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릉로 삼엽충

치유될 수 없는 PTSD

by 빙빙

링크드인에 전 회사 동료의 글이 올라왔다 사실 별로 좋은 기억이 없던 그녀였기에 그녀의 글 또한 그녀에 대한 기억처럼 대충 후루룩 읽어 내려가 내 머리 밖으로 내보냈다 그러나 내 일촌들이 간간히 그녀의 글에 반응을 해주는 바람에 계속 그녀의 포스팅이 가장 위로 떠오를뿐더러 링크드인에서 보내오는 알림 메일 때문에 지속적으로 그녀의 글은 나의 관심을 살짝살짝 건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일요일 오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잠옷 바람에 로브 하나를 걸치고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로 스피커에 노래를 틀고 캡슐 커피 한 잔에 여유롭게 주중에 놓친 이메일들을 확인하다가 그녀의 글이 또다시 알림 메일을 통해 온 것을 보고 결국 나는 폭발해 버렸다 그녀와 일한 기간은 오년전 삼개월 남짓이었다 하지만 나의 기억에 그녀는 그닥 아니 사실 절대는 같이 다시는 일하고 싶지 않은 동료를 넘어서 만나고조차 싶지 않은 인간의 유형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와 그 어떤 연결의 고리도 만들지 않고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나도 그녀에 대한 기억들을 잊고 일상을 살아갈 즈음 그녀가 링크드인으로 일촌을 신청해 왔다 그녀는 아직 나와 함께 다녔던 그 회사에 다니고 있었으며 그즈음 외부 활동을 하기 시작하여 이리저리 인맥을 넓히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링크드인에 올린 글이나 다른 사람들의 글에 단 댓글을 잠시 보았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마음 넓게 나누어주는 듯 보였다 내가 알던 그녀와 달라져있었다 삼 년이면 사람이 충분하게 달라질 수 있으리라 나는 생각했다 사람은 성장하는 것이고 그녀와 헤어진 뒤의 나 또한 많이 성장하였기에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좋지 않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 모습이 그녀의 모든 모습이 아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우리는 헤어졌고 그 당시 나 또한 떳떳하게 모든 것을 올바르게만 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서툴렀던 그런 시기였다고 그렇게 나는 생각했다 일촌이 되고 나서 그녀가 올리는 글들은 분명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방향이 많았다 물론 내가 기억하던 특유의 날 선 모습이 글 속에 살아있었지만 그건 어떻게 보면 모호한 것 투성이의 세상과 사람 사회 속에서 직선적인 것 선명한 것이었기에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도 그런 면이 사회초년생이라던지 경험이나 정보가 부족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어 보였다 그녀의 단점이라고 느낀 점이 꽤 훌륭한 장점으로 보였달까 오히려 너무 긴 글보다는 바쁜 직장인들이 빠르게 소비할 수 있도록 맥락만 짚는 게 링크드인이란 플랫폼 내에서는 트렌디하였기에 그녀의 글들은 매력적이었다 거기에 그녀는 칠레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중퇴한 뒤 한국 IT업계에서 경력을 계속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글들은 꽤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퍼져갔다 여기에 더해 그녀 또한 꽤나 성실하고 꾸준하게 글을 올리고 링크드인에서 활동했다 그 결과 그녀는 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네임드로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올초에는 국내 최대 규모로 꼽히는 IT컨퍼런스 연사로 발표까지 진행하였다 나는 그녀의 성장과 성공을 정말 많이 축하했다 그리고 그녀의 발전된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했고 기뻐했다 그래서였을까 도치맘이 된 기분으로 - 내 아들 자랑도 이리 안 했던 것 같다 - 기업강의를 나갈 때마다 내가 경험한 누군가가 그 혹은 그녀의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예시로 나는 가장 먼저 그녀를 예시로 꺼내서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이제 그녀는 나의 자랑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글, 그녀가 올린 그 글이 나의 신경을 자잘하게 긁는 것은 약간의 앙금 서린 이유가 있었다 유투버로 까지 영역을 넓혀서 활동 중인 그녀는 자기 채널에서 가장 협업하기 어려운 유형의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모두가 의외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신입보다는 경력자 경력자 중에서도 꽤나 훌륭한 퍼포먼스를 이전 회사에서 보여준 분이 가장 어려워요 의외죠?라고 답했고 그 영상에 이어서 링크드인에 추가 글을 올렸는데, 가급적 이런 이야기는 안 하려 했는데요 구독자 여러분, 이라고 시작한 그 글은 경력자와의 협업이 훨씬 어려웠는데 이직 시 경력자는 자신의 기존 직장에서의 모든 것을 버리고 마치 신입처럼 다시 태어나는 듯한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회사에 적응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녀의 글에 공감하는 바도 매우 크게 있을 뿐더러 나 또한 강의에서 혹은 멘토링 시에도 이야기하기도 한다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는 사람은 그게 누구든 막론하고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가 암묵적 규칙이다 그렇다 기존에 하던 방식 그런 것들은 다 날려버려야 한다 하지만 그녀가 하던 행동들 새로 입사한 사람의 온보딩을 가로막던 행동들 그랬다 오 년 전 내가 당했던 그 유치 찬란한 그녀의 저급한 행동들이 생각 나서였을까 나는 그녀의 글에서 허점을 찾아 하나하나 반박을 달아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강렬하게 들었다 처음 내가 그 글을 읽었을 때 들었던 것은 그 더러웠던 기분이 다시 상기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더욱더 나는 빠르게 그 글을 휙 하고 읽고는 넘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 글은 분명 내 마음속에 살아있었다 그녀는 내가 합류 시점에 이미 그 회사의 입사 육년차였었다 우리는 같은 부서 소속이었지만 다른 직군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직군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나의 업무가 - 사실 그냥 내가 - 자신의 마음대로 동작하지 않음에 컴플레인을 냈다 물론 해당 업무의 이전 히스토리는 전혀 알려주지 않으며 말이다 거기에 더 해 그녀는 그것 조차 못 찾으면서 어떻게 경력자냐고 말할 수 있냐고 했다 내가 그러면 기존 히스토리가 있는 문서가 모여진 곳이 어디냐고 하자 문서는 없단다 자기 머릿속에 있지 하하하 뭐? 나는 이 어처구니 없는 무논리에 정말 손을 부들 떨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더니 나에게 문서 만들 시간이 어디 있냐며 그렇게 여유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하셔서 업무 하는 방식이 너무 별로신가 보다,라며 비아냥 거리기까지 했다 이건 도대체 무슨일일까 나는 정말 갑자기 회사가 아닌 대학도 아닌 고등 중등 초등 흐음 유치원 정도의 지적 수준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건 그저 시작이었다 그녀가 밤 11시에 프로젝트 긴급 이슈로 회의를 해야한다고 해서 밤 10시 반 퇴근길에 연락 받고 돌아가서 참여했더니 자신의 역할이기에 자신이 하는 것을 자신만이 바쁘고 힘들다며 부서장 포함한 프로젝트 사람들을 모두 소집하여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내고 때를 썼다 그녀는 창피함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저 애였다 사랑이 부족한 아이 자기 합리화를 위해 그녀는 자신만이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만이 일이라 부를 수 있는 - 자신만이 일이라고 인정하는 - 일을 하고 있다고 받아들였다 다른 이들이 하는 업무는 이해하려조차 하지 않고 오직 자신만 그 일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 일은 그녀의 일이었는데 말이었다 그 결과 그녀는 내 입사 이주 뒤부터는 내가 아침에 하는 인사조차 무례하게 받지 않았다 그녀의 입장에서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었다 아니지 오히려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렇게 나라는 사람을 무시하더니 비아냥을 넘어서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내 욕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성능 좋은 아주 아주 아주 좋은 확성기를 튼 것만 같았다 그렇게 바빠죽겠다고 징징거리던 그녀는 자신의 짜증과 화를 풀어내는 것만이 세상의 모든 것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는지 내 질문에는 바쁘다며 반일동안 답변이 없더니 사내카페에서 주구장창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내 회사 생활 십일 년 만에 처음 만나본 캐릭터였다 당시 나의 결론은 그녀는 그냥 인간성이 없는 기본 이하의 그런 사람 그것이었다 그리고 다시금 지금 그녀의 글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그런 성향 그 처량한 인격이 그대로였구나 바뀐 게 없구나 아아 바뀐 적이 없었구나 나는 깨달았다 그 모든 것이 그 글에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를 아프게 했던 오 년 전 그 상처가 나아졌다고 믿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변하지 않고 성장하지 않은 그녀를 내 맘대로 멋지게 포장했던 것이다 그녀가 변했다고 아주 근사한 사람으로 너무도 멋진 사람으로 사람들을 도와주고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고 스스로의 삐뚤어졌던 시선을 바꾸고 마음을 치유했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았다고 믿었던 내 상처가 다시금 벌어져서 내가 생각지도 못한 염증이 한가득 쏟아져 나오리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 염증을 내가 받아내지도 못하리란 것 또한 말이다 그녀의 글 마지막 내용은 이러했다, 네임드라고 불리는 사람들 특히 명심하세요 시집살이 3년 옛 속담이 얼마나 현명한지 마음속에 새기면서 입은 조용히 귀는 활짝 행동거지는 사뿐 조심히! 그리고 일못해서 쪽당하고 도망치기 없기!!! 다른걸 다 차치하고 가장 마지막 도망치지 말라는 말에서 나는 정말 나는 정말 그저 코웃음 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그녀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은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미친개처럼 물고 뜯고 한 뒤 결국 너덜너덜하게 만들어서 쫓아내면서 무슨, 그래 차라리 어차피 치유하지 못할 상처란 것을 인정한 것이 나에게 더 중요했다 이 상처는 그저 가져가야만 할 것이다 그녀가 쓴 것처럼 도망치지 말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잘 도망 나왔기에 어쩌면 이렇게 이런 여유를 가지고 인간답게 살면서 글을 쓸 수 있으리라 그리고 다시금 그 글을 읽으며 그래 그녀의 수준이 이 정도인 것을 그녀 스스로 만천하에 알려주는 게 어떻게 보면 감사해야 하나 할 정도다 그래 그래 그래 나의 PTSD는 치유될 수 없다 그렇다 지금까지는 현재까지는 말이다 그래도 또 모르지 한 5년 뒤는 아니면 10년 뒤는 어쩔지 말이다 그나마 다행이자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행인 그것은 전 회사에서 그녀와 오래 함께 다닌 다른 동료의 말에 따르면 나는 그녀가 지목한 사냥감 중 그녀가 사냥하지 못한 첫 사냥감이었다고 했었드랬다 핫 이 미친x을 다 봤나라고 역시나 그 얘기를 들을 때 코웃음을 치고 오 년 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삼릉로였던 이제는 테헤란로의 어느 양곱창집에서 소주를 기울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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