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인내적 시작점
나는 거지 같던 그 회사와 그 속에 거지 같은 인간들 때문에 나의 거지 같은 꽃가루 알레르기가 나이 40 넘어서 발병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러했다 그것 외에 나에게 큰 변화가 생긴 것은 없었기에 내가 내 꽃가루 알레르기를 알아챈 아내가 커다란 백합을 꽃시장에서 사 와 거실 한구석에 장식하고 나서야 그리고 삼일이 지난 뒤에야 몸의 이상함을 눈치챈 그때서야 나는 나에게 꽃가루 알레르기가 생겼음을 알아챘고 그 커다란 몸의 변화가 몇 달 전 그만둔 회사와 관련 있음까지 알아챘다 정말 그 외에 큰 변화는 없었다 그리고 그다음 해 봄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봄이란 어떤 것인지 알게 된 그 봄 나는 천식으로 숨을 쉬지 못해 잠을 잘 수 없는 날을 맞이하고 고르지 못한 숨을 가득 폐부로 게워내며 새벽을 맞이했다 응급실행까지 맞이했던 그날 아침 정말 개쌍욕을 하며 전 회사를 응징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땐 그럴 힘조차 없었다 퇴원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안경을 쓰고 매일 약들을 잘 먹고 흡입기를 제때 사용하고 잠잘 때부터 아침까지 귀가 아플 때까지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매년 봄 가족들과 다니던 꽃구경은 이미 한물갔다 그나마 꽃과 친한 나는 아니었기에 큰 일상의 불편함은 봄을 제외하면 없었다 그러나 그리고 큰 곤욕이 다가왔다 장례식장은 생화의 천지였다 장손인 내가 손님을 받을 수 없는 사태가 도래했다 친척들과 방문객들은 안경 뒤의 퉁퉁 부은 내 두 눈을 보고서도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목구멍으로 간신히 긁어내어 만들어도 불편한 기색을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알레르기 따위에 상주가 자리를 계속 지키지 않음이 얼마나 불효인지를 알려주었다 그나마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둘째 녀석의 도움이었다 지 밖에 모른다며 어머니의 볼매를 맞던 녀석은 모두가 있는 곳에서 우악스럽게 나를 장례식장에 딸려있는 방으로 밀어 넣고 형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움이라며 줄도상치고 싶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그 덕택에 응급실행은 막았으리라 그 녀석이 평생의 숙제와 같던 놈이 나에게 도움이 다 되다니 방 안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갑자기 허탈함이 밀려들어오고 민망함이 느껴졌다 내가 누굴 책임을 진단 말인가 폐악질을 발악질과 구분 못해 그저 난리를 치는 것 밖에 모르던 게 나이지 않았나 나에 대해 나란 인간의 인생에 대해 장남이라고 그 모든 관심을 받았고 그 관심을 부담스러움으로 돌려버리고 나는 내가 받은 모든 혜택들을 그저 그렇게 흘려보내지 않았나 나만이 잘나고 나만이 똑똑하고 그 별차이 없는 그 사이에서 차별이란 아주 작은 틈을 더 넓히고 간격을 만들고 만들어 결국은 그 거지 같은 회사에서 내가 그렇게 당하고 나자 결국 나는 터져버렸다 그리고는 지금 효자로 남고 싶어 발악을 하던 나는 주저앉혀버렸다 난 아프다 내 삶은 제대로가 아니었다 그 결과가 바로 이 꽃가루 알레르기였다 산재라며 우스개로 이야기할 그런 게 아니었다 내 삶은 그 모든 것이 염증성 반응을 일깨우고 있었다 그저 트리거가 필요했을 뿐 그리고 그 트리거가 그 회사였을 뿐 나는 사실 아직 그 어떤 것도 극복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치마폭에 아직도 폭 쌓인 아이와 같았다 온실 속 곱게 자란 식물은 결국 노지에서 퍼져버렸다 극악의 가뭄 타들어갈 듯한 햇빛의 열기 그 모든 것이 나를 깨버렸다 기실 그런 것은 그저 당연한 그런 것이었는데 말이다 때맞춰 뿌려지는 물줄기에 적정하게 들어오는 햇볕에 그 환경에 익숙해지고 그 안에서 자랑스럽게 자라 가던 나는 분갈이며 웃자라는 순이며 그 모든 것이 통제되던 환경에서 그저 나 잘났다고 꼴값을 떨던 꼴이라니 이미 퉁퉁 부은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몇 년 만인가 나를 잠깐 보러 온 막내딸이 깜짝 놀라 와이프를 불러온다 괜찮다고 손짓을 하며 모두를 내보내고 싶은데 기어코 모두가 직계가족들이 다 모였다 다들 울음을 터트렸다 각자의 사정이 마음이 아픈 무언가 그런 손가락이 강렬하게 꼬집힌 거겠지 그렇지만 그 순간 어머니의 가슴 품 안에 있는 느낌은 생생해서 마치 나 혼자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그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나는 아버지를 보내고 나서도 그렇게 아버지를 탓하던 어머니가 싫어 자주 뵙지 않음이 생각나 더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그게 뭐라고 정말 그게 뭐라고 다시 생각하니 꽃가루 알레르기가 뭐라고 정말 그게 뭐라고 작년 봄에 어머니가 꽃구경 같이 가자고 한 말에 아들이 꽃가루 알레르기인 것도 몰라요 응급실까지 다녀온 것도 말씀드렸잖아요라며 그렇게 몰아세우며 온몸을 다해 열의를 다해 성질을 부렸을까 어머니가 무언가를 해달라고 한 게 얼마만이었던가 그럼에도 효자인 척 하기 위해 호텔에 있는 중식당이니 결국 다 부질없는 것들이었다 둘째에게도 왜 나만 돈을 내야 하냐며 너는 자식이 아니냐며 왜 그리 짜증만 냈을까 그냥 내가 넘치면 내가 좀 더하면 되고 내가 부족하면 부족한 데로 하면 되는데 형이나 그런데 좋아하지 난 별로 부르지도 마라고 말하던 둘째의 뒤통수에 대고 왜 그리 모진 말을 마구 던졌을까 가족이 뭐라고 속 안으로 퉁퉁 성을 내며 집에 오자마자 와이프에게 괜한 화를 내며 결국 나를 회사로 일로 내몰았다 그게 나였다 모두의 아픈 손가락은 나였다 지금에 와서 내가 미안하다 한 들 돌아올 수 있을까 그 많은 말들 내가 뱉어낸 쓰레기들이 사라질 수 있을까 후회된다 그래 이 눈물은 후회의 눈물이다 그러나 따뜻하다 그리고 찝찌름하다 따뜻한 손길이 어깨에 느껴진다 둘째다 둘째 녀석은 그랬다 제멋대로지만 항상 마음이 깊었다 그랬지 어릴 적에도 내 것만 챙기는 나와는 다르게 다른 형제들 것까지도 모두 챙겼었다 바보라고 놀려도 자긴 그게 더 좋다고 했다 가족이 있다 가족이 그래 그걸 배웠다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배울 게 많구나 난 아직 아이였구나 깨닫는다 이제 아버지 어머니 모두 없는 세상인데 정말 난 이제 지지할 누군가가 없는 고아가 되었구나 나이 사십줄에 고아가 된 기분 생각보다 더 막막하고 어렵구나 정말 고아라는 단어밖에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다니 하지만 가족이 있으니까 남은 가족이 있으니 이젠 정말 어른이 되어보자 그래야만 한다 일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