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살아남은 자의 변명

by 빙빙

이곳은 바쁘다 내가 지내던 시간보다 분명 빠르다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 흩어진다 내 머릿속에 단어가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듯이 잡히지 않는 그 상태로 빠르게 빠르다 그리곤 또다시 잠시 모인다 빠르게 잠깐의 공유의 연속 모두가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저마다의 삶을 연속적이면서도 불연속적으로 끊어지는 무언가를 부여잡으며 그렇게 연결해 나간다 그 사이 수천수만 개의 이야기가 서로 달라붙었다가 떨어졌다가 한다 그중 어떤 것은 이야기란 꼬리표를 달지 못하고 누군가의 누군가들의 뇌리에 남지 못해 그저 그렇게 허공으로 날아간다 이 또한 빠르게 말이다 어떤 것이라 했지만 사실 많은 것들이 그렇게 사라져 간다 사라지는지고 있는지도 인지당하지도 못한 채 스르륵 그 어떤 분란함도 없이 스스로가 살아있었다는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그렇게 그냥 그렇게 사라진다 생명의 반짝임이 정말 반짝 말 그대로 반짝이고 나서 그렇게 무의 상태로 날아가버린다 그리고 그 사라짐들의 공백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다른 것들로 또다시 빠르게 가득 차 무엇이 나가고 무엇이 들어왔는지 알 수 없게 된다 그걸 하나하나 확인하고 대조하고 깨닫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에너지의 사용인지 눈치채는 것 자체가 빠르게 일어나 우린 그저 그 자체 또한 인지하지 못한 채 자연스레 숨 쉬듯 그렇게 그런 것들을 지내 보낸다 마치 무정차 열차를 플랫폼에서 눈길로 보내버리듯 말이다 나에게 관계없다는 듯이 그런 눈짓을 보내며 말이다 기실 그런 것들과의 이별을 못한 지 너무도 오래되었다 나라는 인지적 역설의 집합체가 그 모든 것을 껴안을 수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무도 많이 그저 그렇게 그 어떤 인사도 미안함도 가지지 못한 채 그저 보내 버렸다 이별의 시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부 그저 흘려보낸 것도 맞다 그랬다 나는 두려움에 사로 잡혀있었다 나를 넘어서는 그 높은 파도 앞에 그저 연약한 동물이 되어 본능에 이끌려 육지로 육지로 도망갔다 본능에서 내 스스로를 꺼내어 보자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짧은 순간의 이별들이 갑자기 옆구리로 훅하고 깊게 들어왔다 두 눈앞에 보이지 않은 많은 것들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내 무능력함에 소리 없이 소리 질렀다 아픔은 아팠다 그러나 이번에는 빠르게 지나가지 않았다 본능의 끝에 걸린 그곳은 더 이상 빠르지가 않았다 늘어진 강아지가 여댓시간을 자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곳 몸을 바지런히 조금 움직였다 생각하면 곧 태양의 끝이 내 발끝에 마주쳐 밤의 시작을 맞이하는 곳 그리고 사라진 그것들에 대해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도 않는 곳 그곳에서 오히려 나는 새된 소리를 내는 오래된 녹슨 칼처럼 색색거리며 아팠다 내가 인정하기 싫었던 것들이 매일밤 내 주변에 찾아왔다 그리고 밤새 뱅그르르 내 주변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며 존재했다 반짝이며 사라졌다고 그랬다고 아니 그런지도 몰랐던 그것들이 찾아왔다 불을 아무리 높이 크게 피워도 소용없었다 그것들은 그렇게 찾아와 나를 힘들게 했다 낮이 되면 나는 되려 괜찮아졌고 낮과 밤의 경계에선 가장 쌩쌩해졌다 그 어떤 것도 나를 붙잡지 않는 그 시간 태양이 저무는 그 순간이 순간을 넘어서 얼마나 길고 긴 연장의 시간인지 해가 저물어간다라고 숨을 꼬빡 멎으며 생각하다가 호흡이 부족해 힘들었던 적이 있다 나는 아는 것이 많이 없었다 그리고 알았다고 생각한 것도 아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가 주입한 생각의 각인이었다 그 각인들의 모음을 생각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기인되었는지도 모를 그런 것들이 나에게 모이고 모여 나라고 합쳐져 있었다 그리하여 어떻게 보면 잃어버린 그들의 일부가 나에게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을 들여다보면 분명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조금 기운이 가득 찰 때는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만난 어둠 속에서 다시 만난 그들은 나를 맹비난했다 두 귀를 막고 발버둥 쳐도 그것들은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아다닐 뿐이었다 그동안 빠른 그 속에서 뭔지도 모를 것들로 계속 나의 몸과 머리에 치얹어 씻어내던 그 행위들이 결국 나를 망가트렸다 나는 정화되지 못하는 시간들 그것들을 버텨내고 있었다 결국 도달한 그곳에서 나는 내가 하지 못한 내가 쌓아둔 그것들에 습격당하고 있었다 그 습격 속에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밤을 어떻게든 버텨내고 해가 다시 뜬 뒤 잠시 쪽잠을 잔다던지 아니면 몸을 좀 움직인다던지 또는 책을 읽는 다던지 본능을 통해 살아난 나는 본능을 뛰어넘어 다시금 지식이라는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들에 나는 휩쓸려 더욱 힘들어진다 빠름에 생각 없이 살아감에 길들여진 나란 동물은 오히려 생존의 영역으로 다가가고 다시 살아나자 이전보다 더 빙글거리며 제자리를 못 찾는 팽이가 되었다 이별을 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런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이별을 모른다 그저 단절만을 단절도 아닌 분절만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척한다 아는 척 중이다 그리고는 그 분절의 영원함이 이별이라 착각한다 그건 그런 게 아닌데 그런데 말이다 지금은 느긋하고 느릿하게 모든 걸 온몸으로 스스로 부딪혀야 함에도 그건 불가능하다고 믿는 어리석음이 나를 지지한다 마치 그러지 않으면 생존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자기방어라고 합리화하려고 한다 본능을 누르자 논리라는 녀석이 빼꼼한다 아직도 예전의 방식 살아온 그 방식이 지배하고 있다 나서야 한다 일어서야 한다 그리고 인정해야 한다 사과해야 한다 진심으로 온마음으로 이별해야 하는 그것들의 사라짐이 나를 살려준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 삶은 결국 길고 질긴 그 연들이 얽히고설켜서 계속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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