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왜 선하게 살아야하나요?
인간이 선의를 잃고 제 것만을 찾기 바쁘고 타인에 대한 예를 잃으면 미물마저 그 꼴을 우습게 아나 비슷한 꼴을 하는 것들이 그 아래 굽신거리니 본인만이 본인의 세를 태산과 같이 알아 이를 허세라 부르며 구천을 떠도는 것들은 이런 것들을 잡귀보다도 더 우습게 알아 꼴값이라 부른다 자신이 자신에게 먹혀들어가 결국 근본이 없어져 스스로가 근본을 세울 수가 없고 스스로가 선악을 구분할 수 없으며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분 지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그 존재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어져 이세계에 있으나 이세계에 없고 저세계에 없으나 저세계에 있는 형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본디 그 주어진 몸과 정신은 자신에게 속하였을지 모르나 하나의 온전한 정신으로 유지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자가 세상에 많아질수록 인간상의 삼라가 그 본을 다하지 못하고 균열을 일으키니 그 본에 대해 모두가 그 의의를 찾지 못하고 그 의중을 궁금하게 하여 세상이하수상하다고 한다 어찌 인간의 세상이 하수상한 것이 현세만이라 하겠는가 인간은 태극을 중과 정에 두어 삼라의 모든 상을 가둘 수 있는 삼라만상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짧은 생에서 한 치 앞의 득만을 택하며 무한함의 정화를 끄고 짐승만도 못한 아귀의 길을 택하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그 고진하고 손순한 기운을 택하는 존재들이 존재하여 종의 연속성을 연장하고 종의 방향성을 지켜왔으나 이러한 노력과 힘들이 점차 세와 기를 다하고 꺼진다는 것이 문제이리라
모와 정을 맞아도 정을 지키고 너와 나의 다름이 큰 다름이 아님을 받아들여 나와 남의 득을 구분하지 않고 나의 선함과 남의 선함의 그 중이 다르지 않음을 받아들였던 인간이란 존재들이 점차 줄어든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리라 인간을 부리는 그 시간이 영겁의 시간에 비하면 빛과 같은 찰나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며 그렇게 생긴 자신의 업이 영겁을 시간을 따라다닌다는 단순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함이라 또한 너와 나의 생에 낙인처럼 박힌 고통스러운 원죄에 차이가 존재하여 이를 시기하고 질투하면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얄팍한 앎 때문이리라 그 얄팍한 앎으로 인간상에서의 여린 시련을 우월하게 견뎌내었다는 그 시시함에 자만을 하고 신을 뛰어넘었다는 자신감을 얻은 뒤 영혼의 크기는 그저 몸둥아리의 세치혀에 속박되어 결국 존재의 의미를 지워버리게 된다 목적성 없는 혼은 결국 귀혼과 다를 바가 없어 어두운 곳에 쉽게 속하고 밝음을 싫어하게 되니 인간이라 부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그 경계 속에 서게 되어 스스로가 깨닫는 순간 오갈 곳 없는 그 위에서 결국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방법 밖에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하여 인간은 그 생긴대로와 같이 본디 그 근본을 세우고 세상은 받아들이며 항상 배움을 멀리하지 않음으로 자신의 깨움을 가까이하여서 움직임의 생동성을 가까이하고 그 흔들리는 추 속에서도 자신만의 에너지의 진동을 찾아가 그 진동의 가운데에서 진정한 인생의 무게를 발견하며 이를 중하게 여겨 다른 이의 그 무게 또한 가여히 여겨야 하거늘 질투 미움 오만을 포함한 오욕에 혼백이 덕지덕지 늘려붙여져서 이 중한 길을 잃고 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일평생을 보낸다 그리하여 육신의 종말에 혼백 또한 종속되어 오다간 많은 미물의 생과 일신하여 그 누구도 온전하게 기억치 못하는 삶의 끝을 맞이한다 그리한 듯 미물이라 우습게 치부한 짐승들의 삶과 차이가 무어란 말인가 오히려 그 보다 낮은 곳에 자신을 박제하고 인간이란 존재였음을 기억하지 못하며 자신에게 돌아올 살을 날려 남은 물론 자신까지 넝마로 만드는 아귀들이 많을진대 이런 질문은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아니다 영겁 속의 찰나를 살아가는 하루살이 같은 존재여도 살아감 그것에서부터 그 존재의 영험함이 시작되며 존재의 귀함이 더해진다 그러하기에 살아있는 존재란 무릇 그 귀함을 이로움으로 사용하여 신보다 더 큰 생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리라 자신의 유희를 위해 생명에 생채기를 남기는 것이 바로 이를 반하는 것이며 받은 생채기가 수문장처럼 등짝에 덕지덕지 남아도 우스워보이는 너털웃음을 던지는 것이 바로 생신의 웃음 일지어다 신은 인간의 장난에 무릇 웃을 수 있어야 하느니라 하늘의 움직임 땅의 온기 바다의 넘실거림 속에 그 같잔은 것들을 누구보다 분명하게 인지하고 그럼에도 그것이 내 손바닥 안에서 돌아다니는 개미와 같이 작고 부질없는 것이기에 나의 본질을 바꿀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조잡하고 조급한 것들이 끊임없이 시험하고 너의 말을 통해 나를 해하려고 나의 말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역린 하여 그 본질을 유지하는 무게감을 뒤흔들려고 할 테지만 그 혹독함을 견뎌내는 것 그리고 그 혹독함을 주는 것 모두가 인간임을 깨닫으면서도 나는 거기에 흔들리지 않고 선의를 행하는 것이 무의미한 의미로운 일이라는 이중적 잣대의 소용돌이 속에 있음을 느끼며 그 부질없음으로 멈춤 또한 나의 격을 담금질하는 한 수순으로 받아들이며 선의를 행하는 움직임이 주는 순진한 진동의 에너지를 포옹하는 것이 바로 이 주어진 삶을 개척자처럼 살아가는 삼라만상을 내 속에 담는 일이 아닐진대 이 어찌 힘들다고 포기만 하여 이슬의 형장처럼 자신을 버려둘 것인가 나는 너가 될 수고 있고 너는 내가 될 수도 있고 나는 70대 노인이 될 수도 있고 10대의 아이가 될 수도 있고 내가 만난 모든 이의 심상에 나를 심고 그들이 만든 나에 대한 심상을 또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며 그렇게 그저 삶을 받아들이면 나는 곧 인간 그 자체요 인간이란 존재적 나눔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그러면서도 인간적인지 알게 된다 나의 조각들을 세상에 나누고 그 조각들이 선한 마음에 동해 함께 뛰어다니면 세상의 이치가 크지 않고 오히려 매우 간단한 한 수라는 것을 깨달을 지어니 왜 나는 너를 미워해야 하는가 미움과 관심은 본디 하나에서 시작되어 나뉘어진 것으로 그 비틀림 만큼이나 다시 모이기 어려워 보이지만 그만큼 쉽게 다시 만나는 것도 없으리라
지옥과 천국은? 죽음 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이 순간이 지옥이고 천국이다 이는 미움과 관심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내가 마음먹기에 삐뚤어진 관심을 얻고자 한다면 이는 삐뚤어진 답으로 돌아와 마음속 구멍을 더 후벼 파고 구멍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 존재는 지옥의 수면 아래로 내려갈 뿐이다 이 깊은 곳에서 스스로를 꺼내어 숨을 쉴 수 있는 수면 위로 올리는 것 또한 자신이며 스스로를 더 깊은 나락으로 밀어 넣는 것 또한 자신이다 남의 탓을 하며 이유를 찾는 것은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고자 손발을 휘젓는 우둔함에 기인한 것이며 인간의 형만을 가지고 있는 것들의 마지막을 고하고자 함이니라 그리하여 나는 너에게 고한다 살아라 힘껏 살아라 너라는 존재의 비범함과 연장성을 받아들이며 선의 궁극적 목표가 결국은 너 그 자체의 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며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