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먹을 것들의 연속
하루종일 먹은 것은 커피 몇 쪼가리였다 커피를 조각 보다 더 저급하게 쪼가리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330ml 한 잔을 네다섯 시간에 걸쳐 마셨기에 그것 또한 커피점을 칠 수 없을 정도로 일정 부분 남겼기에 정말이지 식어버려서 침전물이 상상되는 마지막 한입은 먹기가 거북하다 그랬다 나는 하루 종일 커피 몇 쪼가리로 하루를 보냈다 배가 고프지 않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많이 고프다 나의 위장은 나에게 무언가 음식을 넘기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러하기에 아무거나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신선한 재료는 이미 앱으로 주문해 두었기에 곧 집에 도착할 것이다 다만 그게 50분 뒤부터 4시간 뒤까지의 범위란 것이 당혹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는 배달 기사님을 기다리며 무엇을 먹을지 흥얼거려 본다 푸른 표지의 책에 적힌 아이리스 머독의 기행적인 레시피에 질 수 없다 그리고 내 배고픔에도 질 수는 없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와인 한 잔이 간절하다 냉장고를 열어본다 와인은 없다 다만 사케 한 병이 가지런히 들어있다 일 년이 넘게 나와 지내온 그 친구다 혹시나 상할까봐 냉장고 제일 아래칸에 두었던 녀석이 살아남았구나 싶었다 갑자기 얼마 전에 본 대도시의 연예가 생각났다 냉동블루베리와 체리를 꺼내 파란색 스타우브 수프 그릇으로 옮긴다 그리고는 화이트와인 비네거를 두르듯 뿌리고 사케를 잠길 듯 넣는다 그 위에 코코넛 오일을 약간 그리고 찬장을 열어 파슬리 가루를 뿌려준다 입이 심심해진 나는 건조 피스타치오를 꺼내 김석빈 도자기 중 가장 작은 접시에 조금 꺼낸다 파랑 테두리에 기분 좋아진 나는 피스타치오 껍질을 오른손으로 하나씩 까서 먹는다 30분 정도 후 사케에 절은 아닌가 냉동베리에 절은 사케인가 무튼 그것을 마신다 아이리스 머독은 뫼르소를 마셨다고 아니지 정확하게는 찰스 애로우비의 뫼르소 보다 나으면 나았지 덜하지 않다 기분이 살짝 좋아진 나는 내일 먹을 - 물론 오늘 먹을 수도 있는 - 음식들을 머릿속에 굴려본다 무조건 이건 정말 무조건이다 무조건 브리오슈 토스트를 기버터에 양옆을 토스팅한 토스트를 블랙커피와 먹을 것이다 한 조각은 그냥 토스팅만 다른 한 조각은 따뜻하게 토스팅된 브리오슈 토스트 한쪽에 브라운 치즈를 바른다 그리고 마지막 조각은 양 쪽에 설탕과 소금을 약간 넣은 달걀물에 앞의 두 조각을 토스팅하는 동안 약간 담가 둔 뒤 토스팅한다 토스팅을 모두 한 뒤에는 무염버터를 스프레드로 떠서 한 면에 올려 따듯한 잔열로 녹도록 한다 브리오슈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먹고 마시는 블랙 커피란, 아침 그리고 저녁의 요한네스가 마지막을 맞이하면서 먹던 아침 식사 저리 가는 메뉴가 될 것이다 이때 블랙 커피는 무조건 인스턴트여야만 한다 가루가 가늘게 분쇄된 것도 좋지만 되도록이면 후안 발데즈나 맥심 오리지날 같은 굵기가 좋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먹으면 한 조각에서 다음 조각으로 특히나 브라운 치즈에서 프렌치토스트 스타일로 넘어갈 때 가장 위장이 느끼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짐짓 중요한 것이 샐러드다 고수와 파슬리는 한 입 사이즈로 자른 뒤 애플 비네거와 레몬즙 소금 후추를 뿌리고 신선한 올리브오일을 넣고 버무린다 그릭 요거트를 살짝 올리면서 딜을 다져서 넣고 마무리로 페타 치즈를 손으로 잘라 툭툭 던진다 아 정말 정말 마무리는 발사믹 비네거다 진득한 정도의 발사믹 비네거를 마무리로 잘 올린다 토마토를 넣을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입안에 씹혀 나가는 그 신선함이란 마치 내 인생에서 처음 맛본 10대와 같다 풀내음 사이에 비릿함이 청순한 10대 같은, 미묘하게 이상한 듯 맛있는 그 맛 그러고 보니 토마토도 주문을 했다 토마토를 빼면 섭섭하다 양파와 셀러리를 잘게 설어 올리브오일에 잘 볶고 통조림 칙피를 넣어 칙피가 앞뒤로 노릇해질 때까지 함께 볶는다 소금 파슬리 가루 펜넬 시드 커민 후추를 넣은 뒤 순도100% 토마토 퓌레를 약간 넣는다 그리고 원래의 내 레시피는 먹다 남은 와인을 넣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일을 위한 와인은 없으니 냉동 베리류와 사케를 넣고 함께 토마토의 풋내와 알코올이 날아가길 기다린다 그 사이 - 또 먹는다고? 그렇다 난 배가 고프다 - 양송이버섯 소테를 만들어 둔다 그리고는 토마토 스튜에 생토마토를 약간 잘라 넣은 뒤 한 소끔 끓이고는 불에서 내려서 양송이 소테를 곁들인다 토스트와 함께가 아니라면 계란 두서알을 넣어서 에그인헬 처럼 해먹기도 한다 스트레스받는 날은 여기에 카이엔페퍼를 넣기도 하지만 내일은 그런 스트레스를 받을 수가 없는 평온한 수요일이다 아마 스튜는 먹다가 남겨서 저녁에 다시 먹을 것이다 그러면 낮에 먹던 브리오슈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앞뒤로 토스팅만 해서 찍어 먹겠지 호밀빵을 하나 사 오고 싶은 충동에 갇힐 수도 있다 그러면 아마 따뜻한 우유를 약간 넣은 블랙 커피에 코코넛 오일 파슬리 가루 후추를 넣고 먹고 싶을 수도 있다 발끝이 코끝처럼 시리면서 빨래가 완료되었다는 신호가 다가온다 빨래를 널고 사케 와인, 사케 칵테일 한 잔을 더 타와서 그의 이야기에 파묻히며 빅토리아 모넷의 노래를 들을 것이겠지 것이다 것이길 바란다 아니 그 사이 배송선생님이 오시길 바란다 간절히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