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은 사기와 문서위조 혐의로 기소했지만, 재판은 다른 결론을 내렸습니다.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를 받은 이 사건, 핵심은 ‘고의’와 ‘공모’였습니다.
1. 단순 채권추심? 아니면 보이스피싱 공범?
2021년 6월, 한 20대 청년이 텔레그램으로 전달받은 지시에 따라 특정 주소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낯선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아 지정된 장소에 전달하는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일명 ‘현금 수거책’으로 알려진 역할이었습니다. 검찰은 이 일련의 행위를 보이스피싱 조직과의 ‘사기 공모’로 해석하고, 피고인을 사기 및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단순한 채권추심 아르바이트였다고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 구인 사이트에서 “간단한 심부름 알바”라는 설명을 보고 지원했으며, 근무 중에도 범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주장이 재판에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피고인의 인식과 고의, 그리고 조직과의 연계성에 대한 치밀한 법리적 분석이 필요했습니다.
피고인이 위조 문서를 전달한 정황은 있었지만, 그는 그것이 위조 문서인 줄도 몰랐고, 단순히 ‘고객에게 전달할 확인서’ 정도로만 인식했다는 진술을 반복했습니다. 피고인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고의 없는 행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핵심은 피고인의 ‘주관적 인식’과 그에 대한 ‘객관적 정황’이었습니다.
2. 국민참여재판이 주목한 ‘고의’와 ‘공모’의 경계
재판부와 배심원단이 주목한 것은 피고인의 행위가 얼마나 ‘고의적’이었는가, 그리고 조직과 어떤 ‘공모 관계’였는가였습니다. 우리 형법상 공동정범이 성립하려면 단순히 결과만이 아니라, 범행에 대한 의사연결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피고인이 범죄 사실을 ‘인식’하고도 ‘용인’했는지가 핵심입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단 한 번도 조직원들과 대면한 적이 없었고, 오직 텔레그램을 통해 지시만 수령했습니다. 조직원과의 연락은 단문 메시지 수준이었고, 범행 계획이나 전체 구조에 대한 안내는 전혀 없었습니다. 이처럼 상호작용이 극히 제한적이고, 피고인이 실제 범죄 구조를 몰랐다면, 공모 관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변호인의 주장입니다.
또한, 피고인은 피해자와 접촉하긴 했지만, 그 만남 역시 피고인의 판단이나 기획이 아닌, 오로지 전달받은 지시에 따른 행동이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과정을 피고인이 전혀 은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택시비를 본인 카드로 결제하고, 실제 본인의 휴대전화를 사용하며, 전달된 금전의 이동도 그대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범죄를 저지르려는 사람이 취할 행동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3. 변호인의 전략: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의 원칙 활용
이 사건의 방어 전략은 형사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인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즉, 검사가 피고인의 고의 및 공모를 의심할 수는 있어도, 그에 대한 명백한 증명을 하지 못하면 무죄라는 원칙입니다.
변호인은 피고인의 행위가 반복적이지 않고, 일회성 알바에 불과했으며, 직전까지도 범죄 사실을 몰랐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피고인은 범행 당일 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자신이 한 일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사기라는 것을 알게 되자 곧장 경찰서에 자수했습니다. 자수 당시 제출한 휴대폰과 진술서는 조작의 흔적이 전혀 없었고, 경찰도 초기 수사에서 이 점을 확인했습니다.
이 자수는 단순히 양형에서 참작되는 사정이 아니라, 피고인이 범죄를 인식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정황이었습니다. 변호인은 자수 시점, 자수 방식, 제출한 자료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진정성을 부각시켰고, 이는 배심원단의 신뢰를 얻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변호인은 위조 문서의 실체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반박했습니다. 피고인은 출력만 했을 뿐이며, 서류의 내용이나 진위 여부를 판별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했습니다. 피고인의 역할이 단순 출력과 전달이었다면, 문서위조죄의 고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논리였습니다.
4. 재판부의 판단: ‘사회 초년생’의 한계와 진정성 인정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사실관계를 종합해 판단을 내렸습니다.
첫째, 피고인은 23세의 사회 초년생으로, 금융이나 법률 지식이 거의 없었습니다.
둘째, 구직 플랫폼을 통해 면접 없이 온라인으로 채용되었으며, 실제 업무 지시는 텔레그램으로 간략히 이루어졌습니다.
셋째, 피해자들과의 상호작용은 현금 수령이라는 단순 접촉에 그쳤고, 그 외 어떤 계획에도 개입한 정황이 없었습니다.
넷째, 사건 직후 자수했으며, 자수 내용에는 허위나 모순이 없었습니다.
또한, 재판부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구성원’이라면 당연히 감추었을 정보들을 피고인이 그대로 노출시킨 점을 주목했습니다. 이는 오히려 피고인이 범죄라는 인식 없이 정직하게 행동했음을 보여준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결국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 전원 일치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 판단은 단순히 운이 좋은 결과가 아니라, 치밀한 전략과 법리적 해석, 사실관계 분석이 어우러진 결과였습니다.
5. 형사전문 변호사의 전략이 만든 ‘무죄’의 결과
보이스피싱 사건은 언론 보도나 사회적 인식 탓에 피의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 쉬운 범죄 유형입니다. 따라서 피의자의 ‘행위의 맥락’을 설명하지 않으면 자칫 전형적인 사기 공범으로 오해받기 쉽습니다.
이번 사건의 무죄는 변호인이 초기에 수집한 자수 경위, 피고인의 진술 일관성, 조직과의 단절된 구조, 문서 출력의 단순성 등을 종합해 법정에서 전략적으로 설득한 결과입니다. 사실관계 하나하나를 ‘무죄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전환한 작업이 무죄 판결을 가능케 했습니다.
형사사건에 휘말렸다면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해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특히 고의나 공모가 쟁점이 되는 사안일수록, 법리적 반박이 핵심입니다. 이를 일반인의 언어로 전달하는 작업, 그리고 그 말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전략이 바로 변호인의 역할입니다.
국민참여재판은 시민들의 상식과 감정, 신뢰가 판결에 반영되는 제도입니다. 이번 사건처럼 전원 일치 무죄가 나온 배경에는 그 상식을 자극한 진정성, 그리고 그 진정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법적 언어가 있었습니다.
형사사건에서 억울한 유죄를 피하려면, 초기 대응부터 법적 전략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형사전문 변호인의 조력을 통해 단순 해명에서 벗어나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방어 논리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억울한 누명을 막는 유일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