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 Aug 20. 2024

내게 이런 말을 하는 당신은 누구시길래

엄마의 트로피


이십 대 초반 교생실습을 던 때였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다 큰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진짜 어른이 된 것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상담선생님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은 나를 잘 따라주었고, 종종 상담을 요청해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열심히 들어주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좋은 말은 다 해주었다. 고작 몇 년 더 살아봤다고 그게 가능했다.


그러다 외가 쪽 친척 결혼식에 참석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명절에 참석 후 거의 10년 만에 나타난 셈이었다. 엄마는 결혼 이후 웬만해선 외갓집에 가질 않았다. 식구들을 볼 면목이 없다고 했다. 외삼촌은 모두 일곱 명이었고, 대부분 명문고와 명문대를 나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교생 실습 때마다 걸치고 가던 세미정장 재킷과 치마를 입고 선 나의 모습에 삼촌들은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네가 조이야? 언제 이렇게 컸어?"


어렸을 때라면 몇 번 만나지 않던 친척 어른에게 쑥스럽게 인사했겠지만, 교생실습을 하며 사회 물 좀 먹은 덕분인지 나는 밝고 당차게 인사를 드렸다.


"삼촌! 저 조이예요. 제가 원래 키는 컸잖아요. 그새 더 컸죠?"


어엿한 아가씨로 커버린 조카가 붙임성까지 장착한 것이 삼촌들은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얼굴은 몇 번 보지 못했어도 내가 자라는 과정에서 삼촌들이 때마다 많은 도움을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사를 앞둔 때, 내가 아플 때, 궁지에 몰린 엄마가 전화기 다이얼을 누르고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삼촌들과 통화하던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나는 그들의 도움으로 잘 자랐음을 증명해야 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 자리에서 우리는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내 기억에 삼촌들의 자녀, 그러니까 나의 사촌들은 따로 참석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언니도 직장에 가야 해서 나만 엄마를 따라나선 자리였다. 나는 외갓집에 내세울 것 없었던 엄마의 트로피였다. 소싯적 예뻤다던 엄마의 얼굴을 그대로 닮았다며 삼촌들이 한 마디씩 했다. 여기에 큰 키는 아빠를 닮았다며 엄마는 흐뭇하게 거들었다. 뚱뚱한 엄마와 마른 나를 비교하며 누가 모녀사이라고 생각하겠냐며 삼촌들이 농을 던져도, 엄마는 그저 본인 딸에 대한 칭찬으로 들리는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는 마음이 아팠다. 엄마의 아름다움을 내가 다 빼앗아 떠안은 것 같아서. 그러니 나는 나의 딸에게 아름다움을 물려주더라도 나의 아름다움을 잃지는 않고 싶다. 아름다움은 나다움이라고 했으니.


삼촌들은 나의 근황을 물어보았고 나는 밝게 대답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던 중이었다. 입은 분명히 웃고 있었는데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삼촌들과 숙모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 어.. 아니 이게 왜 이러지. 이거 그냥 기뻐서 우는 거예요. 너무 기뻐서."


외갓집에서 가장 성공했다던 사업가인 삼촌이 내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신 까닭이었다. 나는 그런 말들이 너무 듣고 싶었다. 대학교의 지도교수님이나 교회에서 만난 집사님들이 간혹 좋은 말씀을 해주셨지만 그들에게 나의 사정을 다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나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어른이 내게 해주는 조언은 그 색이 달랐다. 나의 가족이 건네는 조언은 깊이가 달랐다. 그가 나의 삼촌이라는 사실이, 내가 힘들 때 언제든 조언을 구할 수도 있었을 이 어른이 나의 가족이라는 사실이 좋으면서도 억울하고 기쁘면서도 서러운 묘한 감정이 뒤섞였다.


내가 그때 들었던 말은 특별한 게 아니었다. 자기 계발서에 나와있을 법한 일반적인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가족이 하는 말은 달랐다. 내게 와닿는 힘이 있었다. 그가 꼭 성공한 사업가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자기 인생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전해 준 어떤 가치는 그의 삶으로 증명된다. 나는 못했으니 너는 그렇게 하길 바란다는 말보다도, 내가 해봤더니 이렇더라 혹은 같이 해보자는 말이 더 신빙성 있게 들리는 법이다.


나는 이제 그때를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말해주려 한다. 필경 잔소리가 아닐 수 있는 이유는, 나의 삶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것에 아이의 삶을 대입시키지만 않는다면 그저 한 사람의 인생에서 들을 수 있는 진정성 있는 말로써 가닿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판단은 아이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아이가 나를 실패자로 판단할까 봐, 나의 노고를 몰라줄까 봐 인생의 어려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아쉽다. 인생의 어려움에 대해 자식 앞에서 한탄을 할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의지를 보여야만 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아이에게 이 힘든 세상을 헤쳐가라고 말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아직 나가보지 않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만 심어주는 꼴이다.


부모가 이 과정을 자녀에게 성실하게 공유하면, 훗날 자녀는 세상을 살아가며 부모를 존경하게 될 것이다. 꼭 위인전에 나오는 이들의 인생만 위대하지는 않다. 그들만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가치를 삶으로 전할 수 있는 존재라면, 그가 가족이라면, 그것도 부모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자녀 입장에서는 최고의 부모를 둔 것이다. 존경하는 인물란에 부모님을 적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자신들의 부모가 들려주는 말과 그 삶이 일치한 것을 본 사람들은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외삼촌들 앞에서 '잘 자랐음'을 증명하는 엄마의 트로피 역할은 무사히 끝이 났다. 그러나 진짜로 증명해야 하는 어마어마하고 귀여운 존재들이 내 앞에 있다. 일상생활 속 모든 모습까지도 지켜보고 있는 이 아이들 앞에서 나는 '잘 살았음'을 증명해 낼 것이다. 판단은 아이들 몫이 되겠다. 떨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