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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Dec 10. 2024

존경할만한 남자를 만나고 싶다면

네가 무엇을 우러러보는지 생각해라


회사에서 상을 준다고 한다. 생각지도 못했기에 더 감사했다. 연차에 따라 돌아가면서 받는 거라고 해도, 조금만 비껴간다면 내 순서가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부서 내 인사가 이루어지면서 운이 작용했다. 분명 좋은 소식이 맞지만 순간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남편에게는 말하지 말아야겠다.'


이 생각이 들고나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남편을 많이 사랑하는구나 하고. 일주일 전 남편이 먼저 전한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남편도 회사에서 상을 받기로 했고, 그것은 우리 가족에게 아주 큰 의미를 갖는 이벤트였다.




회사에서 주는 상이라는 것은 보통 부서장의 추천으로 결정된다. 구성원들의 동의까진 아니더라도 여론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뚜렷한 공적이 있거나 구성원들 간의 암묵적 합의가 있어야 조직에서 '나의 차례'가 돌아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남편은 그 차례를 한참 비껴간 듯했고, 열심히 해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조직생활에서 회의감이 강한 상태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남편은 서운한 마음을 내려놓고 동료들에게 먼저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이 좋은 마음으로 회사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런데 조직생활 십수 년 만에 좋은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남편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 같아서 더욱 기뻤다. 이것은 남편의 변화이자, 남편의 변화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인정이었다.


그러니 상을 기리는 마음보다도 상을 받을만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준 회사의 결정에, 그 결정을 이끌어낸 남편의 변화에, 그 변화를 이루기까지의 남편의 노력에 스포트라이트를 온전히 비춰주고 싶었다. 남편만이 유일한 축하의 주인공이 되길 바랐다.


시간의 격차를 두고 전하기에도 훈격의 차이가 있었다. 혹시나 남편이 내가 받은 상과 비교해서 자신이 받은 상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길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결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조직에서 '애엄마임에도 불구하고' 근태에서 책잡히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나보다 조직의 눈치를 덜 보고 가정을 우선시했던 남편의 희생 덕분이다. 남편과 나의 회사 사이에는 조직의 분위기와 구성원들의 의식 차이도 분명 있어 보였다.




결국 나의 수상 소식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본인 자식이 더 잘난 줄로만 아는 나의 부모님께 마저도. 누구도 그의 아내로 살아보지 않는 한 그의 치명적인 장점들은 절대 알  없을 것이. 내가 그의 아내로 사는 동안 느끼는 충만한 것들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들과는 크게 상관없는 것들이므로.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싶은 것에나 관심이 있는 법이니까.


연봉이나 승진 같은 대외적인 지표들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자기 삶에 진실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성실의 결과가 연봉이고 승진이고 결국 돈이어야 한다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고, 고용시장에서부터 그러하다. 그 구조를 뒤바꾸거나 역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내던져야만 한다.


그런 가장은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따위는 없어야 한다. 나는 아내로서 그것을 원치 않는다. 지금처럼 나와 아이들 곁에서 늘 든든하게 있어주길 원한다. 그것은 내게 돈보다도 훨씬 큰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된다면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이상 우리만의 방식으로 풍성함을 누릴 수 있다.


나와 우리의 선택이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제공하지 못한다 해도 미안해하진 않을 것이다. 안정된 울타리 안에서 경험하는 결핍은 아이에게 약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성실로 채워진 바탕에서, 무리한 희생으로 커다란 결핍을 만들어내기보단 때마다 할 수 있최선의 선택으로 채워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렇게 상도 받고 좋은 일도 있는 거겠지.



《내가 듣고 싶던 말, 네게 하고 싶은 말》


"딸아. 네가 존경할만한 남자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네가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란다. 가령 네가 돈이 많은 것에 가치를 둔다면, 돈을 많이 버는 남자를 존경하게 되겠지. 만약 네가 명예를 중요시한다면 학벌이나 직업, 혹은 이룬 것이 대단한 사람을 존경하게 될 거야. 


그러나 그가 돈을 벌어서 지키려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해. 그가 학벌과 직업, 무엇을 이뤄내기까지 어떻게 노력했는지를 알아야 한단다. 단지 최고가 되기 위해, 남들보다 우세하고 싶은 마음에 달려가는 사람을 네가 존경하지는 않았으면 해. 우월한 것만이 존경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니란다.


돈이 많지 않아도 그가 가진 성실과 책임으로 그에 대한 너의 믿음을 지켜낼 수 있다면,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묵살하거나 희생시키지 않을 수 있다면, 너와 함께 이룬 가족을 최우선에 둘 수 있다면 충분히 존경할만한 사람일 거야.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것보다 내 사람에게 충실한지가 더 중요한 거란다.


그렇게 탄탄한 기본적 토대 위에서 쌓아가는 것은, 그게 돈이든 명예든 무엇이든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야. 물론 함께 가져가기 위해선 쉽게 얻을 수도 없겠지만 말이야. 중요한 것은, 무엇을 지켜내려는가 하는 거야. 아빠엄마는 그렇게 너희를 지켜냈단다. 모래가 아닌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가 너에게 있기를 기도한다."



* 마태복음 7:24-27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


*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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