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그녀들이 되는 법

by 빙빙

그녀의 기척이 느껴졌다 잠깐의 소리와 공기의 흐름이었지만 잠결에 나는 그걸 알 수 있었다 재빠르게 집안에 불을 켰다 그리고 차단할 수 있는 공간을 차단하여 폐쇄된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나를 그녀의 목표인 나를 미끼로 두고 그녀를 기다린다 또 다른 그녀는 내 옆에서 자고 있던 작고 어린 그녀는 잠시 잠에서 깬다 그리고는 몸을 뒤척이며 이내 잠이 든다 나는 폐쇄된 공간을 눈알을 한껏 굴리며 쳐다본다 얼마나 되었을까 지금이 몇 시일까 그녀는 어디에 있을까 되돌이되는 질문을 던진다 내 옆의 그녀가 얼굴을 들어 나를 똥그랗게 바라본다 나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얼굴을 끄덕인다 그녀가 무언가 말하려고 벌리는 입이 보인다 빠르게 그녀의 입을 막으며 눈짓으로 안된다고 한다 그녀의 눈이 더 동그래진다 그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눈치다 평소에 그녀에게 그녀의 존재를 알려야 했나 하지만 다행히 동공이 스르륵 풀리며 그녀는 고개를 털럭이며 눕는다 잠이 더 커진 시각이다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린다 아마 이 또한 그녀에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열기에 체온에 더 민감하다 나는 앉아있다가 침대에 몸을 늬운다 천장을 바라보다 눈알을 굴려 침대 헤드 위에 붙은 그림들 그녀가 그린 그림들을 바라본다 머리를 최대한 뒤로 젖히고 마치 잠에 든 듯 숨을 가늘고 길게 쉬면서 그림들을 세어 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그리고 침대 오른편 벽으로 눈을 돌려 하나 더 총 아홉 점의 그림들 그녀의 그림들이라는 표식이 모든 그림에 다홍색 이름으로 적혀 있다 사실 모두 그녀의 작품이라기엔 어색하기도 하다 그녀는 이 모든 그림을 화방을 다니며 단시간 내에 그려냈으며 그녀를 가르친 화방의 화가의 도움이 많지 않았다면 이 그림들이 이렇게 입체적이지 않았을 테니까 그녀 스스로만 그린 그림도 있다 지금 내 공간에 있는 그림들 보다도 더 이후에 그린 것이니 숙련도의 차이는 없을 듯하다 선으로 된 스케치와 그 선으로 만들어진 면 단면들을 하나의 색으로 곱게 칠한 그림 그것이었다 선과 면 지금 이곳에 있는 그녀의 그림들에는 모두 붓의 단면이 붓으로 만들어진 비늘들이 있는데 말이다 면 안에 있는 다채로운 붓질의 텍스쳐와 명암 그리고 보색을 포함한 바리에이션을 통한 그림에서 그림으로 넘어가는 그 터널을 넘어선 무언가가 남아있다 이건 그녀가 아닌 그 화가의 것 또 다른 그녀의 것이다 그러나 그림에는 또 다른 그녀의 이름은 없다 모든 화풍이 동일함에도 그녀의 이름만이 오른쪽 아래 작게 적혀있다 언젠가 그녀에게 그림을 받고 나서 그녀 혼자 완성한 작품을 보고 나서 나에게 선물한 모든 그림은 그녀의 그림이 아니라고 또 다른 그녀의 수고가 없다면 안될 그림이라 말한 적이 있다 그녀는 또 다른 그녀가 그저 마지막 몇 번의 터치를 한 것뿐이라고 그게 무슨 문제야, 매우 당연하기 짝이 없게 당연한 것 아니냐는 표정과 태도로 나에게 반문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기분으로 그녀의 그림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오늘밤 그녀에게 나를 목표로 하는 그녀에게 나를 미끼로 우두커니 던지고 바라보는 그녀의 작품은 다르게 다가온다 가장 큰 작품은 매트한 회색의 도자기가 덩그러니 그려진 정물화다 역시나 화가인 그녀의 마지막 터치가 가미된 그림이다 그런데 오늘밤 오늘밤 나는 그녀의 당당했던 이유를 넌지시 알 것만 같다 그녀는 화가인 그녀는 무엇을 그려야 할지를 방향을 잃은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나 스스로를 결박한 나와 기실 다를 바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무엇을 그려야 할지를 무엇이 자신이 다루어야 할 오브제일지를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화방의 수강생들이 그리는 그림들 아주 초안의 초안들을 통해 자신을 녹여내고 있었다 소위 컬래버레이션이다 돈을 받고 가르쳐 주지만 사실 자신의 그림의 영역 자신이라는 화풍을 미적 자아를 몰래 넓혀나가고 있었다 뾰족하지 않게 둥글고 둥글게 가슴속 사라지고 있던 열정을 이렇게 녹여서 채워가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살아 숨을 쉬는 법을 배웠다 그림을 그려야지만 숨을 쉬는 그녀가 무엇을 그려야 할지 붓을 가만 들고 있던 그녀가 붓을 던져가며 이 캔버스 저 캔버스를 돌아다니며 그녀가 살아졌다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하여 그 고마움은 수강생들의 몫이다 무엇을 그릴지에 대한 선택과 고민과 어떻게 그릴지에 대한 고민과 선택과 어떤 색으로 채울지에 대한 선택과 고민에 대한 대가는 작고 귀여운 서명으로 대체되었다 그녀는 화가인 그녀는 자신의 붓질에 대한 대가가 필요치 않았다 그녀는 돈을 받았고 숨을 쉴 수 있는 심박세동기도 받았다 회색 매트한 도자기 광원이 왼쪽측면 상단의 그 도자기 소위 달 도자기라 불리는 그 도자기 그녀의 집 가장 가운데 있는 물이 차있는 도자기 그 도자기다 나는 연신 눈을 굴리지만 오늘밤 나를 목표로하는 그녀의 기척을 다시 느끼지 못한다 그녀가 내가 잠들기만을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불을 끄는 건 나에게 불리하다 어둠 속은 그녀에게 유리할 뿐이다 그나마 내가 최소한으로 그녀에게 대응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나의 작은 그녀를 지키려면 불빛이 필요하다 이 폐쇄된 공간에 광원이 몇 개인지 세어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하나 너무 밝나 싶다 LED로 된 등을 끄고 화가인 그녀의 마지막 터치들로 결국 모두 덮인 그녀의 그림들을 향하고 있는 핀조명만 남긴다 좀 더 적정한 무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왼쪽 텅 빈 벽 쪽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그녀다 그러나 내가 기다리는 그녀가 아닌 또 다른 그녀다 또 다른 그녀는 머슥거려하며 물을 마시려고 나왔다가 내가 공간을 폐쇄하면서 갇혔다고 한다 나는 괜찮다고 잠시 혼자 생각할게 있었을 뿐이라며 나가보라고 한다 그녀의 사라지는 뒷모습을 길어지는 그림자와 함께 바라본다 이제 정말 이 공간에 다른 방해자는 없다 그녀도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았으리라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전에 나를 목표로하는 그녀가 있었던 곳을 눈으로 쫓는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의 그녀가 아니다 그녀는 그녀라는 동일한 객체명이지만 다르다 이전의 그녀가 숨었던 그 칠흑의 공간에 지금의 그녀가 있을 가능성은 적다 그 둘은 분리된 아주 다른 그녀다 그 둘은 서로 소통할 수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지난 세대의 그녀와 지금 세대의 그녀다 동일한 이름이란 속박에 현혹되선 안된다 개별 개체의 다름을 생각해야한다 해서 나는 지금의 그녀가 어떻게 나를 노릴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이렇게 하릴없이 기다릴 뿐이다 누웠지만 잠을 잘 수는 없다 잠에 빠져드는 순간 그녀가 나타날 것이고 내 몸에 구멍을 내고 천천히 사긋하게 피를 빨아갈 것이다 마비시킨 내 몸에 말이다 그러면 나는 그녀의 그녀의 그녀의 그녀들의 규칙에 따르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된다 최대한 경동맥을 보호하고자 이불을 끌어당겨 내 목을 감싼다 창밖으로 아직 차지 않은 달이 보인다 그리고 그 창에 반사되어 경직된 내 두 눈이 번들거린다 잠에 빠지지 않고자 그녀가 어디 있을지 상상해 본다 침대 밑 아일랜드 식탁 뒤 커다란 장식장 뒤 모두 아닐 것이다 지난번의 그녀를 생각하면 정말 다른 곳에 있었다 커튼 천장 뒤에 있었다 이번에 어디 있을지를 고민하는 게 바보 같지만 이 바보 같은 짓을 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압도된다 좌절된다 결국 숙명이란 것을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을 믿어야만 하는가 얼마 전 지나가던 집시가 나에게 자신이 만들었다는 뭔가 너무 오래돼서 냄새가 날 듯한 더러운 인형을 사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니 그래서 그 인형을 내가 손으로 쳐서 바닥에 떨어져 나는 연신 미안하다고 했고 그러면 별점을 봐주겠다 해서 나는 별점에 관심이 없다고 정중히 이야기했을 뿐이라는 이유로 그럼 타로는 어떻냐고 해서 타로는 좋다고 한 이유로 타로 카드 중 하나를 뽑자 그 집시가 나에게 숙명을 순리를 따르라고 한 뒤 행운을 원한다면 10달러를 더 내라고 하였지만 나는 건내주지 않은 이유로 나는 결국 그녀의 그녀의 그녀의 그녀들을 따라야만 한다는 것인가 내 옆의 작디작은 아직은 내 손길이 필요한 그녀가 있음에도 나의 운명은 그녀의 낮과 할 수 없는 것이 되어 오직 어둠에 속해 가야만 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싫다 싫다고 외치려는 순간 나는 꿈속에 갇힌 나를 인식한다 어두운 더러운 습지 가운데 갇힌 내가 있다 주변에는 팔꿈치보다 더 큰 잉어들이 보인다 내가 누워 있는 곳 바닥에는 내 침대보가 그대로 있다 잉어들이 연신 내 몸을 주둥이를 열어 먹어보는 시늉을 한다 음습한 비릿한 냄새가 가득 찬다 누군가의 열개의 손가락이 나타나 침대보를 끓어당긴다 하얀 햇살에 말려 기분좋은 냄새를 가진 빳빳한 침대보가 사라진다 내 몸은 그 아래로 밀려 떨어진다 등이 축축하다 기분이 가히 좋지 않다 잉어들의 등이 계속 보인다 그러나 내 몸은 습지 보다 점점 높아져만 간다 내 몸 옆을 연신 눈알을 굴려가며 본다 꽃이다 활짝 핀 꽃이다 연꽃 더러운 습지에 연꽃이 피어올라간다 잉어들이 어느 순간 대들지 못한다 나는 일어나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연꽃 앞뒤로 흰색 천이 늘어진 길이 연결되어 있다 그 옆으로 자욱한 연개가 있어 습지가 어디까지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나는 일어난 그대로 걸어간다 문이다 갑작스레 내 방문이 있다 나는 문을 연다 내 방안이다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내 발자국 마다마다 진흙이 묻는다 침대에 누울 수 없다 발을 씻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화장실로 걸어간다 오른쪽 창문에 커튼이 쳐져있다 어두움에 나는 터벅 걸어가 커튼을 옆으로 젖힌다 그녀다 나를 목표로하는 그녀가 있다 터져 나오지 않는 소리를 으악스럽게 지르며 자지러지려고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 마치 청동상이 되듯 나는 그렇게 우둑하니 선다 커튼을 밀치던 그 자세로 말이다 그녀는 내 주변을 한 바퀴 돈다 그리고 휘리릭 치마의 끝자락이 내 몸에 부딪히도록 내 옆에서 제자리 턴을하며 돈다 그리고는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노래가 나오도록 한다 어릴 적 들었던 아마 아버지가 몰던 그 차에서 나오던 오래된 팝송이다 제목이 기억 나지 않는다 그녀는 그 노래에 맞추어 움직인다 살랑거리는 그녀의 스커트 그림자가 바닥에 그리우고 집안을 가득 채운다 노래가 끝나자 내가 있던 공간은 내게 그림을 선물한 그녀의 공간으로 바뀐다 그녀의 테라스이자 그녀의 손님들이 빈번이 드나드는 공간이다 잠옷으로 나는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 앉아있다 모두가 나를 신경 쓰지 않고 그녀의 새로운 그림에 대한 찬사를 쏟아낸다 그녀는 나에게 눈짓으로 어서 차를 마시라고 한다 나는 기계와 같이 우둑우둑 거리며 찻잔의 차를 마신다 뜨거운 홍차가 목구멍을 통해 밀려들어온다 토하고 싶다 마신 것을 뱉어야 한다고 내 몸이 말한다 내 영혼이 울부짖지만 나는 그것을 위장으로 밀어 넣을 수밖에 없다 내 두 발을 바라본다 잠옷의 밑단과 발이 진흙으로 더럽다 얼른 화장실로 가 발을 씻고 잠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포근함을 느끼며 눕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하게 든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알았다는 듯이 나의 요구를 완전하게 수용하겠다는 표정으로 나의 손을 잡고 나를 그녀의 방으로 이끈다 마치 18세기 낭만주의자의 방과 같이 꾸며진 그녀의 방에 딸린 작은 화장실 욕조에 나는 물을 틀어 놓는다 차디찬 물만이 나온다 나는 그 찬물에 두 발을 담근다 발끝이 아리다 그리고 갑자기 비릿한 연못 냄새가 코끝에 느껴진다 잉어다 잉어가 욕조에 가득 찬다 물이 점점 진흙탕 물로 바뀐다 그리고는 잉어 한 마리가 점점 갑자기 커져 나를 결국 꿀꺽 삼킨다 잉어의 입천장의 주름이 보이고 그 끝의 구멍을 통해 썩은 음식물에서 나는 입냄새가 느껴진다 나는 코를 막으며 질끈 눈을 감는다 눈을 뜨자 식은땀이 난 내가 있다 그리고 작은 나의 그녀가 내 옆에서 자고 있다 창을 통해 햇살이 올라온다 천천히 매우 천천히 올라온다 손가락을 조금씩 찬찬히 그에 맞춰 움직인다 그리고 햇살을 따라가 본다 숨을 크게 내쉰다 목안에서 비릿함이 느껴지지만 살아있음을 느낀다 지나간다 아니 지나갔다 나는 웃는다 크게 그녀가 없음을 자유를 느끼며 승리의 행복감처럼 미친 여자처럼 웃는다 작은 그녀가 깨어나 나를 본다 괜찮아 괜찮아 작게 말한다 사랑스러운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며 눈을 감는다 잠을 청한다 평온하다 작은 그녀는 또 다른 그녀의 얼굴의 그림자가 내 얼굴에서 내려가 침대 밑으로 스스슥 사라지는 것을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본다 내 잠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말이다 그 사라짐은 마치 바퀴벌레같아 그녀는 몸을 부르르 움직인다 하지만 아직은 잠의 시간이다 그녀는 아침 식사를 하면서 말해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눈이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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