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 Apr 18. 2024

휴직자, 무급의 무게를 견뎌라

무겁고 무서운 무급의 세계로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핑계로 덜컥 휴직을 냈다. 아이는 생각보다 빨리 적응했다. 나는 생각대로 더 빨리 적응했다. 이 얼마나 기다리던 휴직인가!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은 시간, 이 시간이 아까워서 견딜 수가 없다.


아이의 등교시간에 맞춰서 나도 출근하는 것 마냥 준비를 한다. 평소와 같이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입는다. 아이는 학교에 가고 나는 도서관에 간다. 평소보다 더 많은 페이지를 읽을 수 있고, 내키면 종일이라도 앉아 있을 수 있는 자유, 이 자유가 좋다. 다 좋은데 문제는 '무급' 휴직이라는 거다.


그동안 맞벌이하며 모아놓은 돈이 없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많다. 아파트 대출금 상환에 거의 한 사람의 월급을 통째로 납부해오고 있다는 사실과 주식에 물린 돈이 상당하다는 사실, 이런 자질구레한 사정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무급이라는 단어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무겁다. 그리고 무섭다.  단어의 무게를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는지가 그 사람의 생활능력을 판단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겨우 몇 개월 휴직에 마음 놓고 생활할 돈이 넉넉지 않다는 현실이 참 슬펐다. 그러다 화가 났다. 이러려고 기를 쓰고 공기업에 들어온 게 아니던가? 육아휴직이 비교적 자유롭게 보장되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휴직을 지 못하는 이유가 무급이기 때문이라니. 심지어 그리 큰 액수도 아닌 내 월급, 이것 없다고 몇 달을 못 살까?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처음 사용했던 육아휴직은 1년간 유급(통상임금의 70%)이었다. 나머지 기간은 무급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기회가 있어도 무급이라는 이유로 쓰질 못한다면 이건 정말 미친 짓이다. 아까워 미칠 일이다. 이건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워킹맘으로 버티며 살아온 시간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화가 나고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선전포고와 같은 통보로 나는 자유를(휴직을) 얻어냈다. 나의 자유선언문에 남편은 순순히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지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