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 않은 삶
회사 내 자리에서 ktx 플랫폼까지 넉넉잡아도 10분이 안 걸리는 동일한 지구 표면상의 15층 차이의 고도 차이만이 존재한다 무심한 듯 익숙하지만 약간은 격양되어 ktx에 올라타며 퇴근길을 시작한다 기차는 출발 시간 정각에 맞추어 스르륵 미끄러져 간다 그리고 연이어 나오는 기장남의 안내 방송 우리 열차는 19시 45분 판교역을 떠나 20시 54분 충주역에 도착하는 ktx 834 열차입니다 좌석을 뒤로 젖히고 열차에 올라탔음을 카톡으로 보고 한 뒤 하루의 피곤함을 눈꺼풀 위로 한없이 올려본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내리는 잠에 나사 빠진 여자처럼 취해본다 오른쪽으로 꺾인 고개에서 흘린 침이 뺨에 느껴져 나도 모르게 화들짝 깨서 쓰읍하고는 주위를 살피고 다시 잠이 든다 그렇게 열차의 흔들림에 온몸을 맡기면 우리 열차 곧 종착역인 충주 충주역에 도착합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라는 기장님의 안내 방송에 다시 깬다 플랫폼에 내려 역사를 빠져나가 길 건너 편의점 근처로 성큼성큼 걸어가 비상등을 켜고 있는 흰색 suv 차량에 올라탄다 조수석에 타자 운전석에 우두커니 운전대를 잡고 사이드 미러와 룸미러를 번갈아 보는 남편의 옆모습이 보인다 그는 항상 그랬다듯이 자연스레 P에서 D로 기어를 바꾸고 집으로 출발했다 현관 건너편 벽시계를 바라보니 9시 13분 약 1시간 38분 내가 퇴근에 온전히 사용한 시간이다 출근도 크게 다르진 않으니 평균적으로 하루 3시간 20분을 나는 출퇴근에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러한 삶을 선택하고 적응하고 있는 이유는 그냥 좋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밖이 공기가 산이 하늘이 강이 정말 다 말이다 시골 냄새마저 좋다 고층 건물이 없어 탁 트인 공간이 주는 안정감과 신뢰감이 좋다 그냥 다 정말 다 좋다 그리고 이 도시에 있는 내가 좋다 사실 판교도 인근 공군비행장으로 인해 높은 건물은 없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도심은 도심이다 넓은 도로에 즐비한 거대한 사각의 건물들 그리고 상점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강남과 같은 높은 자동차의 클랙슨 소리가 없다는 점이나 그에 상응하는 웅웅거리는 비행기 소리가 존재했다 사람들은 항상 아침 역에서 치약 짜듯 밀려 나왔다가 각자의 건물로 사라진다 그리고 점심 건물에서 다시 밀려 나왔다가 파도의 썰물처럼 또다시 제각각의 건물로 그리고 저녁 다시 역으로 우루루루루 높은 밀도로 우겨져서 휩쓸려 들어간다 직장인의 생체시계를 따르자면 그 도시에 내 것은 내 시간은 내 장소는 그리고 나의 존재는 없었다 오직 생계를 위해 발버둥 치는 못난 끄악새 같은 내가 있었다 그나마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나는 걸어 올라갔다 다이어트를 한다는 위장을 하고는 아무도 없는 고층 건물의 비상계단을 올랐다 그곳에서 터져나가는 허벅지를 느끼면서도 목구멍으로 차오르는 숨을 느끼면서도 그나마 타인에게서 타인으로부터 떨어져 오직 나만의 시공간을 소유한다고 느낄 수 있었다 가장 깊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건물에 가장 폐쇄적인 공간이라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감사했다 하루에 단 십여분이라도 입을 다물고 인간으로서 인간이 만들어낸 그리고 만들고 있는 것으로부터 그 어떤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 시간이 스스로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안 순간 나는 매우 어지럽고 구역질이 났다 매우 평범함 삶 공부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그저 평범한 나는 그런 사회의 일원인데 평범한 인간이며 인간인데 왜 인간이 이리도 싫고 힘들고 어려울까 굳이 그것도 왜 지금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지금일까 복잡했다 어려웠다 이런 나를 나의 남편인 그가 받아들이고 이해해 줄 수 있을지 조차도 아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그저 인생의 낭비가 아닐까 내가 삶이 편해져서 그런가 하는 의구심에 의구심이 든 상태로 근 일 년여를 보냈다 당연히 그와 나의 행복만이 가득할 것 같던 신혼생활은 황폐해져 갔다 기실 식욕이 넘쳐흘러 맛집투어는 물론 야식투어로 다져진 나였고 그런 나와 쌍두마차를 이루던 게 남자친구였던 남편이었는데 어느 순간 숨구멍이 조여지며 욕구가 점점 줄어가던 나는 식욕조차도 사라졌다 그는 내가 좋아하던 족발 닭발 등등의 야식으로 나를 유혹했지만 퇴근 후 정말 모든 에너지가 방전되어 쓰러지듯 집에 들어가 잠에 빠지기 일쑤였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어제의 연장의 연장의 연장의 연장의 연장 속에 만성피로라는 녀석을 양 어깨는 물론 머리에까지 이고 지고 있어 멍한 느낌으로 버틴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회사로 출근했다 그리고 다시 퇴근했다 그렇게 챗바퀴를 돌고 토요일 일요일은 침대 위에서만 거의 보냈다 술과 함께 어느 순간 나에게 내 목구멍을 가장 많이 넘어가는 음식은 술이 되었다 남편은 주말마다 요리를 해주었다 몸에 좋은 건강한 식자재로 만든 정성 가득한 음식들 말이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아침을 차리고 나를 깨웠다 그러나 나는 일어날 수 없었다 몸이 깊은 심연의 수중에 빠져 갇혀져 버린 나는 내 의지로 내 몸을 일어 내킬 수 없었다 숨을 내쉬면서 나 못 일어나겠어 미안해 좀 더 잘게라고 간신히 말했다 나의 힘없는 거절 의사를 듣고 그는 참아냈지만 그 거절이 계속 지속되자 그도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도 무너졌다 어느 수요일 갑자기 비상계단을 오르다 내가 사랑을 하긴 했을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와 좋았던 시절이 기억이 있었을 텐데 낯설다 이제는 같은 공간 속에 있으면서도 함께 감정을 교류하지 않는 사이 누군가가 말하는 정말 가족 같은 사이가 우리 사이가 되었다 그와 말을 하지 않은지가 세 달이 넘어간다는 사실을 퍼뜩 깨달았다 갑자기 주저앉았다 그렇게 계단 난간을 부여잡고 나는 엉엉 울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에 콧물에 그냥 옷소매에 분비물들을 닦아내며 서러움에 억울함에 북받쳐 엉엉 어어어어엉 아이처럼 울어재꼈다 그리고 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심하게 체한 것 같다며 오후반차를 내고 개통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ktx를 타고 충주로 떠났다 종착역에 내리자 어색한 듯한 무언가 다른 냄새가 코 점막을 통해 후욱 들어왔다 역전은 개발이 안된 지 오래되었는지 덩그런한 편의점 외에는 오래돼 보이는 외관의 모텔들만이 즐비했다 그중 그나마 깔끔해 보이는 한 곳에 들어가 방을 잡고 나와 택시를 탔다 기사님에게 가슴이 트이는 곳이 있냐고 물어봤다 흰머리가 희끗한 기사님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나는 충주토박이라 잘 모르겠는디 아가씨 혹시 충주댐은 가봤어유라고 물어봤다 안 가봤다니 충주댐과 댐 건너편 주변 카페가 좋다고 하셨고 나는 작은 투어처럼 그곳들을 돌고 다시 이 모텔 앞으로 올 수 있냐고 기사님께 물어보았다 흔쾌히 괜찮다며 카페에서 나갈때 전화를 달라며 한 면에는 콜택시번호가 또 다른 면에는 기사님 연락처가 적힌 명함을 주셨다 댐이 생각보다 컸다 눈앞에 산과 강 외에 아무것도 없는 광경을 맞이하니 갑자기 어깨가 부르르 떨리며 추웠다 나도 모르게 빠르게 택시로 올라탔다 아이고 날이 좀 쌀쌀하쥬 저 건너편 카페로 갈게유 나는 커피 이런건 잘 몰라서 그래도 손님들이 많이 가던 데로 그냥 갈게유라고 하셨고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 거리며 감사하다고만 했다 그렇게 지어진지 좀 된 듯한 카페에 당도하였다 오래된 나무 장식이나 외장 페이트가 약간 갈라진 것이 조금은 너수분해보이는 카페였다 힘껏 당겨야지 문이 열렸다 괜찮나라는 생각을 뒤로하고 들어간 카페의 내부는 생각보다 에스닉한 아이템들로 가득 차 있었다 색감들이 따뜻한 것들로 가득 차 아늑하기도 했다 인디언들이 현대의 한국에서 카페를 차리면 이런 느낌일까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호수가 한눈에 카페 안으로 들어차 댐에서 보던 광경보다 더 광활하게 댐이 만들어 놓은 풍경을 나에게 전달해 주었다 메뉴판에 시그니처라고 크게 적힌 쌍화차를 시켰는데 노른자가 동동 떠서 갈색의 투박한 자기 그릇에 나왔다 뜨거운 그 물을 목구녕으로 넘기자 가슴이 따수워졌다 컵을 양손으로 감싸고 풍경에 넋을 놓자 그냥 누군가가 품을 감싸주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마음속 뭔가가 품어지는 것 같았다 고생했어 힘들었어라고 누군가가 속샀여 주는 것 같았다 삼십여분 있었을까 나는 기사님을 불러 다시 모텔로 갔다 갑자기 식욕이 느껴졌다 방 안에 휴지통에 적힌 번호로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먹었다 맛있었다 그 말로 밖에 형용할 수 없었다 맛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ktx를 타고 회사로 출근했다 그렇게 그 주 금요일까지 나는 이 일상을 반복했다 그리고 주말 멀뚱하게 이른 아침 눈이 깬 나는 충주로 가고 싶어졌다 그냥 그곳에 가고 싶어졌다 일찍 일어난 내 모습에 거기에 더해 어딘가로 나가려고 채비를 하는 나를 보며 어색하면서도 놀랜 남편이 말을 건냈다 나도 같이 갈까 나는 그의 발끝부터 얼굴까지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리고 그의 두 눈을 오랜만에 빤하게 쳐다보았다 사실 그와 같이 간다는 생각을 그의 존재를 내 머리 속에 지우고 있었다 3달 만에 하는 첫말이다 어떤 말을 뱉어야할지 나는 갑자기 작동이 멈춘 로봇처럼 어떤 음성신호도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는 시선을 내리더니 내 손을 잡았다 그리더니 잠깐만 기다려라고 말하고 후드에 야구모자를 쓰고 곧장 현관으로 나왔다 그는 다시 내 손을 잡으며 가자라고 말했다 그 순간 눈물이 왈칵 나와 현관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미안해 미안해라는 말만 연신 고백하듯 연거푸 쏟아내었다 그는 내 등을 마치 어릴 적 엄마가 두드려 주듯 토닥토닥 두들겨 주었다 그리고 따뜻한 가슴팍을 기꺼이 내 눈물에게 내어주었다 한참을 울고 진정이 된 후 그렇게 우리는 함께 충주로 갔다 그 주말이 지나고 나보다는 더 계획적인 그는 달세를 내고 방을 하나 구해주었다 언제든지 마음이 답답하면 충주에 그 방에 들리라고 했다 오래된 빨간 벽돌 주택 이층에 방 두 개 화장실 하나 부엌이 있는 집이었다 거실이 좀 큰 그런 평범한 구조였다 그는 매트리스와 필요한 몇 가지 가재도구를 준비해 주었다 나는 그 곳에서 주 삼일 혹은 사일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몇달을 지내다 결국 그곳은 우리는 월세를 전세로 바꾸며 그곳에 눌러앉았다 원래 있던 아파트의 짐은 이삿짐센터에 의뢰한 컨테이너로 옮겨둔 채로 말이다 21평 소형 아파트에서 어떻게 그 많은 짐이 쏟아졌는지 모르겠지만 그것들과 함께 충주란 새로운 곳에서 다시 살고 싶진 않았다 숨 막혔다 그리고 나는 그 많은 짐을 정리할 여력도 시간도 없었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부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일단은 모두 모아 컨테이너에 넣어두었다 이곳에서 우린 그냥 계절에 맞는 옷 몇 가지 냄비 두 개 프라이팬 하나 그리고 접시 두 개 국그릇 두 개 커트러리 두 쌍 수저젓가락 세트 두 개 몇 가지 국자와 뒤집개 그리고 침대와 식탁 그리고 벽시계가 전부다 대부분 필요할 때 시장에 함께 걸어가 하나씩 산 것이다 뭔가 애착이 간다 대단하게 심미적으로 아름답거나 트렌드에 맞는 것은 없지만 그냥 좋다 가득 차던 집이 이제는 텅 비어 있다 공간을 채우는 것은 그와 나 우리 둘이라는 존재들의 숨이다 그에게 나도 그도 나에게 서로의 존재가 더 서로의 삶의 중심으로 옮겨갔다 집은 분명 좁아졌지만 삶의 중심에 타오르는 그것은 더 커지고 단단해졌다 이 작은 듯 큰 오래된 주택 건물을 1층 케이크 카페가 2층은 우리가 그리고 3층 노부부가 공유하고 등기부등본상 3층 노부부인 주인세대의 이름이 진짜 주인이라고 턱 하니 서류상 적혀있지만 이제서야 정말 우리 집을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나의 집 말이다 말수가 썩 많은 그도 나도 아니지만 소소하게 그와 대화가 늘었다 주말엔 말하지 않아도 같이 간단히 아침을 먹고 호숫가로 나가 걷는다 계절의 변화가 그 자연스러운 매일매일의 변화를 작은 변화지만 어느 순간 계절을 바꾸어 버리는 커다란 결과를 느낀다 그러다 좋아하는 단골 카페에 간다 사장님이 신선하게 로스팅한 커피를 내주면 조용히 서로 책장을 넘긴다 이제는 서로 마주 보며 앉지 않는다 서로의 양옆에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본다 그러다 한 명이 웃으면 뭔데 뭔데라며 촐싹거리며 물어본다 그냥 살아간다 별 특별한 것도 없는 정말 별것 없이 그냥 산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라면 이 도시는 이곳에 모든 게 내 두 눈과 내 두 귀와 내 양손에 담기고 들리고 만져지는 모든 것이 내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하늘을 많이 보게 된 것도 하늘이 그렇게 매일이 다르듯 비슷하면서도 매혹적이란 것도 그리고 그 하늘이 전부 내 가슴에 담겨 내 것이 된다는 것도 이곳에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힘들지 않다 언젠가가 되면 이 ktx 노선이 거제까지 간단다 그때는 거제에서 살게 될까 남편에게 혼잣말하듯 작게 읊조려 본다 그는 바다도 좋다고 한다 매일 700km를 출퇴근에 사용해 보는 것도 이색적이겠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가는 거 아냐 그와 나는 시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을 투닥거리 듯하며 웃는다 그냥 좋다 그냥 좋아하는 내가 좋다 내 웃음에 화답하듯 웃는 그의 그냥 웃음이 좋다 나는 요즘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