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미약 독서

회산 아래서를 읽는 행위를 마치고

by 빙빙

Under the Volcano 맬컴 라우리 챕터 12로 이루어진 이 책은 간만에 너무나 지진하게 나가는, 늪지대를 나가는 듯한 글이었다 콰우나우악에서 시작되는 이 글은 멕시코인과 백인들과 스페인어와 영어와 내면과 외면과 이야기의 중심과 배경들과 지나가는 스쳐가는 삶의 한 장면과 주요 순간들 현실의 감각적 형용과 오래된 텍스트의 서사들이 정처 없이 섞여서 단면이라고 부른 것이 일순간 끈적거리는 줄기의 흐름으로 바뀌고 분무기로 뿌려진 안개가 파연하게 쏟아 들어오는 번개로 바뀐다 글을 쫓아가는 그 과정 과정이 너무나 파괴적 - 그래 음 너무도 진부하지만 그럼에도 - 파격적이라 나는 작가의 시선을, 그들의 시선들을 그저 따라가기만도 벅찼다 첫 번째 챕터를 지나서야 그나마 겨우 한 움큼의 진전을 이루어냈으나 그럼에도 발목에 쇠줄을 질질 끌고 가는 듯 나아가던 나는, 결국 앤디 밀러의 원칙인 하루 50페이지에 비견되는 하루 한 챕터를 목표로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지질했다 아니 지지했다 그러나 이 목표를 잡았음에도 이 책을 읽는데 이주가 넘는 시간을 사용했다 책의 중반부를 지나 마지막 챕터들, 특히나 챕터 10부터는 몰입해서 나는 글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몰입이라는 방패의 비호 하에도 십 초 전에 읽었던 글을 다시 읽으면 나는 그저 새로웠다 완전히 처음 마주치는 텍스트와 같은 그 느낌을 느꼈다 처음 나는 이런 느낌에 마치 영문 소설을 읽는 느낌을 받았는데 나 자신의 무지성과 저수준의 인지 능력에 탄복을 하며 괴로워했다 유리 어항 속에 갇힌 금붕어처럼 그렇게 부딪히고 잊고 부딪히고 잊고 다 잊어서 결국은 어항 속이란 것을 잊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아니 이 책은 나를 그렇게 저급하게 만들었다 조급했다 이 글을 읽은 이들의 찬사를 다시금 보았다 이 모든 것이 나만의 문제라는 것은 명확했다 율리시스에 비견되는 우리 시대 가장 강력하고 창조적인 소설이라는 책 표지의 글귀가 내 두 귀에 돌림노래처럼 들려왔다 중반부까지 이런 생각이 꼬리표처럼 글을 읽는 나의 뒷모습에 달라붙어있었다 부끄러움을 가리고 나는 읽어나갔다 블리자드 속에 갇혀 나아가는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보이지 않는 앞을 옆을 뒤를 사방이 모두 보이지 않는 그곳을 나아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음을 돌려 생각하니 박막을 통과하는 차원의 막을 통과하는 글을 읽는 듯한 행복함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울렸다 나의 이 우둔함을 자기 합리화라는 작두에 올라타서 바라보자니 기분이 좋아졌다 해서 화산 아래서는 그냥 두고 계속 읽는 내 서재에 포함되는 책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기실 기존에 나는 등장인물들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발견해 나아갔다 그러나 이 책은 전혀 달랐다 내 자아를 해체하고 파편화해서 아주 작은 유리 조각으로 만든 뒤 그 작은 조각을 다시 망치로 더 가늘게 마치 설탕가루처럼 부셔야만 한다 그렇게 부셔서 흩뿌려야지만 이 책에 이야기에 스며들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부서진 나란 존재는 결국 개별 개체로 전환되어 환원성을 잃은 채로 나로 돌아올 수 없다 그런 존재들은 내가 아니었다 그럼 이 글을 읽는 나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파편화된 자아의 사이사이에서 그 차이를 인정하며 나는 나를 버려야만 내가 기억하지 않아야만 내가 이해하지 못해야만 이 글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모순의 함정에 빠져버려 커다란 도자기 안에서 귀만 삐져나온 토끼처럼 도자기 안의 어두움을 바라보았다 ignoratio elenchi, 이그노래시오 엘렌카이, 이그노래시오 엘렌카이, 이그노래시오 엘렌카이, 마법 같은 주문의 단어 비형식적 오류 술에 취한 영사가 뻗어내는 관련성 오류 그러나 그저 알코올중독자의 행위라고 하기에 우리의 삶이 아 단어에 갇혀서 절름발이처럼 절뚝거림이 아닐까 했다 심지어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까지 뻗어내는 화산 폭발과 같은 이 논리 오류의 감옥 논점 일탈의 오류, 무관한 결론 이그노래시오 엘렌카이 우리는 서로의 할 말을 그저 땅에서 주운 아무 돌이나 던져내듯 던질 뿐 상대가 생각하는 상대와 관계성이 있는 것을 고르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그저 무책임한 횡포를 계속하고 있지 않은가 그게 그냥 한 순간 한 순간을 단단하게 포장하여 정교한 시간의 구분 속에 넣어둬 결국 인생이라는 단어로 하나의 객체로 구분되도록 그 안에 말아 넣은 게 그런 게 우리이자 내가 아닌가란 질문을 던져보게 하였다 도망치듯 읽었던 텍스트가 고속버스를 타자 나에게 달려온다 차창밖의 풍경이 뒤로 가듯 내 옆 자리의 남자가 콜록거리는 기침을 따라 불편한 안전띠 사이에 배불뚝이처럼 올라온 내 아랫배를 통과하며 죽어간 인디언의 모자에서 훔친 동전을 손에 적나라하게 굴리고 있는 펠라도 pelado 가 생각났다 죽은 자에게서 얻은 돈을 태연하게 손 위에 올리고 있는 그 남자 모자를 두 겹으로 겹치고 누가 봐도 불량해 보이는 행색을 한 그 남자를 멕시코인들은 모른척하고 있다 마치 멕시코의 역사를 멕시코인들이 바라보듯이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현재를 회피한다 이 얼마나 기이한 현상인가 알면서 모른 듯 정말 인지하지 몰라 모른 듯 어찌 되었든 pretending 그런 척 서툰 척 그럴듯하게 다들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자각함을 뒤로 재쳐두고 현실을 느낀다 같은 시공간에서 마치 다른 차원의 삶을 살듯 갈라져 그럼에도 하나의 대중성을 유지하는 행동들 그 행동들이 나에게로도 다가온다 토요일 오후 버스는 막힘없이 달려간다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은 듯 그러다가 톨게이트를 나가다 갑자기 멈춰선다 마치 길 중앙에 누운 죽은 인디언의 사체를 보았듯이 햇살이 쏟아 들어오는 창가 옆 풍경이 눈으로 희다 이 흰 풍광에 속한 추위 속 인디언은 누워있다 그의 손은 어색하게 뭉개져있고 핏자국이 낭자하지 않다 아무도 내리려는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오직 펠라도 그 만이 성큼 거리며 다가간다 그리고는 영사의 일행들 휴 이본이 따라 내린다 인디언의 것으로 보이는 말이 가드레일에 묶여있다 엉덩이에는 7이란 낙인이 찍힌 채로 영하 17도의 추위에 연신 입김이 쏟아져 나온다 저리 두면 말이 죽지 않을까 싶지만 그보다도 인디언이 사실 죽은 상태인지 살아있는 상태인지 조차 구분이 가지 않는다 아니 구분을 하지 않고자 한다 그를 만지는 것만으로도 살인자로 몰릴 수 있다 사람의 목숨보다 더 두려운 것은 죄를 뒤집어쓰는 것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북극에서 내려온 제트기류의 차디찬 바람 손가락을 꽁꽁 얼릴 듯한 추위에 그 누구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아니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어차피 구급차를 불러보았자 의료진의 부족으로 긴급수송의 결과는 실패가 될 것이 자명하다 영사는 인디언을 만지지 말라고 휴와 이본에게 소리친다 그러나 인디언의 모자의 기인한 흔적인 동전은 펠라도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의 손안에 동전을 발견한 영사의 시선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펠라도의 뻔뻔한 극악 무치함이 잘못된 것일까 아닌가 그의 행동은 멕시코를 지키기 위한 정당함으로 가득 차 있는가 후안무치를 후안무치로 대응한다 이이제이 면장무피 인간이길 거부한 앵글로색슨족이 이베로가 점거한 그곳에서 과연 누가 누구의 손목이 깨끗하다고 겨루는 말장난이 모순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인디언의 죽음을 단정 짓고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는 버스 속에서 인디언의 마지막 차디찬 숨을 바라보는 나 또한 펠라도와 무엇이 다를까 버스는 결국 도착지에 당도하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승객들과 함께 내린다 우리는 그 인디언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다 울렁거리며 느껴지는 거리에 보이는 지진의 신호 내 얼굴이 바닥에 납작인 건지 바닥이 나에게로 오는 건지 모르겠는 메스칼의 여파 사실 까르보닉 Carbonic 석회암의 강렬함 탄산의 습습함 그럼에도 느껴지는 깃털 같은 가벼움 납짝복숭아 음료가 생각나는 그런 맛 윌리엄 블랙스톤, 이 되고팠던 제프리 파먼, 인디언 감자를 먹으며 멕시코 원주민을 생각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soft sp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