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는 부유 중

게이트 오픈을 기다리며

by 빙빙

나는 나는 지금 태아 그것도 10주 차 태아의 크기다 약 삼 센티미터 그 정도의 사이즈 콩나물 대가리 같은 모양이다 나는 10주 차 태아의 모양으로 콩나물 대가리만 딱 땋인 모양으로 부유하고 있다 게이트가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다들 게이트라고 하면 뭔가 공간이랄까 건물의 내부 같은 플랫폼을 생각하곤 하지만 실제 게이트는 그렇진 않다 아무것도 없는 정막에 가깝다 게이트가 열릴 때만이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은 그냥 지금은 고요할 뿐이다 내가 대기 중인 게이트는 거기다가 그 어떤 홍보장치들조차 없어서 태양의 빛과 행성들에 반사되어 오는 빛들 즉 별빛들만이 잠잠하게 흐른다 나 외에도 게이트가 열릴 때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 사람이기엔 부족한 물질들 생명의 태초적 모양새를 한 것들이 우굴거린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가 다른 무언가를 인지할 수 없는 형태로 존재 중이기에 우리는 서로가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내가 어느 사이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저 부유하다가 게이트가 열리기만을 기대하고 있다 그나마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것은 심장의 태동 때문이다 달의 뒷면에서도 아주 오래전 만들어져서 이제는 거의 버려진 듯한 이 게이트에는 최신식의 모든 것이 없다 그리하여 더 적막하다 어차피 지금의 형태에서 나는 그 무엇도 정확하게 인지할 수도 없다 지긋지긋한 삶을 살고 다시 태아의 형태로 압축되어 버리다니 우습기만 하다 그것도 더 지긋지긋하게 더 돈을 벌러 가기 위해 말이다 지긋지긋하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부유한다 지금 부유하고 기다리고 다시 올라타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간결하다 편하다 머리 복잡하지 않는게 나쁘지 않다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기분이 막 답답해서 터져버릴 것 같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그런데 그랬을 것 같긴 하다 만일 몇 년 전이라면 아니 수 년 전도 아니다 그저 일이 년 전의 나였다면 이 시간을 이 공간을 무엇보다 이 몸의 형태를 못 견뎌냈을 것이 자명했다 발끝하나 손끝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머릿속에 올라오는 생각들과 떠내려가는 것들을 쓸어가며 생각이란 것을 만들어낸다 생각을 굴려본다 생각을 쌓았다가 빠르게 던져본다 과거의 나는 그런 상황이 몹시 불쾌했을 것이다 무조건 해내야만 행위를 해야만 한다고 그게 미덕이고 인간으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기에 그런 나에게 지금의 조건은 죽음보다 더한 황폐한 자괴감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이란 게 또 무엇인가 주어지면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소위 망했고 나에게 남은 선택은 이것밖에 없었다 내 인생에 탄탄대로만이 있으리라 생각했고 말년복은 있다는 사주선생의 말을 나직이 떠올리며 그래도 나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자신했다 사실 넘치게 자신했다 나름 나는 잘난 인생이라 생각했다 그동안의 모든 것들 내가 이루어온 것들이 그래도 온전히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팔 할은 그래 팔 할 정도는 내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오직 운빨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이 척척 잘 일어났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운에 기대온 것들을 내가 희생해 온 것들이라 생각하고 이다음도 이다음의 다음도 나의 희생과 대가로 살아갈 거라 생각했었지 무책임하게도 말이다 감사했어야 했다 나는 나의 무지함을 깨닫고 그때라도 모두 그만두고 그래야만 했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삼 센티의 태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부유하며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것 그것이다 부질없는 도전의 결론이 이것이라면 우습게도 받아들여야만 한다 모든 것이 묶인 지금 내가 무엇을 하겠는가 웃음이 날 뿐이다 머릿속을 벗어나지도 못하는 마른 웃음이다 너른 웃음일까 그런 웃음이 날 뿐이다 그리고 부유할 뿐이다 부유 부우우웅 제자리를 부유한다 아 아주 미세하게 움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내 의지에 따라서가 아니다 다른 곳에 게이트가 열리면서 전달되는 파동에 휩쓸려서이다 마치 마리모가 된 듯하다 이리저리 쓸려간다 사실 말이 쓸리는 것이지 일 센티미터도 못 움직인다 그래도 간질간질 움직인다 콩나물대가리인 나는 그 움직임도 좋더란다 그렇더란다 이십 년 전의 나라면 그저 웃으면서 이 상황을 넘기지는 못했으리라 아니 이런 게 있지도 않았으니 상상도 못 하는 게 맞으리라 마리모미니미 형태의 나를 말이다 태고의 형태로 되돌아가서 게이트 앞에 서게 할 줄 누가 알았을까 아닌가 사실 선 것도 아니고 지들 맘대로 분포해 있는 걸까 방사형도 아닐지도 알고 보면 바로 내 옆에 무수히 많은 나와 유사한 생명체가 드글거릴지도 에휴 징그러 아니지 나도 그중 하나일진대 또 그럽게 징그럽게 생각하자니 조금은 서글프다 그나저나 게이트가 열리긴 하는가 모르겠다 내가 이 상태로 있는 걸 보면 열리긴 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전혀 검증이 안된 논제다 게이트가 열린다 나는 게이트에 탈 준비를 한 채로 기다리고 있다 이제 이 게이트를 완전히 잊어서 아니면 비용적 효용성으로 인해 이 게이트를 열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나는 그냥 기다려야 하는 건가 아니지 움직이지도 못하는 난 내 몸속의 에너지를 다 사용하면 그냥 죽는 건가 그 전에 암에 걸려 죽을지도 모르겠다 잊혀진 삶이 죽음과 다르지 않다니 아니 그게 맞나 잊혀진 삶은 결국 죽은 자의 삶인가 죽은 자가 살다니 이 아이러니는 무엇인가 아 그렇군 그랬어 그래서 내가 이러한 형태로 변하기 전에 어떤 문서에 사인을 하게 만들었던 것일지도 사인을 하는 손만 남겨둔 채 이미 다른 몸은 모두 변환된 상태라 나는 뭔 내용인지 읽지도 못했다 사인 후 몸과 팔은 분리되었다 움직임을 위한 신경만 연결해 둔 상태라 그 어떤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팔에 매달린 내 본체라는 표현이 맞겠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무언가 문서에 사인을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부유 중이다 사실 이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니었다 다른 선택이 하나 더 있긴 했다 바로 홈리스가 되는 법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회적 지위가 있던 나 같은 사람이 홈리스가 바로 되기를 희망할 수는 없었다 아니 기대하고 싶지도 기대할 수도 나를 거꾸로 돌리고 제대로 놓아도 어떻게 하든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건 내 자유의지를 반하는 선택이었다 그래도 나는 내 노동의 신성함을 느끼며 노동에서 얻어진 가치에 정당한 대가인 세금을 내며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그리고 사실 사실말이지 홈리스의 삶은 너무 가혹했다 말이 홈리스지 그것은 그래 홈리스라는 꼬리표가 달리는 순간 자발적이랄까 비자발적이랄까 원래의 신체를 가지고 우주여행을 시작해야 했다 가장 빠른 화성행 우주선을 타야했다 그랬다 종착지가 화성인 그 여행을 말이다 운이 좋으면 화성에 도착한다 하지만 우주방사선을 최소 400일 동안 신나게 두들겨 맞은 몸은 이미 암덩어리 투성이다 암덩어리인 홈리스는 마지막으로 맨몸으로 화성으로의 착륙을 종용당한다 우주선에 더 있어 봤자 썩은 내 나는 시신이 될 것이므로 우주선은 홈리스를 그냥 떨어뜨린다 - 라고 적고 뒤에서 우주선 밖으로 밀친다 - 그리고는 그나마라고 하는게 나을지 모르겠지만 화성의 대기권에 의해 몸은 타들어간다 심장이 먼저 멈출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심장마비가 먼저 올거라는 글을 읽은 적은 있지만 그 또한 신빙성은 없다고 했다 어쨌든 화성의 대기권에 의해 화장되는 그걸 화성의 화장 환장이라고 한단다 화성의 대환장 파티가 종료되면 우주선은 다시 지구로 귀향한다 이러한 우주선이 매일 오전 오후로 출발한다 그리고 오전 오후로 마찬가지로 귀향한다 게이트 없이 우주를 여행한다는 것은 속된 말로 그냥 자살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화성이 꿈의 행성이라고 했던 것처럼 정말 꿈의 대환장 행성이 되었다 매분 매초 인간들이 환장당하는 곳으로 말이다 그리하여 나 또한 원하든 원치 안 든 외행성으로 돈 벌러 가기 위해 지금 이곳에서 게이트가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언젠간 열리겠지 어찌되었든 긍정적 마인드만이 날 살릴 수 있을지어다 긍정적으로 낙관적으로 생각해보자 그렇게 나는 또 부유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짧은 생각의 소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