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일

결말을 아는 연애 이야기

by 빙빙

첫 관측 시점으로부터 느낀 감정에 대해 고민하며 통상적 사회 관념으로 변환하는데 3일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3일의 시간 후 얻은 결론은 그 감정들이 연애의 감정이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와 만난 지 4주가 지난 시점 나는 그와의 헤어짐을 관측하였습니다 붉은 가로등 아래에서 그를 거친 말로 몰아가는 나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게 헤어지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였습니다 8번째 만남 , 그 순간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날 나는 내가 인지한 것들을 사실로 치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내 마음이 언제나와 같이 불안감에 뻗뻗하게 굳어서 필요치 않은 기시감을 느낀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후 굳이 만남의 횟수를 세지 않았습니다

그러하지만 기시감과는 다르게 나는 그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관측이 이미 완료되었다는 것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사실 그전부터도 소중하게 양손 모아 물 위에서 건진 연꽃처럼 그와의 만남을 애지중지 여겼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첫 만남부터 그에게 “고마와”라고 전했습니다 무엇에 대한 고마움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매 순간이 고맙고 좋았습니다 하여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는 “고마와”라고 그에게 전했고 정말 순간순간을 세포 하나하나에 생동감을 느꼈습니다 하여 이번 만남은 나에게 정말 신기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최선의 결과를 이미 목도한 뒤 현재로 돌아온 만남

그와 만나면 코가 간질간질거리며 그 간질거림이 가슴으로 파르르 퍼졌습니다 그를 만나면 심장의 움직임이 느껴져 스스로 너무 놀랄 따름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그와의 마지막을 다시 생각하며 가슴이 너무 쓸려서 그 쓰라림에 눈물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와의 마지막은 왔습니다 네거티브 딜레이 서킷처럼 불이 들어오면 누르기 싫어도 버튼을 누르는 내 손가락을 혐오하듯 나의 혀는 입술은 그에게 사정없이 정말 혐오스럽게 퍼부어댔습니다 시뻘건 가로등 아래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등을 맞대고 서로의 갈 길로 절룩거리며 더듬거리며 갔습니다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배가 불러 식욕이 딱 떨어진 것처럼 그를 생각해도 코는 가슴은 이제 간질거리지를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를 좋아하지 않냐면 그건 또 아닙니다 나는 그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냐면 신기하게도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목구멍이 다 차올라 더 이상 음식을 욱여넣을 수 없을 것처럼 내 머릿속에 사랑을 구겨 넣을 수가 없습니다

충만감이 가득 차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것과는 다른 생경한 변화입니다 나는 사랑을 했었고 그 사랑을 나무로 만들어진 상자에 넣고는 벚꽃이 그려진 예쁜 포장지로 포장한 뒤에 4월 10일이라고 적어서 선반에 올려놓은 기분입니다 예쁘게 잘 정리하여 손끝이 살짝 닿은 곳에 둔 기분입니다 어떻게 이런 만남이 있을 수 있나란 생각을 해봅니다


하여 내가 얻은 가설은 이러합니다

평소 나는 생각보다 먼 곳에서 나를 관측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실시간에 가까운 수준으로 나를 관측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감정을 처리하고 이해하는 관측 수준은 약 3일 즉 520AU였습니다 (*1AU는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입니다) 공교롭게 칼텍의 마이클 브라운 박사와 콘스탄틴 바티칸 교수의 연구팀이 주장한 해왕성 바깥에 존재하는 제9행성이 존재한다는 위치 - 보다 살짝 태양에 가깝게 -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번 연애에서 나는 관측 해상도를 최대한 내 현재 관점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하여 나는 3일 전의 과거를 보던 제9행성에서 현재가 진행 중인 지구를 세세히 내려봅니다 그러자 제9행성에서 관측하던 시선 기준으로 3일 뒤 미래가 관측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내 관측 정확도는 그리 대단치 않아 그냥 시각적인 무언가 그리고 감정적 스케치 정도만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제 관측지를 조금 바꾸어 제9행성의 존재의 증명자이자 명왕성 퇴출자인 세드나 천체로 옮깁니다 무지막한 궤도이심율을 지닌 이 천체는 태양과 가까울 때는 76AU 가장 멀 때는 880AU를 유지합니다 하여 나는 9시간 45분의 딜레이와 4일 하고도 17시간의 딜레이를 가진 공전주기를 가지게 됩니다 이제 태양과 가까워질 때 즉 그와의 만남이 있을 때 나의 감정은 제법 빠르게 기인되고 나는 그 인지된 것들을 글로 적어냅니다 나의 관측 내용은 일기라는 형체로 변환되어 남습니다 그리고 그와 만나지 않는 가장 먼 거리에 있을 때 나는 약 5일 뒤 그 보다 약 5일 뒤 그 뒤의 약 5일을 관측합니다 나의 관측은 일순간이라 많은 내용을 정보로 전달받을 수는 없지만 나의 뇌는 개연성이란 개념을 함께 고려합니다 하여 나는 그와의 마지막 순간을 먼저 알아챕니다 다만 그 순간이 언제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관측 시 느낀 8이라는 - 언제가 8번째 만남일지 모르지만 - 시점을 느낍니다 그 끝을 알고 있기에 모든 순간이 아름답고 더 훌륭합니다 마치 근사한 세트장에 있는 것처럼 말이죠 감사함이 항상 충만합니다 그냥 별 것도 아닌 말에도 웃음이 나옵니다 이런 게 삶이었구나라고 깨닫습니다


결말을 다 알고 그 결말을 바꿀 수 없음을 알면서 만나는 만남은 생각보다 더 만족스럽구나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만큼 나란 인간은 결과에 전전긍긍하여 가능성의 수를 세고 그것을 기반으로 조급함에 쫓기는 삶을 아직도 살고 있기에 두려움에 떨며 아예 가능성을 0으로 두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가능성이 무한하게 오픈된 이야기를 목전에 두자 다시 한번 기시감과 불안함을 느낍니다 그리하여 결론을 아는 이야기가 얼마나 마음이 편하고 황홀한지 깨닫게 됩니다


나는 그와 헤어졌습니다

나의 사랑은 4월 10일 기준으로 관측 종료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점점 더 태양계 밖으로 관측소를 옮겨 과거의 나를 관찰하고 그와의 즐거웠던 추억들을 다시 실시간으로 관측하며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없지만 그와의 만남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는 내가 관측 지점을 바꾼다면 평생 현재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광활하며 행복한 이야기일까요 모두가 인생은 그저 순간이라 합니다 하지만 나에게 이 이야기는 순간이 아닌 영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걸 깨닫자 나는 이 이야기의 끝이 혐오스러웠음에도 만족스럽습니다 나는 게걸스럽게 쏟아내야 했고 그 쏟아냄이 못 미덥게도 나란 인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여 그와 공동으로 시간을 점유하였던 마지막 순간인 4월 10일, 그날은 지나갔지만 나는 아직도 그와의 순간들을 마치 미모사가 반응하듯 생생하게 내 대뇌에 부으며 만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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