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법정에서 '유죄'가 선고되는 순간, 의뢰인의 세상은 무너지는 듯했습니다.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말에 잠시 현혹되었을 뿐인데, 거대 금융사기 조직의 '공범'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습니다. 스스로 '자백'했다는 사실은 모든 희망을 꺾는 차가운 족쇄처럼 보였고, 징역형의 집행유예라는 선고는 일상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절망의 낙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법률가의 눈에는, 그 무력한 '자백'이 범죄의 인정이 아닌, 피해자들에 대한 절박한 '도의적 사과'일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의뢰인은 고수익을 미끼로 한 거대한 금융사기 조직의 최하위 직급인 '주임(부업판매원)'으로 참여했습니다. 이 조직의 논리는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고급 안마의자 1대(1,100만 원)를 구입해 위탁하면, 이를 두바이 등 해외 VIP 라운지에 실제로 설치·운영해 총 2,000만 원을 지급한다.' 실물(안마의자)이 존재했고, 구체적인 운영 계획(두바이 VIP 라운지)까지 제시되자 사람들은 의심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 실체는 신규 투자자의 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의 수익금을 지급하는, 전형적인 '돌려막기' 구조의 금융사기였습니다.
검찰은 의뢰인이 조직의 최상층부인 B 등 주범들과 순차 공모하여 약 30회에 걸쳐 5억 원 이상의 투자금을 교부받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방문판매법 위반 및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의뢰인은 순식간에 '가해자'로 전락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그대로 유죄로 인정하고, 피고인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의뢰인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항소를 제기했고, 저희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1심 판결을 원점에서부터 뒤집기 위한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 했습니다.
항소심에서 승소하기 위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단연 의뢰인이 1심 법정에서 행한 '자백'이었습니다. 이미 유죄의 핵심 증거로 사용된 피고인의 법정 진술을 탄핵하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저희는 사건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훑으며 '고고학자'의 심정으로 진실의 파편을 맞추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모순점을 발견했습니다.
의뢰인은 1심 변호인 의견서, 경찰 조사 등 모든 수사 과정에서 혐의의 핵심을 일관되게 부인해왔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1심 변호인조차 공판기일에서 "피해자 중 4명만 모집했고 나머지는 모른다"고 변론했는데, 이는 '공소사실 전부를 인정한다'는 자백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었습니다.
저희는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의뢰인의 자백은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법정이라는 엄숙하고 위압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소개로 금전적 피해가 발생한 것에 대한 '도의적 사과'와 '반성'의 표현일 뿐, 주범들과 불법행위를 공모하고 그 위법성을 명확히 인지했다는 '법률적 구성요건'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법정에서의 '자백'이 곧 법리적 '유죄 인정'과 동일시될 수 없음을 논증하여, 자백의 증거능력을 사실상 무력화시켰습니다.
검찰이 의뢰인을 '공동정범'으로 기소한 근거는 조직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투자금을 모집했다는 사실 그 자체였습니다. 이는 '관여'와 '공모'를 혼동한 논리였습니다. 저희는 의뢰인의 실질적인 역할과 지위를 객관적 증거로 명확히 분리하여, 그를 '공범'의 프레임에서 '말단 판매원'의 위치로 되돌려 놓는 데 집중했습니다.
의뢰인은 조직 내 최하위 직급인 '주임' 또는 '부업판매원'에 불과했으며, 심지어 본업으로는 부친의 회사에서 성실히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조직적 범행에 깊숙이 가담할 시간적, 물리적 여유가 없었음을 의미합니다.
더 결정적인 증거는 보상 구조에 있었습니다. 의뢰인은 상급자(대리/실장)부터 받는 '영업지원금'이나 고정급여를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그가 받은 것은 오직 본인이 투자자를 모집할 경우 지급되는 1회성 '판매수당' 30~40만 원뿐이었습니다.
재판부 역시 이 수당이 지나치게 과다하다고 보기 어려워, 수당 구조만으로 이 사업의 비정상적 구조를 파악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이는 의뢰인이 조직의 이익을 공유하거나 범행 의사를 공모한 '공범'이 아니라,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고 수수료를 받는 '말단 판매원'의 역할에 불과했음을 입증하는 강력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무죄 판단의 핵심은 '불법성에 대한 고의(범의)가 없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즉, 의뢰인 스스로도 이 사업이 사기임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저희는 이를 위해 즉시 피해자들로부터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피해자 R로부터 "안마의자 구매 당시 피고인이 처음부터 원금보장이 안 되고, 매달 나오는 수수료도 일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는 탄원서를 확보했습니다. 또한 피해자 Q(의뢰인의 장모)로부터도 "피고인이 원금 보장이 안 된다고 얘기했다"는 사실확인서를 받아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이 두 자료는 '원금보장과 고수익 확정'을 내세우는 전형적인 금융 사기 수법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습니다. 의뢰인이 투자자를 기망하려는 고의가 전혀 없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였습니다. 오히려 원금 손실 가능성을 고지했다는 사실은, 의뢰인 스스로도 이 사업을 '투자의 일종'으로 믿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상급자 H는 두바이 VIP 라운지를 직접 방문하는 등 핵심 정보에 접근했지만, 의뢰인은 그러한 접근권조차 없어 정보 비대칭성이 컸다는 점을 변론하며, 그가 사기 범행을 인지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승소를 이끈 가장 결정적인 전략은, 저희가 집요하게 관련 사건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저희는 의뢰인의 상급자이자 강릉지부 부장보였던 F의 관련 사건 판결문을 모두 입수하여 분석했습니다. 놀랍게도 F 역시 1심에서 유죄를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사업이 정상 운영된다고 믿을 여지가 있으며, 불법성에 대한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가 선고되었고, 이는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저희는 이 '확정된 무죄 판결'을 항소심 재판부에 강력한 핵심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전개했습니다. "상급자 F조차 정보 접근의 한계로 인해 고의가 부정되어 무죄가 확정된 이상, 그보다 하위 직급에 있고 정보 접근성도 훨씬 제한된 의뢰인에게 공모나 고의를 인정하는 것은 형평과 논리에 정면으로 반한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주장을 결정적으로 받아들여, 의뢰인의 무죄를 인정하는 핵심 판단 근거로 삼았습니다. 1심의 절망적인 유죄 판결은 그렇게 항소심에서 완벽한 무죄로 뒤집혔습니다. 억울한 혐의를 벗고 일상을 되찾을 방법은, 이처럼 포기하지 않는 과정 속에 반드시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