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ing

삶의 다음 챕터를 넘기기 전

by 빙빙

Wintering 겨울을 보낸다 겨울을 난다 겨울을 견딘다 캐서린 메이의 책을 읽으며 wintering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주 전 일요일 오후 갑작스레 만나자고 연락한 A는 우리 집 근처 카페에서 뜬금없이 이 책을 꺼내 나에게 쥐어주었다 코가 시린 겨울 냄새를 물씬 품은 바람이 얼굴에 부딪히는 어느 일요일이었다 이 시기면 항상 나는 인지하지 못하는 콧물을 주르륵 흘려서 사람들의 우스개거리가 되곤 한다 그날도 그랬다 먼저 카페에 앉아있던 A는 내 얼굴에서 여느 때와 같은 주르륵 흐른 콧물의 흔적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녀는 평소처럼 웃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눈빛은 결연했다 그녀는 나에게 휴지 한 장을 건네며 콧물을 닦으라고 무언으로 알렸다 그제서야 인중에 흘러넘친 콧물을 알아차리고 나는 콧물을 허겁지겁 닦으면서 카운터로 가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다시금 그녀에게 돌아와 반대편에 자리를 잡았다 A는 갑작스러움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만나려면 두세 달 전에 연락해서 비어있는 시간을 확인해야만 하는 타입이었다 그런 그녀가 일요일 아침 일찍 나에게 연락을 했다는 게 의아스럽기도 했지만 나의 호기심이 너무 도드라지지 않도록 노력하려고 했다 그녀의 아랫입술이 달착 거리는 것이 보여 나는 최대한 기다리려고 했다 그 사이 내가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꽤 긴 시간의 침묵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어색함에 나는 괜히 옆테이블을 바라보았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넘기기도 하였다 양손은 테이블 아래에서 열 살짜리 아이처럼 꼬물거리면서 말이다 나 말이지, A의 목소리가 왼쪽 귀를 통해 들려왔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나 말이지, 한 번 더 뜸을 들이던 그녀는 회사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려고,라며 담담한 말투로 결론부터 말했다 그리고 그냥 좀 쉬려고,라며 덧붙여서 말했다 반사반응과 같이 나는 남편은?이라고 되물었고 그녀는 웃음기 없이 우리 지난주에 이혼절차 끝냈어 나 이제 싱글이야 싱글, 이라며 되받아쳤다 나도 모르게 혼돈의 소용돌이가 두 눈 위에 잠시 올려졌다 입을 뭐?라고 뾰족하게 만들면서 말이다 A의 남편과 나 그리고 A는 모두 같은 대학교 같은 과 동문이다 그의 남편은 우리보다 3년 선배였지만 군대를 다녀와 복학해서 우리와 이학년 이학기부터 졸업까지 함께 수업을 들었었다 그 사이 그는 A에게 고백했고 그 둘은 그 이후 결혼까지 하여 15년이 넘는 아 그들의 아들 H가 대학에 들어갔으니 벌써 25년이 넘었구나, 25년이 넘게 함께해 왔다 A와 그의 남편 그리고 H까지 그들을 생각하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생기 넘치는 웃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에너지가 넘쳤고 시간이 맞을 때면 줄곧 에너지가 부족한 나를 이끌고 산으로 강으로 끌고 다녀주었다 캠핑을 좋아한 그들은 힘든 기색 한 번 없이 항상 밝게 웃고 수준 높은 요리를 맛보게 해 주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화장실에 있는 휴지 풀듯 어려움 없이 정말 술술 말이다 나의 노잼 인생에 그들은 빛과 소금 같았다 그것뿐인가 A는 천성적으로 게으른 나와는 다르게 성실함의 대명사로 대기업 취업 후 회사에서 운영하는 MBA 프로그램을 지원했다가 발탁되어 NYU에서 MBA를 졸업한 뒤 회사로 돌아와 모두가 안되리라 예상한 굵직한 M&A를 모두 성공시키고 재작년 그룹사 첫 여자 상무로 이름을 올렸다 거기에 더해 작년 H가 미국 명문대에 들어가기까지 했으니 그들의 삶은 주변의 누가 보아도 완벽해 보였다 아 A의 남편은 또 어떠한가 졸업 후 대기업을 다니다가 퇴직한 뒤 약학대학원을 졸업하여 현재는 개포동에서 3명의 약사를 고용하여 규모 있는 약국을 운영 중이다 그들은 반포역 근처에서 한강이 보이는 고층 아파트에 살며 그 누구도 부러워 마다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다 일과 삶 움직임과 쉼 그 사이에서 고루 균형을 찾으면서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나는 항상 흙이 낀 손가락을 숨기려는 아이와 같이 내 삶을 숨기며 살아왔다 짐짓 밝은 척 그들과 같이 높은 소비력을 갖은 척 그들을 만날 때는 그렇게 나 또한 강남구에 사는 다른 사람들과 평균을 맞추며 사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부단하게 노력했다 실제로 A가 그런데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인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A가 몸에 걸친 값비싼 주얼리들을 보면서 나 또한 일 년에 하나씩은 사서 모으려고 했다 그건 말하자면 자격지심 그랬다 그런 단어가 적절했다 중소기업에서 말년 부장으로 지내며 결혼도 못해본 나는 동문들 사이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아이로 치부되곤 했다 바닷가 깡촌에서 운이 좋아 그저 우리 과에 들어온 주홍글씨가 낙인 된 얼룩말이 바로 나였다 너무 튀지도 너무 뒤처지지도 않도록 노력해야 했다 그래야 그나마 점심을 같이 먹을 친구 하나둘 사귈 수 있었다 A는 예쁘게 생긴 외모만큼 부드러운 말투와 본인만의 철학이 뚜렷했다 같은 과 남자동기들 중 대부분이 A에게 고백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런 어느 날 경제학개론 수업이었나 하여튼 필수전공과목 중 하나를 듣던 어느 날이었다 A와 나는 어쩌다 보니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당시 나는 피터 한트케의 관객모독에 빠져서 극으로도 보고 또 보고 희극대본 또한 한국어로 읽고 영어로 읽고 독어로 읽고 그냥 미친 듯이 계속 관객모독을 읽고 있을 때였다 이유는 음 이유가 분명 있었는데 이제는 기억이 도통 나질 않는다 아마 남자 때문이었겠지 싶다 - 물론 그가 노벨문학상을 탔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중지를 올려 신문지에 거대한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 A는 내 책상 위에 놓여진 관객모독에 손을 대며 나에게 눈으로 허락을 요청하였다 나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이 반짝거림을 나는 등뒤로 느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친해졌다 나중에 그녀는 내가 궁금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러 옆에 앉았었던 거라고 했다 A는 그런 사람이었다 누구를 사귈지 누구와 만날지 누구와 무엇을 할지 모든 것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조절하는 성격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혼 후 은퇴라니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서랍을 닫으려고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거기에 더해 고향이라니 내가 알기로 그녀는 목동에서 자라났었다 소위 서울 엘리트코스의 표본인 그녀라고 알고 있었는데 나의 의아함을 빠르게 알아차린 그녀는 나 원래 고향이 강원도 강릉이야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렇게 놀란 표정 짓지 않아도 되라며 H가 대학에 가면 이렇게 하기로 모두, A의 남편과 H까지, 합의한 상태였고 이혼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 올해까지 연기된 것일 뿐이라고 다정한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그럼 언제 내려가냐는 나의 말에 그녀는 내일이라고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웃음이 대학교 때 계란빵을 처음 먹어본다며 나를 보며 웃던 그 표정과 꼭 닮아서였는지 아니면 연이은 충격 때문인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사이 다 식어버린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시는 것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말들이 머릿속을 자기들 맘대로 맘껏 돌아다니는 말것들이 날숨을 통해 나올 것 같은 그것들을 입을 통해 토해내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하지만 말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 만년 부장으로 지내다가 너무 튀지 않게 그렇게 매일을 보내다가 정년퇴직하려고 그렇게 부단히 노력 중인 내가 무슨 이래라저래라 말을 가져다가 붙인단 말인가 나는 갑작스레 카페 유리창에 반사된 내 모습에서 희끗한 머리가 도드라져 보이며 내 스스로가 더 초라해 보여 그저 그녀의 손을 바라보게 되었다 다합쳐 1.5캐럿이라는 백여개가 넘는 화이트 다이아몬드가 24k 로즈골드 링에 섬세하게 세팅된 그녀의 결혼반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 어떤 반지도 보이지 않는 그녀의 손은 마흔 후반의 오십을 바라보는 어느 여자의 손가락이었다 다만 깔끔하게 잘 정돈된 가늘고 긴 중년 여자의 손이었다 그녀의 방문에 반짝이는 명품브랜드 반지를 낀 두 손을 나는 테이블 아래로 다시 내렸다 히터가 강하지도 않은데 갑자기 등뒤로 땀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강릉 올 일 있으면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선물이라며 자기가 읽었던 책인데 분명 나에게도 좋은 울림을 줄 것이라며 wintering이라는 책을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지금이다 그녀가 노란 마커로 표기한 부분이 나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모두 자기 몫의 괴로움을 가지고 있다 남들보다 그것을 더 잘 숨기는 사람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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