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망토 속에서

감정 복제가 막혀버린 어느 날

by 빙빙

스스로의 삶을 복기한다 다른 이에게 전파하면서 복제하고 또 복제한다 복제의 작업이 이루어질수록 세부사항이 달라지면서 날카롭게 다듬어진다 마치 최초의 진실이 무엇이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복제 중 느낀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이 최대한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극적요소와 시적 찬사들로 가득 찰 수 있도록 그렇게 주변의 모든 이에게 내가 결국 창조한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매번 다른 버전으로 그럼에도 나름 유사하게 끌어내고 전달하고 전파한다 그렇게 마치 봉화를 전달하듯 알릴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두 전파하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고 더 이상 그 이야기는 껄끄러움도 속이 상함도 무언가 억울했던 모든 감정들이 없어진다 그렇게 스스로의 감정을 밀어 올려서 다른 이들에게 선물한다 나는 배출의 결과인 상쾌함을 느끼며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의 중간에 최초에 느낀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그곳의 주인공이 나라는 인간이라는 것일 뿐 그건 마치 액자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 버린다 해서 모든 이야기를 끝내고 나면 마치 성스러운 성녀가 된 듯 그 어떠한 인간의 말초적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모든 것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기분이다 최초의 그 이야기에서 도래한 앙금은 이제 나에게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그건 그저 지나가던 과거일 뿐이고 구전설화와 다를 바 없이 수술대 위에 누운 프랑캔슈타인 마냥 여러 번의 복제라는 잘림과 붙임을 당했다 결국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내가 복제한 버전이 다른 이에게 버젓이 살아남아 내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감정을 다른 이가 느끼는 것을 넘어서 오열하고 열광하며 나에게까지 다시 토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쓰나미 같이 거대해진 그 감정이 나에게 다가오면 비워진 내 가슴에 세상 그 무엇도 받아낼 수 있을 것 같던 그 큰 그릇에 작은 균열이 생긴다 나의 아름다운 도기와 같은 그릇에 남는 생채기라니 받아들이기 어렵다 기실 평소의 나는 성스럽고 관대하고 누구보다 이해심이 많은 남보다 더 나은 사람이다 왜 그런 구차한 것에 집착하여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있는 걸까 나는 그러한 감정 자체를 느낀 적도 느끼라고 강요한 적도 없는데 왜 자기 마음대로 선을 넘을까 그만하라고 그만두라고 하자 자신의 감정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다른 인간들은 말 그대로 다르다 나와는 나는 내 모든 감정을 완벽하게 느끼고 통제하고 있다 이 명민함에서 기인한 삶에 대한 긍정적 자신감을 느끼지 못하는 너는 나로 인해 생긴 감정의 소용돌이라고 하지만 나에게 그 외침은 그저 어리석게도 큰 소리로 너의 아둔함으로 느껴진다 어서 벗어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내가 도와줄 수는 없다 이미 그 이야기는 이제 내 세계에는 감정이 빠진 그저 흑백무성 영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나라는 사람과 같은 이름일 뿐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와는 전혀 다른 자아이다 존재이다 인격이다 거기에 더해 나는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다시 나르기 시작했기에 이미 지나간 그것에 달라붙어있을 시간이 없다 그렇게 또 다시 이야기를 생산하고 복제하고 다른 이에게로 전달하여 풀어낸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항상 건강하다 정신적으로 더욱


어느 날인가 이야기의 복제 작업에 문제가 생겼다 더는 전달할 곳이 없는 이야기란 것이 생겼다 나를 넘어서 어디론가로 뻗쳐서 나갈 곳이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무서웠다 이야기는 내 속에서 재생산되고 복제되기 시작했다 처음이었다 복제하면서 만들어진 새로운 관점과 감정들이 나가지 못하고 내 안에 남아있는 상황이 말이다 감정이 마치 살아 다니듯 스스로 움직인다 줄곧 나의 그릇은 항상 깨끗하게 설거지가 되었었는데 요 며칠 나의 그릇은 그것도 하나가 아닌 모든 그릇이 설거지가 되지 않은 상태로 개수대에 가득하다 거기에 설거지를 어떻게 하는지 마치 치매에 걸린 노인이 된 것처럼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나처럼 내 감정에 솔직하고 진실한 사람이 내 감정을 통제 못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어처구니없음에 치가 떨릴 정도다 나는 건강한 사람이었다 아니 건강한 사람이다 그런데 왜 과거가 나에게 이런 영향을 오래 미친 적은 없었다 과거가 지나갔음은 나 또한 알고 있다 인지와 인식은 이미 끝났다 그런데 왜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가 없다 내 이야기 복제 감정 모든 것이 통제되지 않는다 아직 끝나지 않은 감정이 많은데 새로운 이야기가 다시 생산된다 다른 이에게 전달이 아예 원천봉쇄되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전과 같이 강렬하게 내 감정에 동요하는 다른 이가 없을 뿐이다 그 무지한 이에게 말할 수 없음이 이 사태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싶지 않다 내 감정은 내 인생을 통틀어 나만의 것이었다 이 진리에 불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 감정은 내가 내 안에서 완벽하게 다스러져왔다 나는 감정에 당하는 이들을 항시 쓰라린 웃음으로 쳐다보았다 얼마나 비참한 이들인가 그러나 지금 내가 그 상황에 처해 지하감옥에서 지표면에 난 창살을 통해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노예와 같은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도움을 청하며 말이다 나에게 분명하지 않음은 없었고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도움이 필요한 상태다 혹은 불완전한 상태다 혹은 건강하지 않다를 알아채는 것이 내 인생이었는데 말이다 해서 항상 나는 알고 있었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게 바로 나란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지만 바로잡아야만 한다 내 감정의 주도권을 나에게로 다시 가져와야 한다 그 무지한 이를 찾아내 빼앗아간 나의 감정의 소용돌이의 키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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