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일탈

공허한 잉여의 오후

by 빙빙

일요일 오후 회사에 방문한다는 것은 이상한 기분과 갑갑한 기분 그리고 해방감 그럼에도 기시감 찌릿함 같은 다양한 감정을 몰고 온다 주중의 긴장된 순간들의 연속이 마치 고무줄이 끊어지듯 툭하고 끊어진 듯한 그런 공간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약간의 우울감과 우월감 그리고 작동하지 않은 공조 시설의 섞임으로 잽싸게 사무공간으로 들어갔다가 나가기 위해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생각을 한다 그리하여 일분 남짓 사무실이라 부를 수 있는 공간에서 내가 보낸 시간 빠르게 꺼낼 것들을 꺼내 내 자리의 서랍에 처박아두고 나왔다 물속 숨을 참고 싶은 욕구에서 벗어나 간신히 숨을 허락받은 자처럼 행동하며 임시로 발급받은 출입증을 건물 경비업체 직원에게 전달하고 주말의 공간과 시간으로 돌아왔다 항상 직원들이 즐비한 회사 건물 1층의 커피숍은 동네 주민으로 채워져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여름으로 나아가고 있는 하늘의 구석구석 나무에서 올라온 잎사귀 사이사이의 푸르름이 자리 잡았다 운도 없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가는 버스를 횡단보도 건너 먼발치에서 눈빛으로 쫓고 나니 다음 버스가 오는 시간은 30여분 후란다 심지어 좌석도 여유롭지 않다 택시를 탈지 버스를 탈지 고민하다 결국 나는 오늘 시간을 버리기로 했다 하여 정류장에 짐을 한껏 풀어헤치고 입고 있던 재킷도 벗어서 가방에 욱여넣는다

사람이 없어 정적이 가득하던 정류장에 사람이 조금씩 차기 시작한다 한 정류장 전으로 걸어 가야하나 고민이 되는 버스 도착 14분 전

가자 일어서자 뭐든 해야 한다 욘 포세의 샤이닝에서 어머니가 하던 말처럼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움직임의 결과 버스 도착 10분 전

이상하다 나는 더 버스로 가까이 걸어가고 버스도 나에게로 왔는데 내가 걸은 시간 4분만이 그저 줄었다 마치 그 어떤 변화도 없는 듯한 웜홀을 통과한 듯한 이상한 기분 시간이 쑥딱 가위로 잘라진 것처럼 통편집당해버렸다 한 정거장에서 다음 정거장이 그저 뜀박질처럼 한 걸음에 닿아야 한다는 사실 인정하기 어렵지만 이게 바로 내가 사는 세상일지도

무언가를 하고자 부지런히 움직이고 벌이고 날라차기하고 뒤차기하고 아니하더라도 그저 그 자리라는 것 아이러니한 세상이 바로 내가 사는 공간일지도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야 하나

아니 내 다리 근육은 그래도 길러졌겠지 그리고 내 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뭔가가 변화가 있었다는 단단한 증거겠지 집에 가는 시간이라는 차원에서는 그 어떤 변화도 없었기에 나는 제자리지만 내 몸은 안다 나는 움직였다


그리고 이제 버스 도착 5분 전

건물 끝에 깨작하게 걸린 태양이 내 뒷목을 따갑게 내리쬔다 마치 째려보듯 내가 째려보는 그것이 나를 그리 쳐다보듯 말이다 그리하여 더욱더 날짝지근한 더위를 느낀다 야리송한 느낌과 함께 말이다 그 눈길과 함께 이전 회사인가 이 이전인가에서 나누어준 반팔티 안으로 땀 한 방울이 내 등을 타고 내려간다 허벅지의 근육들은 타오르는 태양의 이글거림을 느낀다 한적한 정류장은 마치 오래된 우주정류장 같다 서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낡아빠진 정류장 말이다

하지만 이 공간이 주중에 얼마나 붐비는지를 생각하면 나의 이 생각이 얼마나 현재만을 간직하는지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그 붐비는 공간 속에 갇히는 상상까지 굳이 지금 해야 싶기도 하다 그런 내용은 불필요한 환영을 바라보는 일에 더 가깝기도 하다 지금의 나는 흐르는 땀을 말려줄 바람 포근한 바람과 곧 당도할 버스에만 집중하면 된다 이 낡은 정류장이 군파로 인해 다시 빛나든 말든 그건 지금의 나에겐 다른 정보 아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렇게 같은 시공간 속에 있지만 우리는 여러 세계에 살고 있다 심지어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음에도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지도


드디어 1분 전 한 정거장 전으로 다가왔다

기다림이 안착으로 바뀌는 시점 버스의 한 귀퉁이에 내 몸을 앉힌다 버스는 달리고 달려 내가 처음 있었던 정류장으로 간다 아아 이래서 그랬구나

신호에 걸리지 않고 달리는 버스는 4분이 걸려 내가 당도한 거리를 단 30초 만에 도착하였다

어쩜 이 빛보다 빠른 버스가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나는 인식적 아이러니를 현실적 치환으로 경험하고 역시나 물리법칙은 지구별에서 권위 높은 지식임을 다시 한번 더 깨달았다


그렇다면 내가 사용한 3분 30초는 무엇이었을까

무의미한 다리의 허적거림의 극치

오늘의 만보 채우기를 위한 운동

그 무엇도 아니려나


고작 3분 30초에 집착하는 나는 쪼잔한 인간이 되기를 결정한 것일까 아니지 하루살이의 인생으로 보자면 3분 30초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 대단한 시간이다


갑자기 얼마 전 나혼산에서 안재현 배우가 홀로 냉동삼겹살에 쏘맥을 먹고 칵테일 한 잔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나서 나는 그 장면과 행동 그리고 운치에 빠졌다 하여 오늘 나는 그 행동을 오마쥬 할 것이다

그런데 냉동삼겹살집을 방문할지 생삼겹살집을 방문할지 고민이다 그 감성 빠르게 구워서 느릿하게 먹던 그 감성을 재현하려면 냉동삼겹살 밖에 없지만 냉동 삼겹살 집은 내 기억에 4인용 테이블 밖에 없었고 가족단위 방문자가 많았다 생삼겹살집은 그보다는 혼자 가기에 부담 없어 보였지만 두툼한 삼겹살이 익기까지의 시간을 참아내야 한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인근에 사는 나의 지인들이 냉동삼겹살집을 더 많이 방문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을 만나는 것을 담담하고 담대하게 맞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누추한 남자 홀로 삼겹살 먹는 것은 배우의 껍데기를 하지 않는 이상 추해 보이긴 하다 해서 최초의 계획은 사람들이 뜸한 오후 4시를 노렸다

하지만 버스는 지나갔고 내가 도착하는 시간은 5시다

이제 사람들이 늘어나는 시간이 되었다


왜 그런데 냉동삼겹살 먹는 모습에 빠졌는가

멋져 보였다 나보다 그가 더 멋져 보였다 그냥 유치한 질투이자 시기라고 치부해 보자


그렇다면 무슨 고민이 필요할까 냉동삼겹살집을 가보고 자리가 없으면 생삼겹살집으로 가면 되지 현명하다 버스에 앉아 고민하는 건 내가 아니지 않은가 3분 30초의 보람을 잊지 말자 그게 ‘나’이니까 움직이자

5분 50초의 돌아감이 있더라도 현재를 다 바라보자 기존의 정보로 인해 과거의 인식이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인해 이런저런 고민해 봤자 큰 소득 없다 물론 가능성의 문제지만 가능성이란 통계는 통계적 성격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웃라이어들은 잘라내 버리는 성향이 있다 그러하기에 굳이 그런 저런 통계에 나를 묶고 고민하고 답답함 속에 가둘 필요가 없다 선택과 결정은 그저 나를 묶었다 풀었다 하면서 나의 감정을 위아래로 흔드는 것일 뿐 실제는 이미 내가 그의 영상을 보면서 느낀 것에 가득 차 있다 친구들과 맛있게 먹었던 냉삼 한 점 그리고 술잔 부딪힘과 함께하는 이야기들 소소함 누군가 부르는 평범한 일상 그런 것들이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불러서 함께 먹고 싶은 가냐고 묻는다면 100% 아니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오늘은 일단 아니다 내일도 아니다 이건 시점 문제다 음 적정한 시점 그러하다 아무리 친구여도 아주 중요하다 우리가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시점 말이다

친구끼리 굳이 그런 시점이 필요한가라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이건 내 방식 그건 당신의 방식이다 친구의 범주도 친구 간의 우정의 방식도 다른 차원에 있다 한 차원의 규칙이 다른 곳에서도 옳다는 판결은 어렵다 마치 물리학 법칙이 모든 차원마다 다를 거라고 우리가 어렴풋이 예상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유사한 방법과 방식과 생각으로 이 단어에 의미를 가두려고 하는가 마치 모든 우주의 은하가 처녀자리 은하단으로 가야 하는 것처럼 왜 여러 생각의 갈래가 하나로 모여 중력적 집중 형상이 되기를 원하는가 그저 몸이 마음이 생각이 이끄는 바니까 그게 바로 편함이니까


버스가 달린다 마치 무법질주다 그 누구도 놀라지 않는다 시간의 마술사 그것은 바로 기사님


공공의 이익이라는 공리주의 관점에서 기사님은 좋은 분이지만 높은 클랙슨 소리와 빠른 속도로 인해 사고와 빗겨나간 다른 차들의 운전자와 동승자의 관점에서 이 버스는 광란의 버스다 마치 지구까지 뚫고 나갈 정도의 속도의 광마이다 무협지에 나오는 전설의 광인이 바로 기사님일지도 이마에 훈장 같은 상처를 엉덩이 쪽 피부로 이식하셨을지도 모른다


다음 정거장을 벗어나면 곧 내려야 한다

이렇게 공허하게 휴일을 보낸다

작가의 이전글죄수 11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