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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가 비슷하다고 소송당했으나 승소한 이야기

by 안영진 변호사


"그 가게, 우리 가게랑 인테리어가 비슷하네요." 이 한마디로 시작된 소송.


요즘 '감성' 인테리어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톤앤톤 컬러, 아치형 가구, 따뜻한 조명. 그런데 만약, 당신의 가게가 이 '감성' 때문에 수천만 원짜리 소송을 당했다면 어떨까요? "우리 매장을 표절했다"는 억울한 주장을 뒤집어낸, 한 치열했던 법적 공방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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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은 '같은 시공업자'였습니다


사건은 한 상권에서 시작됐습니다. 먼저 자리를 잡은 액세서리 매장(원고)이 있었죠. 얼마 후, 저희 의뢰인(피고)이 인근에 동종 업종의 매장을 열었습니다. 문제는 두 매장의 인테리어 '콘셉트'가 일부 유사하다는 점에서 불거졌습니다. 사실 '유사하다'는 것만으로는 법적 조치를 취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원고 측이 찾아낸 결정적 연결고리는 바로 '시공업자'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의뢰인은 원고가 매장 시공을 맡겼던 바로 그 업자에게 공사를 의뢰했습니다. 이 사실 하나로 원고의 의심은 확신이 되었습니다.


원고의 주장은 날카롭고 구체적이었습니다. "피고가 시공업자에게 '원고 매장처럼 똑같이 해달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이는 우리가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 구축한 디자인 성과를 도용한 명백한 '부정경쟁행위'다." 부정경쟁방지법은 상표권이나 디자인권으로 등록되지 않았더라도 타인의 상당한 노력으로 이룬 성과를 무단으로 사용하여 이익을 얻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원고는 이 법 조항을 근거로 매장 장식의 사용 금지, 모든 시설물 폐기, 그리고 그간의 영업 이익에 대한 수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장을 보내왔습니다. 개업과 동시에 사업의 존폐를 걱정해야 할, 그야말로 막막한 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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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창작'과 '의뢰'는 다르다는 질문


소송에 휘말리면 "어디가 얼마나 비슷한가"라는 지엽적인 공방에 갇히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 "그 디자인을 실제로 누가 만들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집중했습니다. 법적으로 보호받는 '성과물'은 '상당한 투자나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창작물이어야 합니다. 원고는 자신이 그 창작자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매장 인테리어라는 작업의 특성을 파고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시공업자와의 계약 관계, 수없이 주고받은 자료, 그리고 시공업자의 사실확인서를 면밀히 검토했습니다. 그 결과, 원고는 디자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도면을 그리고, 자재를 선정한 '창작자(Creator)'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비용을 지불하고 "이런 느낌으로 해달라", "저런 색감을 써달라"고 요청한 '도급인(Client)'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도급인의 의견이 반영되지만, 그것이 곧 '창작'은 아닙니다. 실제 디자인을 구현하고 완성한 주체는 시공업자와 그 직원들이었습니다. 이는 법적 보호의 주체를 가르는 매우 중요한 첫 번째 쟁점이었습니다. 내 돈을 들였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법적으로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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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것은 '독창성'이 아니라 '보편성'입니다


두 번째 쟁점은 '독창성'이었습니다. 설령 원고의 노력을 일부 인정한다 해도, 그 결과물이 과연 법으로 보호할 만큼 독창적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원고가 자신만의 고유한 디자인이라고 주장한 핵심 요소는 '아치형 진열장'과 '특정 톤앤톤 컬러 배합'이었습니다. 만약 이것이 정말 원고만의 기발한 아이디어라면, 의뢰인의 사용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즉시 국내외 액세서리 업계, 인테리어 디자인 트렌드를 전수 조사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인터넷 검색 몇 번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습니다. 수년 치의 인테리어 매거진, 핀터레스트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의 트렌드 분석 자료, 해외 유명 상점들의 디자인 아카이브까지 샅샅이 뒤졌습니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원고가 주장한 디자인 요소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미니멀', '소프트' 감성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하며 업계를 휩쓸고 있던 '보편적 콘셉트'였습니다. 수십 개의 유사 사례 자료를 법원에 증거로 제시하며 "이것은 원고의 독창성이 아니라, 동종 업계 누구나 사용하는 공통의 트렌드이자 디자인 언어"임을 강력하게 증명했습니다. 트렌드를 선점했을 순 있어도 독점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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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결정적 증거: 원고 스스로의 '모방'


변론을 준비하던 중, 우리는 이 사건의 승패를 가를 결정적인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원고(소송을 제기한 측) 역시, 최초 매장을 시공할 당시 시공업자에게 다른 여러 매장의 사진을 참고용으로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그 역시 "이런 느낌으로 해달라", "저기 저 가게처럼 해달라"고 타인의 결과물을 참고했던 것이죠.


이것은 단순히 '내로남불'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법적으로 이는 원고 주장의 신빙성을 근본부터 흔드는 치명적인 증거였습니다. "나의 디자인은 상당한 노력이 투입된 고유한 성과물"이라고 주장하던 사람 스스로가, 사실은 독창적인 창작자가 아니라 기존의 스타일을 참고하고 모방한 '참조자'였음을 인정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디자인이 독창적이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꼴이었습니다. 이 증거가 법정에서 제시되었을 때, 원고가 주장했던 '창작의 고통'과 '상당한 노력'은 그 설득력을 크게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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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경쟁의 자유'를 지켜낸 법원의 판결


치열한 법적 공방 끝에, 재판부는 저희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재판부는 "원고가 시공업자에게 전체적인 톤을 요청하고 의견을 제시하며 참고 사진을 전달한 사실은 인정되나, 그것만으로는 법의 보호를 받을 만한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명확히 판시했습니다.


더 나아가, 재판부는 해당 인테리어는 시공업자가 원고의 요구, 그가 참고한 외부 매장들, 그리고 업계의 일반적인 연출 방식을 '종합하여 완성한 결과물'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즉, 그 디자인의 성과는 원고 개인이 아닌, 시공업자와 업계 트렌드 전반에 걸쳐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재판부는 부정경쟁방지법의 '보충적 일반조항'(일명 '카목')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조항의 보호 범위를 지나치게 확장하면, "특정 색상이나 가구 형태를 먼저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후발 주자의 시장 진입을 막게 되어, 오히려 헌법상 보장된 '경쟁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자유로운 시장 경쟁을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는 것입니다. 결국,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전부 기각했습니다.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사업 기회를 박탈할 수는 없다는, 공정한 경쟁의 의미를 되새긴 판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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