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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20. 2024

내가 승무원이 되고 싶었던 이유


언니와 오랜만에 통화하며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글을 쓰고 있고, 참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생각해 보니 내내 꿈이 없던 내가 처음에 그렸던 꿈이 글을 쓰는 작가였노라 수줍게 고백했다.


"잘됐다. 그러게, 나도 네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면 이해가 됐을 텐데. 왜 관련 없는 승무원을 하고 싶다고 했는지 궁금했었어. 승무원은 왜 하고 싶었던 거야?"


그랬다. 가까스로 찾아냈던 나의 두 번째 꿈. 꿈이라기보단 취업처, 목표에 가까웠던 한 때의 꿈. 나는 승무원이 되고 싶었다. 내가 대학생이었던 시절에는 특히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예쁜 유니폼, 마음껏 외국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점 등 그럴듯한 외부 요인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하고 싶었던 가장 궁극의 이유는 나의 쓰임새 때문이었다.


"언니, 아버지가 나에게 자주 했던 말 있잖아. 나는 '키만 멀대같이 크다'는 말이 정말 싫었어. 내가 키가 크고 싶어서 큰 것도 아닌데, 키가 커서 더 이런 말을 듣나 싶어서. 그런데 승무원은 키가 커야 유리하다는 거야."


<받아쓰기> 브런치 매거진 5화 '야물지 못한 인간들' 참고


그랬다. 나는 모델이 되기에는 작고 일반인으로는 부담스러운 174센티미터의 '멀대같이 큰 키'를 갖고 있었다. 지금은 나만큼 키 큰 여자들이 많이 보이지만, 나의 학창 시절에는 드문 편이었다. 그래서 원치 않게 늘 눈에 띄었고, 한 소리씩 들어야 했다. 키가 몇이냐부터 시작해서 나 3센티만 떼어줘라, 내 옆에 오지 마라 등등.. 이런 말은 지겹지도,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그들의 관심에 기꺼이 호응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하는 '키만 멀대같이 크다'는 소리만큼은 들을 때마다 지겹고 기분이 나빴다. 그러면서도 차마 대꾸할 수 없는 그 말을 조용히 삼키며 작아질 뿐이었다.


특히 멀~대라고 하는 아버지의 말투와 억양이 생생하다. 가벼운 타박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늘 나의 어떤 모자란 행동 뒤에 온다는 것이었다. 대체 나의 부족한 부분과 키가 무슨 상관인지, 나를 나무랄 때마다 아버지는 늘 그놈의 멀~대를 덧붙이셨다. 그놈의 키얘기는 그만 좀 했으면 싶었지만, 심지어는 체육선생님에게까지 타박을 받아야 다.


키가 커서는 달리기도 못하냐, 키가 크면서 농구도 못한다, 키가 큰데 배구도 못한다, 뜀틀도 못한다 등등.. 원체 운동신경이 없기도 했고 기민하지 못해 몸 쓰는 데는 더욱 자신감이 없었다. 그런 내가 또래 아이들 앞에서 받아내야 했던 희한하다는 그 말투와 눈빛이 지금도 수치스럽다. 운동 방면에서는 유리한 신체조건일 수 있으니 체육선생님도 괘씸하지만 이해는 간다. 그래도 그렇지, 키가 큰 사람은 무엇을 더 능숙하게 해낼 것이라는 기대는 그저 그들만의 착각이 아니던가. 옛말에 키 큰 사람이 싱겁다는 말도 그보다 작은 사람들이 보기에 듬직하다고 여겨놓고선 실제 그렇지 않으면 타박하기 위해 지어낸 말 아닌가 싶다.


이러한 이유로 야물지 못한 채  큰 것이 싫었던 나는, 나의 큰 키가 장점이 될 수 있는 승무원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 외국어를 잘했지만 키가 작았던 친구가 승무원을 염두에 두었던지 나를 유난히 부러워했다. 나는 그 부러움의 눈빛으로 나의 효용성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더 이상 나의 키가 모자람과 연결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승무원이 되지 않은(못한) 게 천만다행이다. 승객들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승무원이 허술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그러나 나의 모자람도 글감으로 삼아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라니, 나는 역시 작가를 해야 할 운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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