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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22. 2024

쉽게 단절을 말하기에는


며칠간 쉽게 쓰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아무래도 나 자신에게 실망한 것 같다. 사실은 계속 덮어두고 외면하고 싶지만 받아쓰기 매거진을 발행하기 위해 써보려고 한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생이 동네로 찾아왔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도 하며 근황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공통의 지인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전에 나와 친했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동생이 아직 그들과 친하게 지내냐 묻기에,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거기까지만 답하면 됐을걸, 내가 그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는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했다. 마치 내쪽에서 그들을 버려둔 것처럼, 관계의 우위에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못난 말들을 나열했다.


- A는 더 이상 내가 알던 A가 아니야. 많이 변했더라고.


- B는 좀 부담스러워. B는 어릴 때나 친했던 거지, 지금은 나랑 그 정도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해.


A는 여전히 그대로인 모습도 있고, 변한 모습도 있었다. 그래도 A는 A다. A의 변화를 곁에서 지켜보지도 않고 나가떨어진 건 내쪽이다. 내가 그 친구를 감당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놓고 변해버린 A탓을 했다. 나도 많이 변했으면서.


답정너였던 A와 관계가 틀어졌을 때 나는 그것을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A가 조금 이기적인 것은 맞지만 나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B는 내가 방황했던 학창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다. 동생과 공통의 지인을 통해 B가 나를 가장 친한 친구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황급히 선을 그었다.


B와는 20대 초반, 성인이 되어서 다시 만났다. 반가운 마음도 있었지만 학창 시절에 그 친구로 인해 상처받았던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래서 다시 친하게 지내려 해도 피상적인 만남이 되었다. 연락만 간간이 주고받는 사이로 남았다.


 미성숙한 시기에 가깝게 지냈던 만큼 나 또한 그 친구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오랜 시간을 공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특별한 친구로 여겨주는 B의 마음을 나는 외면했다.




나는 사람을 담는 그릇이 원체 작고 얕아서, 부대끼는 관계를 견뎌내지 못한다. 사람과의 관계란 부대끼기도 하며 견고해지고 깊어지는 필연적 단계를 거치는데, 나는 그 단계를 통과한 사람이 다섯 손가락에 꼽는다. 그런데 이마저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은 그저 잘 살고 있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묻어두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에 A, B를 모두 솎아낸 건 놀랄 일도, 새삼스럽게 실망할 일도 아니었지만 그들을 공통으로 알고 있는 동생에게 굳이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나의 단절을 합리화하기 위한 발언들은 그들에 대해 험담하는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 끝에, 과연 내게 진정한 친구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해버린 친구의 모습만큼이나, 좋은 방향으로 변했을지도 모르는 친구의 모습도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았다. 변해가는 세상은 그렇게 기를 쓰고 적응하려 하고, 나의 변화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내 곁에 오래 머물렀던 친구들은 쉽게 져버릴 수 있는 존재로 취급했다.


나를 품어주었던 관계는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 민망해 멀어지고, 내가 품어내기로 작정한 관계는 끝내 품지 못해 멀어지고, 나와 어깨동무하고 걸었던 관계는 그 시절의 내가 밉고 안쓰러워 멀어지고 만다. 그리고 나와 속도가 맞지 않아 아직 걸쳐있는 친구의 팔도 마저 떨어뜨리고 걷는다. 보폭을 맞춰 걸었던, 그들과 함께 했던 그 시절의 나는 어디에 있나.


어쩌면 나는 새로운 친구를 찾아 떠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제각각 삶의 모양과 환경이 달라져버린 친구들은 뒤로 한 채, 나의 걸음을 온전히 응원해 주고 함께해 줄 수 있는, 내가 가는 길에서 만날 친구들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른이 되어서는 진정한 친구를 만나기 어렵다고 하지만, 가치관이 맞거나 서로가 하는 일을 통해 신뢰를 쌓을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어른이 되어서도' 오래 간직해 온 것을 서로를 통해 들여다볼 때, 보석을 발견한 것 같은 기쁨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렇더라도,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인생의 한 시절을 함께 해 준 친구들에 대한 우정만큼은 지켜내야 하지 않겠는가. 빛바랜 우정이라 할지라도, 그 시절의 밀도만큼으로 지내지는 못할지라도, 그때 우리는 함께였지. 그땐 그랬지. 하며 떠올리고 멀리서나마 응원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단절이 아닌 연결된 관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연결된 관계에서 이따금씩 나누는 한숨과 기쁨은 대관절 우정이 아니면 무엇일까.


연결되는 것에도 끊어내는 것만큼의 결단이 필요한 것 같다. 쉽게 단절을 말하는 세상에서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은, 나조차도 잘라내버리려 하는 행위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디로도 오도 가도 못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전부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모든 것을 수용할 수는 없어도 함부로 끊어내지 않는 마음은 그 시절 미숙했던 너와 나를 다시 한번 받아들이는 용기가 아니고 무엇일까. 쉽게 단절을 말하고 나서 우두커니 서서 쓰는 부끄러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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