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내 친구들에게 전하는 소박한 위로
#1 다혜는 21세의 나이에 부모님께 독립을 선언했다. 밤 9시에 들어오기만 해도 “왜 이렇게 늦냐”고 핀잔을 듣는 것이 싫었고, 이제 나도 나만의 삶을 꾸려나가고 싶었다. 월세, 치안, 끼니 등등이 걱정되었지만, ‘원래 처음에 독립할 때는 다 그런 거 아니겠냐’며 호기롭게 새 출발을 공표했다. 부모님은 반대하는 듯 머뭇거렸지만, 다혜의 굳건한 의사표시에 이내 못이기는 척 허락했다. 그러나 다혜는 생활비와 월세를 벌기 위해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돈을 모아야 했다. 자기만의 공간을 획득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매번 신청하는 행복주택도 번번이 탈락하기 일쑤였다. 친구 민아는 “원래 20대 초반에는 부모한테 얹혀살 수밖에 없다”며 “그래도 니가 선택한거면 책임을 져야지”라고 비아냥거리듯이 말한다.
#2 성희는 지난 2월 전 남편 규현과 이혼했다. 사유는 신문에서 가끔 대서특필되는, ‘이혼율이 증가하는 원인 1위’, 성격 차이다. MBTI가 모든 인간을 정확히 설명하지는 않지만, INFP인 성희는 모든 항목에서 정반대인 ESTJ 규현을 견디기 어려웠다. 상사의 몰상식한 조롱과 비판을 규현에게 토로하면, 돌아오는 말은 “너도 빌미를 줬네. 더 좀 잘해봐.” 이따금씩 쏘아붙이는 직설적인 말에 상처받은 일이 한 두번이 아니다. 기분 상한 내색을 내비쳐도 그 미묘한 감정의 결을 규현이 알아차릴 리 없다. ‘이혼녀’라는 사회적 낙인이 잔존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힘들까봐 망설였지만, 같은 공간에서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성희는 결국 이혼을 택했다. 이혼을 결사반대하던 엄마는 “그러길래 왜 그렇게 성급히 결혼했냐”며 질책했다. 하긴, 성희는 규현을 소개팅으로 만난지 한 달만에 결혼을 택했다. 그러나 그 당시 성희는 30대를 바라보고 있었고, 당시 규현은 나름 섬세하고 배려심 깊은 남자였다.
#3 민정은 IT개발자로 일한 지 2년 만에 허리디스크로 입원하게 되었다. 자고 일어났는데, 아침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 정도여서 결국 응급실로 실려 갔다. 의사는 “어쩌다 이 지경까지 가게 놔두었냐”며 빠른 시일 내에 수술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수술을 하면 한 달 동안 입원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결국 수술을 포기하고 1주일간 입원하며 약을 먹고, 진통주사를 맞으며 잠깐의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프리랜서 IT 개발자로서 이번 달 내로 마감해야 할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한 달 남짓의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일주일 휴식도 꽤나 어렵게 쟁취한 것으로, 이마저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건강을 돌보지 않았으면 이러냐”고 “당장 수술하라”고 권유한다. 그러나 민정에게 이 프로젝트는 민정의 미래 향방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프로젝트이고, 이를 통해 돈을 벌지 않으면 궁핍에 허덕일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럼에도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다혜, 성희, 민정은 모두 ‘스불재’,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다. 사람들은 그리고 본인들도 스스로 잘못 선택한 결과 ‘자발적으로’ 고통을 불러왔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의 선택을 개인이 책임지는 일을 성숙한 어른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의 고통은 개인의 잘못된 선택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스스로가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선택과 책임’에는 ‘그러길래 왜 그랬어!’라는 조소 어린 시선도 녹아있다. 개인이 선택한 행동에 적절한 책임을 지지 못하는 이들은, ‘미성숙한 어른’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는 1차적 책임과, 그 선택에 대한 현명한 책임을 지지 못했다는 2차적 책임이라는 이중적 책임이 부과된다.
하지만 모든 선택은 개인의 선택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모든 고통에는 사회적인 측면이 스며들어있다. 다혜의 독립 선언에는 개인의 의지와 취향 뿐 아니라 ‘20대부터는 독립적인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당위가 깃들어 있으며, 다혜의 고통에는 청년을 위한 정책이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는 사회적 책임이 뒤섞여 있다. 성희의 경우에도 ‘성급한 결혼’이라는 개인의 선택에 ‘(당시에는) 30대 전에 결혼해야 한다’는 사회적 명제가 작동한다. 민정의 경우에도 ‘생존을 위해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결국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지탱하지 못한, 미성숙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성숙은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등식은 개인의 선택과 책임에 둘러친 주변적, 사회적 맥락을 비가시화한다. ‘그러길래 왜 그랬니’에서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니’ 라는 너그러운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