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추운 겨울 나는 집으로 간다

경기도민의 겨울나기

by 빙빙

붐비는 강남역에 넘치는 사람들을 넘고 넘어 익숙하게 경기도 어딘가인 집으로 가는 광역버스 타는 곳으로 가 광역버스를 기다린다 연신 찬 바람에 손발이 꽁꽁 어는 듯 하지만 나와 같은 누군가가 나의 앞에 앞에 앞에도 그리고 뒤에 뒤에 뒤에도 즐비하단 사실에 동병상련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라 생각하며 공동체 의식 속에 스스로를 밀어 넣는다 가라앉는 내 의식이 즐비한 간판들과 초대형 LED 스크린에 어지럽혀지는 어느 순간 누군가의 발짓이 나의 발짓으로까지 옮겨지고 그 발짓은 내 뒤로 뒤로 그렇게 계속 연계되어 전파된다 보이지 않는 올가미에 꾀여진 듯 우리는 그렇게 두 발을 덤펑거리며 옮겨 버스에 올라탄다 자리가 어느새 가득 차 있기에 머물 거림을 뒤로하고 가장 앞 좌석에 앉았다 버스는 빠르게 경부고속도로로 옮겨간다 연말의 어느 저녁 역시나 정체로 차들이 즐비한 고속도로 버스는 홀로 버스전용차선에서 얼음썰매를 탄 듯 밀려 나아간다 차창을 통해 지나가는 풍경을 보다 보니 외풍이 들어 친다 주위를 돌려봐도 그 어디도 열린 구멍은 없어 보이지만 차갑고 쌔한 바람이 나에게 다가와 어그 부츠를 신은 두 발을 점차 차게 만든다 아직 집으로 가기엔 시간이 남았는데 동동 거리며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얼굴을 구스점퍼 사이로 쏘옥 넣어본다 그래도 춥다 얼얼하게 춥지 않지만 다가오는 스슬한 스선함은 오히려 더 춥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갑자기 머릿속에 the giver 그 책이 생각났다 따뜻한 기억을 떠올리거나 추운 기억을 떠올려 체온을 바꿀 수 있는 책의 내용이 생각났다 갑작스레 올여름에 대한 기억을 대뇌 어딘가에서 손끝으로 찾아내어 만져본다 그스럼에 걸려 튀어나온 그 기억은 40도가 넘는 열기가 한밤에도 사그라들지 않아 밤새 토퍼 매트 위에서 땀을 연신 퍼붓듯 쏟아내는 나였다 에어컨이 고장 나 대기와 대지의 열기가 오롯이 나에게로 다가와 바닥에 붙어있어도 손바닥만 한 선풍기를 틀어도 그 모든 것이 나에게로 찐득하게 달라붙어 늘어지는 그 모양새였다 그때 얼마나 더웠던가 간절하게 시원함을 바라던 게 고작 4개월 전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조금은 섭섭하면서도 어색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내 몸이 그 열기를 발산하는 그런 기적적인 상황은 없었다 기억은 기억이었다 냄새의 기억이 실질적으로 떠올려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냄새로 인해 추억이나 기억을 일깨울 수 있지만 그 기억 속에서 실제로 맡았던 냄새를 꺼낼 수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시각이나 청각은 기억에서 꺼내어 다시금 보고 들을 수 있지만 냄새는 실제 다시 그 냄새를 맡아야만 한다고 했다 다시 생각하니 시청각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그렇지 아니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촉각 체온 맛 심박수 그 모든 것이 기억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기억을 기반하여 내 심상 안에서 어떠한 것도 되풀이될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여름의 추억을 이렇게 열심히 소환해도 내 두 발목으로 전해지는 시린 바람은 사라지지 않는구나 하지만 그럼에도 다음번의 더위를 위해 이 추위의 기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톨게이트를 나서는 버스 속에서 떠올랐다 오늘의 지금의 발목 위 어그부츠 위로 슝하고 밀려오는 이 추위가 다시금 덮쳐올 그 여름의 이글거림에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 무엇도 바꿀 수 없지만 바꿀 수 없음에 스스로를 멍청하게 쳐다보기보다는 이 스선한 바람이 있기에 그 열기가 더 기다려지기도 그 열기에 지쳐 땀에 절여져도 발목에 느껴졌던 이 한기가 스쳐 지나가기를 시공간은 달라도 나라는 존재의 어딘가에 붙어있던 것들이 다시금 재반복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냥 말도 안 되는 희망을 the giver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해본다 그렇게 나는 내가 giver이자 receiver가 되어 내 기억과 감각들을 재생산하고 사용하고 다시 채우고 하는 것 또한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곧 내려야 한다 교통카드를 지갑에서 꺼내어 손에 쥐고 버저를 누른다 이제 다시금 영하 10도의 추위를 맞이해야 한다 지금의 온기가 나를 또 보호해 주겠지 버스 속 망상에 망상이 집까지 가는 길 나를 빵빵하게 부풀려주리라 생각하며 횡단보도의 파란불을 기다린다 매섭게 때리는 바람을 얼굴로 맞이한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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