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녀가 서로의 장점을 술회한다. 이것이 결혼이야기의 첫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고 이 두 남녀가 이혼한 부부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애틋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랑의 속삭임이라고 생각했을 듯 싶다. 사실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의식이다. 결혼과 사랑은 분리될 수 있고, 이혼은 어쩌면 더 사랑하기 위해, 더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결혼의 제도적 불합리함을 성토하는 사회 고발형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결혼이야기’라는 제목에 걸맞지 않게 한 쌍의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되는 지난한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결혼이야기>는 미장센이나 화면구성 등의 영화 테크닉보다는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 섬세한 감정선 묘사에 주안점을 둔, 서정성 짙은 영화다.
결혼은 각자 다른 세계에서 온 두 사람이 ‘공유의 역사’를 써내려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20여년 간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조건 속에서 살아오던 두 사람이 각자의 삶을 청산하고 힘을 합쳐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렇게 판이한 삶의 이력을 축적해온 두 사람이 결혼을 통해 해야 하는 것은 각자의 개성과 역사를 억지로 찍어 눌러 공통된 일자(하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삶은 결혼을 경유하여 두 명이 공존하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한 명의 희생을 하거나, 한 명의 삶이 다른 한 명의 삶으로 흡수되는 형식의 삶은 존립하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사랑은 싹트기 어려우며, 한 명의 삶이 통째로 지워지는 형태의 강요(자발적 협력-때때로 강요는 ‘자발적 협력’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는 얼마가지 않아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마련이다.
<결혼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의 결혼 생활이 그러했다. 니콜은 결혼 후 본인의 삶을 잃어버렸다. 니콜의 삶의 속도와 향방은 찰리의 삶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둘이 ‘함께’ 낳은 자식은 오롯이 니콜의 몫이었다. 니콜은 LA에서 살기 원했고, 거기에서 본인의 커리어를 탄탄히 쌓아나가길 희망했다. 하지만 찰리는 그러한 니콜의 소망에 응답하기는커녕 본인의 입장을 내세워 그녀의 의견을 일축해 버렸고, 그렇게 니콜의 삶도 저물어갔다. 두 남녀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결혼에 여자 주인공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어버리는 결혼은 주인공의 온전한 삶을 가능케 하지 않았다. 니콜과 찰리는 여전히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지만, 서로 원하는 바가 달랐고, 좁혀질 수 없는 의견 차에 결국 이혼을 선택하게 된다.
이 영화의 백미는 완벽해 보였던 결혼 후 삶에 균열이 가는 과정을 매우 덤덤하게 그려내고, 이혼에 꽤나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이혼을 결정한 후 하는 행동들은 사실상 결혼하고 나서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니콜은 여전히 찰리에게 ‘여보’라는 호칭을 쓰고, 둘의 아들인 헨리를 분담하여 양육하고, 니콜이 찰리의 머리를 잘라주고,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서로 도와가며 하루하루 보낸다. 이들이 감정이 격앙된 채로 말싸움을 하는 과정도 사실상 일반적인 부부싸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이 헤어지는 과정은 니콜의 입장에 서는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기에, 절망적인 절차가 아니라 삶을 소생시키는 과정이다. 법정에서 서로를 비하하는 장면이 잠깐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혼하는 과정 내내, 그리고 이혼 이후에도 서로의 감정과 견해를 존중하고자 노력한다.
이 영화에서 이혼은 결국 상징적인 의미를 지닐 뿐이고, 따라서 이 영화의 제목은 ‘이혼이야기’가 아니라 ‘결혼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이혼하는 과정 면면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남녀가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도 각자의 삶을 지켜내고자 노력하는 과정에 역점을 둔다. 관계 맺기와 자신의 삶이 공존하기 위해서 한 선택이 이혼이었던 것이고, 사실상 이혼 대신 별거, 혹은 결혼을 유지하지만 지속적으로 다툼을 하는 과정으로 대체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 영화는 이혼 후에도 서로를 아껴주고, 두 사람의 삶은 헨리와 연극이라는 징검다리를 통해 지속적으로, 또 긴밀히 연결된다. 그리고 오히려 이혼 후에 더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 길래 그냥 이혼하지 말고 좀 맞춰 살아보지’라는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해피엔딩’은 이혼이라는 지리멸렬한 진통의 과정이 없이는 이룩할 수 없는 성과였다. 결혼은 결혼식이라는 일회성의 의례에 의해 완성되는 성격의 삶의 형태가 아니라, 지속적인 의견 조율을 통해 너무 다른 두 개의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합의해나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때로는 소중한 나의 세계와 영역을 지켜내기 위해 상대방과의 의도치 않은 결별이 필수적일 수도 있다. 두 사람이 의사소통 과정에서 미숙한 것일 수도 있고, 물리적인 거리 때문일 수도 있고,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나의 삶을 더 이상 내가 추구했던 바대로 향유할 수 없을 때, 이혼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이전보다 좋지는 않아서, 도 중요한 원인이지만, 결정적이고 근본적인 요인은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이다.
이런 식으로 이혼절차를 묘사함으로써 이 영화는 이혼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혔다고 할 수 있다. 흔히 낭만적 사랑의 정점이자 종착점이 결혼이라고 생각(착각)하지만, 결혼의 대립항인 이혼의 과정에서도 사랑의 불씨는 식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결혼 생활을 통해 의도치 않게 지워졌던 한 사람의 인생이 이혼을 통해 회생하면서, 이혼 후에 그들의 사랑은 더 안정적이고 ‘하나됨 속의 둘’, 혹은 ‘둘 속의 하나됨’을 적극 실천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혼을 통해 사랑 혹은 결혼을 완성하는 역설이 성립하지 않을까? 이혼을 종용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목표는 ‘삶의 행복’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결혼이 최종 목표가 아니고, 행복의 수단에 불과하다면, 이혼을 기피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결혼이라는 형식적 절차와 제도에 얽매여 본인의 인생을 희생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이 영화는 결혼에 속박되어 자신의 날개가 꺾인 상황을 방치하지 말고, 이혼하더라도 사랑으로 충만하고 자신의 날개를 활짝 펼 수 있는 삶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