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결론
나는 지금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내 배 오른쪽에 관이 하나 꽂혀 있다 음식은 당연히 허용되지 않고 내 왼쪽 팔목에 꽂힌 주삿바늘을 통해 영양분들이 내 몸으로 들어온다 그래도 그 링거 때문에 나는 고통 또한 잊고 잠을 청한다 어찌 보면 이런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됐었다 나는 이런 아픔과 고통을 빗겨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이것을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은 억울하게도 내 몸뚱이 때문이다 살갗으로 덮인 몸뚱이 때문에 내가 이렇게 억울하게 되었다
나의 인생의 최대 위기
관대하고 멋지고 이제는 내가 원하는 멋진 노신사의 역할을 할 수 있었는데 그 조차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 갑작스레 건강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의 비허 하에 존재하였고 그것을 감지한 시점은 이미 늦어 있었다 비루한 내 몸뚱이는 내가 살아오며 인정하고 인지하고 아끼고 아끼던 단 하나의 가치를 부숴버렸다
건강 건강이 와르르 깨버렸다
나는 감기조차 잘 걸리지 않는 체질이었다 그리고 몸에 좋다는 것들은 나를 위해 경제적 여유가 허용된 시점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가능하다면 모두 나에게 쏟아붓고 있었다
스트레스 만병의 근원이라 미디어에서 수만 가지 언어로 통번역되며 전달된 그것 또한 나는 받지 않기 위해 좋은 음식들을 먹으며 적정한 운동과 함께 부단히 노력했다
그나마 나에게 약간의 문제가 될 소지가 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과체중이었지만 오히려 저체중보다는 과체중이 건강에 더 좋다는 뉴스를 많이 접하였기에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나이를 먹었기에 건강하게 늙기 위해 이제 내가 갈구어온 것들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보여주기 위해 나는 체중을 감량하기 시작했다 내가 연구한 운동과 식이요법은 꽤나 잘 동작했고 아침마다 올라가는 체중계에서 줄어드는 숫자를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다만 그게 병 때문일 줄은 몰랐다 내가 잘해서 당도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기실은 암으로 인한 것이었다 다이어트 이후 소화가 잘 되지 않기 시작했고 이것이 암의 단초일 줄은 전혀 알 수 없었다 내과를 가도 한방병원을 가도 모두 멀쩡하다고만 하였다 하지만 속이 불편한 느낌은 평생 동안 처음 느끼는 격렬한 고통이었다 그리고 대학병원에서 암이라는 췌장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무너졌다
췌장암 그 단어가 주는 끔찍한 고통은 가히 말할 수 없었다 앞이 막힌 벽에 뛰어가서 머리를 박고 피를 토해내는 기분이 들었다 박살 난 머리에 낭자한 피를 바닥에 흩뿌려놓은 나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그저 멍했다 무엇을 인지해야 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막막함 세상이 갑자기 멈춘 듯한 시간이 뒤로 가는 듯한 갑갑함만이 느껴졌다 그러자 내 마음속 바닥 저 깊숙이 존재하던 불꽃이 올라왔다 억장이 무너지며 나에 대한 억울함이 강하게 타올랐다 그리고 그 억울함은 내가 절제할 수 없는 조절할 수 없는 분노와 짜증이라는 폭력적 언행으로 환산되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묻기보다는 즉각적으로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나는 불같이 데어 오른 감정에 무작정 나를 맡겼다
암은 나를 그렇게 영혼의 구렁텅이로 집어넣어 버렸다 온화하고 원만한 성격의 나는 그동안의 삭힌 감정을 표출해 내듯이 화를 토해냈고 그렇게 석 달이 지났다
정밀 검사 결과 다행히 나의 암은 약으로 완치는 아니지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의사로부터 들었다 나의 주치의의 말에 따르자면 가장 오랜 케이스는 약 20년간 나의 상태에서 삶을 유지하였다고 한다 20년 일흔다섯의 나에게 아흔다섯까지의 이십 년이 허용되었다 다행 천만다행이다 가슴을 쓸어안으며 나를 바라보자 치올랐던 응분이 사르륵 사라졌다 마치 눈이 녹듯 말이다 그저 주변의 물에 자연스레 섞이는 그것처럼 나의 감정들이 사라지며 충만함이 다가왔다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암과 함께 동반된 당뇨는 나를 다시금 코너로 몰아넣었다 나의 단 하나의 중요한 가치였던 건강이 무너지자 나에게 남은 것은 더욱 원초적 가치였다 내가 내 삶을 버텨온 것이 무엇이었는지 드디어 스스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인식은 하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실상을 바라볼 용기가 없음을 탓하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 지쳐있다
남들의 눈을 위해 정 없는 가족으로 보이기 싫어서 만들었던 여러 가지 가면들이 나의 화로 인해 보기 좋게 으스러지자 오랜 시간을 버티며 스스로에게 남은 그러면서도 나를 살게 만든 원천인 나의 즐거움이 오직 먹는 것 뿐이었다는 것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당뇨는 그 조차도 허용되지 못하도록 나를 다시 속박하였다 맛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 내 몸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했다 껍데기 쭈굴 한 내 뱃가죽 같은 껍데기 말이다 그 껍데기에 묶여 나는 아침마다 혈당을 쟤고 먹고 또 쟤고 날카로운 바늘을 손가락에 대는 것을 당연시 여기게 학습되고 배에 놓는 주사가 어렵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맛없는 음식들로 가득한 그 상황 속에서 말이다 나의 혈당 수치는 이내 정상 범주에 들어갔다 주치의는 비법이 뭐냐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 몸은 그저 빈 껍데기가 되었다 맛의 향연에 참여하지 못하는 채식동물들이나 먹을 법한 밥상에 홀로 앉아 먹는 식사는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 정도였다 나는 인간의 대접을 영영 받지 못하는 인간이 되었다 참혹한 부끄러움이 느껴지며 다시금 살아졌던 울화통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금기를 깨고 나는 먹고 싶은 것을 먹기 시작했다 즐거움 세치 혀 위의 아름다움이자 거룩한 삶에 대한 증거 그것은 바로 미각에 의존한 감각적 의식의 재건이었다 다시금 나의 시대가 도래했다
간단한 진리
먹고 뜯고 즐기고
말라가던 내 몸이 점차 윤기가 나고 뱃가죽이 다시 예전의 웅장함으로 다가감을 느꼈다 만족스러움이 온 정신을 가득 채운다 이것이 삶이지 별게 있을까 오늘만 산다고 해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 혈당수치는 정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주치의는 정말 비법이 뭔지를 정기외래 진료 시마다 묻곤 했지만 나는 작게 미소만 지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내가 거부한 나의 몸속 증거들이 나에게 돌아왔다 인간이자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소소한 정말 소박한 즐거움을 위한 진리의 길의 결과가 복수와 황달이라니 가혹하지 아니한가 급성간염에 꼼짝달싹 못한 나는 이렇게 누워있다 그저 살고 싶었고 그저 열심히 살고 싶었던 내 삶은 과연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지금 이 질문을 하는 게 맞는지 조차 고통에 버무려져 버렸다
아프다 그저 아프다 누군가 내 고통을 가져가 단 일초만이라도 아프지 않다면 그런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면 간절하게 빌어본다 종교는 없었다 하지만 이 비루 맞은 몸뚱이에서 나를 분리하여 온건함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믿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냥 그런 마음뿐이다 간절하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