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왜 나를 쫓아올까

맛동산을 뽑았지 누에고치처럼

by 빙빙

내가 쓴 글을 다시 봐도 또 봐도 읽고 또 읽고 다시 보고 또 보고 소리로 읊조리고 또 읊조리고 다시금 요리조리 보아도 도통 내가 썼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인가 낯설지만 마음에 드는 아이의 장난감 가방 같은 것이 오랜만에 방문한 친구네 집 식탁 옆 옷걸이에 걸려있음을 보고 어디서 났어라고 물어보자 그거 너가 준거잖아라며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동분서주 바쁜 친구가 공간 사이로 흘리듯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내가? 응 네가, 언제? 시연이 두돌 때였나 세돌 때? 그쯤? 시연아 잠깐만 기다려봐라며 작은방으로 사그라드는 음성이 벽모퉁이를 완전히 배회한 것을 느끼며 전혀 도통 기억나지 않는 머릿속을 그만 미로가 아니라 미궁이었음을 인정하고 아 그랬구나라고 수긍한다 그리고는 그러게 기억난다 이제,라고 거짓을 덪붙인다 별 의미성이 없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다시금 반짝이는 보라색의 에나멜 투명 가방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보고는 독특한 금속장식을 돌려 열어도 본다 촉감에 기대어 보는 나는 저어어어어언혀 정말 저어어어어어어어어언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데 보자마자 마음에 들다니 어처구니없는 나의 일관성에 나는 그저 확인사살당했을 뿐이었다 자기 강화학습의 결과를 다시 바라보다 보니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아메리카노에 있던 얼음을 입안에서 굴리며 일보후퇴하고 다시 보니 십수 년 전의 내가 나의 일부에 있긴 하구나 싶긴 하다 그리고 저녁 식사 친구들이 모이니 오랜만에 20대 때 이야기들이 식탁 위로 올라온다 음식을 뒤엎는 추억이란 메뉴의 향연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페이스북 계정으로까지 연결된다 그랬다 그 계정이야기가 갑자기 나왔다 내 옆에 앉아있던 H가 너 아직도 글 써? 그때 너 소설 많이 썼잖아,라며 나에게 맥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그냥 머쓱하게 아니 회사일이 바쁘기도 하고 그냥 그렇네 요즘은 그럴 시간이 없네,라고 여유가 없는 건가?라는 물음표는 가슴에 남기면서 답변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니들은 어때? 졸업하고 글 좀 써? 우리 중 가장 소위 잘 나가는 굵직한 출판사 편집장인 B는 고개를 저으며 야 서평 요청 와야 간신히 쪽잠 자듯 쪼개서 책을 읽는데 무슨 글이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치야 사치,라며 자금성에서 주문한 깐쇼새우 그릇에서 잘 읽은 토실한 새우를 한 점 집어 입안으로 넣으며 말했다 맞아 맞아 애 키워봐 뭔 글이야, 그렇지 나만 그런 게 아니란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그때 G가 갑자기 나는 애 크는 게 무서울 때가 있다 내 허접한 글들을 읽을까 봐 뭘까 그걸로 자신의 아버지를 모두 이해했다고 할까 봐 말이야 근데 또 다 어딘가 완벽하게 숨겨놓고 잠가놓는 건 싫고 나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그냥 회사에서 일하면서 발행된 글들은 그러려니 하는데 누군가가 내 껍데기 속 관자살을 보는 기분이랄까 근데 또 가끔은 누가 봐주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 G는 심지어 SF소설 위주로 썼었다 그것도 중세판타지에 가까운, 다들 웃어넘기며 자연스럽게 B가 요즘 가장 잘 팔린다는 책들 이야기를 하며 술안주거리에 가까운 소재는 전환되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버스 안이다 아직도 연태고량주 향이 거하게 남은 나는 연태고량주에 절여진 인간인가 인간의 형만 가진 알코올꽐라인 나는 버스 안에서 페이스북 계정에 접속해 본다 페북 친구들의 업데이트가 마치 잘 가꾸어진 정원에 와있는 것처럼 형형색색으로 빛나며 다가온다 다들 잘 살고 있구나 안심과 안도 그리고 뭔가 분한 마음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다 그리고 도달한 내 담벼락 마지막 업데이트는 10년도 더 전이었다 나는 남겨진 글들을 읽어 본다 남겨진 글들 분명 내가 쓴 것들일 텐데 이 어색함은 뭘까 마치 비운의 여주인공이 된 듯 이 안개꽃 뭉치 같은 아련함은 어색해서 어설퍼서 그럼에도 감성적이어서 나를 이해받는 느낌이어서 나의 감성이어서 그렇게 온연하게 나를 지지하는 듯한 그 글들은 뭘까 기억의 골짜기들을 돌면서 낭떠러지로 떨어뜨려버렸던 기억나지 않는 물건들을 주어 올린 냥 기억나지 않음이라고 정치인들의 단골멘트처럼 내 스스로에게 단정 짓기에는 너무도 당당하게 내 계정에 있는 그 글이 참으로 우악스러워서 까악까악하고 까마귀 흉내를 내고 싶을 지경이었다 아니다 솔직한 마음은 꿰에에에엑하고 고라니 흉내를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에도 그 손순한 감정이 지금의 내가 갖지 못하는 그 소긴한 감성이 보기 좋아 읽고 또 읽었다 가냘픈 여성의 마음 흔적 그런 것 갑자기 푸하하핫하고 웃음이 터져 나오다 취객으로 몰려 쫓겨날까 두려워 입을 틀어막았다 당시의 나는 아주 튼튼하고 튼실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매일 다이어트를 입에 달지만 집 앞 닭강정집에 한 달에 평균 15번은 주문을 하는 단골 중의 단골로 사장님이 내 취향에 맞춰 양념을 묻혀주시곤 했는데 말이다 정말 우악스러웠던 시절이다 그래 그랬다 그리고는 아침마다 살이 안 빠진다며 다이어트 성공하고 싶다고 친구들에게 터놓으면 친구들이 닭강정만 끊어도 100% 성공할 것이라고 웃으면서 말하는 그냥 그런 시절이었다 아, 짱구 노래방짱구도 꽤나 지분이 있었지 왜 그리 배가 고픈지 걸 근 걸 근 속이 허해서 쉬질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대 나는 페북에서는 가냘픈 무언가로 활동 중이었다 이슬만 마실 것 같은 여인의 컨셉 닭강정에 맥주를 피쳐로 마시던 나는 그 아슬한 이중성에 빠져서 로맨스 소설도 아니고 스릴러도 아닌 애매한 지점의 글들을 뽑아내고 있었다 마치 닭강정 위에 뿌려진 땅콩가루들을 모아서 맛동산을 만들고 있었을지도 그런데 알코올이 내 번연계를 지배해서 그런지 뭐 나쁘지 않다 계속 연이어서 다시 한번 써볼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집에 와서 연 노트북에 쌓여있는 이메일들을 하나씩 확인하다 보니 새벽 1시 오늘 아니지 어제 친구네서 있었던 일들이 모두 아늑하게 멀어져 마치 작년 있었던 일처럼 멀어져 멀어져만 간다 취기가 깨 새벽 산책이나 할까 했지만 잠이나 자기로 한다 내일은 아니 오늘은 또 출근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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