는 거울인데, 그는 자신의 이런 모습을 알고는 있을까. 아빠는 과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나를 미워했고 나와 닮은 당신을 이토록 미워하고 있는데. 내 삶에는 여전히 당신이라는 배경음악이 흐르고 있는데.


나는 위에 나열한 모습들을 버리거나 과거로 돌려버리기 위해 무던히 애썼고 애쓰고 있다. 예를 들어 방향감각이 없으니 가야 하는 길을 미리 헤매본다. 들어갈 때 나올 방향을 미리 생각한다. 오른쪽으로 꺾어서 들어왔으니 나올 땐 왼쪽으로 꺾어 나가야 한다, 내가 여길 지날 때 이 건물을 보았으니 나중 지날 때도 이게 여기 있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기억하려 한다. 방향감각이 없으면 랜드마크나 간판으로 지표를 설정해 놓는 것이다. 요즘은 지도 어플이 잘 되어 있어서 덕분에 긴장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 시대엔 이런 기술이 없었지만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볼 순 있었다. 다른 사람이 한 번 물어볼 걸 두 번, 세 번 묻고 좀 헤매더라도 그러면서 긴장하고 진땀 빼고 수고하며 찾아가는 경험을 해봤어야 한다. 다른 사람보다도 훨씬 더 많이. 그러나 그는 늘 여유 있게 택시를 잡아 탔다. 그렇게 많이 늙지 않았을 때도, 가족을 대동하고 다니는 길이 아니었음에도, 볼 일을 다 보고 홀로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돌아와서 티브이를 틀어놓고 누워 자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음에도. 그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걸으며, 지친 기색도 없이 여유 있게 들어왔다.


나는 그의 여유 있는 모습이 미웠다. 엄마는 백 원, 천 원에 전전긍긍하며 동동거릴 때 별 고민 없이 돈을 쓴 그가 미웠다. 나는 헤매지 않기 위해 긴장하고 애쓰는데, 여전히 멍 때리며 헤매고 있는 그가 미웠다. 딸네 집을 방문하러 기차에서 내린 상황에서도 짐은 하나도 들지 않은 채 출구를 찾아 혼자서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홀로 짐을 떠안은 엄마가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악다구니를 쓰게 만드는, 그런 모습이 싫었다. 조용히 그들을 그 풍경 속에 버려두고 싶게 만드는, 밖에서도 내 마음속에서도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그의 어리숙한 모습이 싫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아버지다. 나는 그의 일부다. 아무리 높은 곳에서 살랑살랑 잎을 나부끼며 바람과 하늘을 배경 삼아 존재하고 싶어도, 밑을 내려다보면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뻗어있는 뒤틀린 모습이 보였다. 그는 나의 뿌리였다. 도망갈 수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그곳에서만 바로 그 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나의 뿌리. 나는 그에게서 뻗어 나온 가지였다.


나는 열매를 많이 맺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나의 아버지처럼 볼품없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이루어낸 변화는 많지 않았다. 가지가 뻗어나가듯 손을 뻗어도 무엇에 닿지 않았고, 공허한 시선을 떨어뜨릴 때면 뒤틀린 뿌리의 모습을 한 아버지가 보였다. 나는 이래서 안돼, 저래서 안돼. 그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안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만날 때마다 증오와 좌절감이 싹텄다. 나는 그렇게 나를 미워했고 아버지를 미워했다. 내가 아버지를 그토록 미워한 이유는 나 때문이었다. 내가 미워했던 건 바로 나였다.


나무는 추운 겨울에
옷을 벗는다.

훌훌 옷을 벗어
언 땅을 덮어준다.

땅속엔 그의 뿌리가 살고 있다.

당신은 한 번이라도 뿌리를 덮어준 적이 있나요?
옷을 벗어 아버지를 덮어준 적 있나요?

- 정철, 영감달력, 11월 4일


그를 닮은 나를 이토록 미워하는데 내가 그를 덮어줄 수 있을 리 없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나를 먼저 안아주면 따뜻해진 마음으로 그를 바라볼 수 있을까. 덥힌 마음으로 덮어줄 수 있을까. 서툴고도 우둔한 그의 몸짓을. 일흔이 넘어서도 방황하는 그의 눈동자를. 인생이란 본래 살아도 살아도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 거라고, 그의 토양마저도 불안정했을 거라고. 이렇게 되뇌는 동안 그를 향해 한 줌의 낙엽이라도 내려줄 수 있을까.



*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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