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보는 자

시력이 좋은 누군가의 독백

by 빙빙

꿈을 꾼다 사람들은 그냥 환영을 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꿈을 본다 나는 어릴 때부터 꿈을 보는 자였다 내가 꿈을 보는 자라는 사실을 자각한 것은 20살이 넘어였지만 그전에도 나는 꿈을 기억하고 잠에서 깨어났다 어떤 꿈은 내가 감히 그동안의 삶에서 일어난 모든 일과 소비했던 콘텐츠들을 아무리 합쳐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은 것들이었다 범주를 넘어서는 차원은 그저 그런가 보다 했지만 동일한 꿈을 동일 관점 혹은 다른 관점 즉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을 경험하다 보면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지만 점점 더 정교하게 그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신기하게 그 세계는 존재했다 나는 한동안 20시간씩 잠을 잔 적이 있다 나는 계속 잤고 꿈의 세계에 살았다 사실 나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었는데 꿈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다음이 그다음이 너무 궁금해서가 많았다 고3 때는 학교에 가는 꿈을 꿨는데 기가 막히게 그 세상이 비슷해서 나는 가끔 친구가 꿈에서 한 말을 현실과 혼동해서 기억할 때도 있곤 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계속 꿈을 꾸었고 어느 순간 내가 꿈을 보는 자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건 그러니까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꿈을 꿈이라고 자각한 순간이었다 그냥 꿈속이었는데 매우 현실과 비슷한데 현실이 아니라는 이질감이 강하게 일어났다 내가 준비했던 모든 일이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이건 그냥 꿈이야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라고 스스로에게 말했고 꿈은 그대로 흘러갔지만 나는 감정의 흥분에서 벗어나 관찰자가 되었다 그 뒤 나는 모든 꿈에서 자각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꿈은 정말 변화무쌍해서 내가 상대에게 테이저건을 남발한 순간 내가 테이저건에 맞은 사람에게 들어가 그 큰 고통을 느끼기도 하고 외계인에게 잡혀가 새로운 행성을 개간하기 전 그 행성의 원시생물들을 잡는 떠돌이 헌터로 키워지기도 하고 좀 더 이야길 하자면 인간형 헌터는 거의 없는데 대부분의 헌터들은 몸에 초음속에 가까운 발사체가 탑재되어 있기 때문에 총을 꺼내서 쏘는 작업이 필요한 인간형 헌터는 효율성에서 극도로 떨어졌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인간형 헌터로 대부분의 수입은 책을 써서 얻은 아주 쥐꼬리 같은 인세에 강연비 그리고 가끔 싸구려 우주음료의 광고비 이런 것들이었다 그래도 뭐 입에 풀칠은 할만 했다 나름의 유명세도 있었고 그것도 과거이긴 했지만 그러다 아주 잘못된 행성 음 그렇다 그 표현이 맞다 나는 거길 가면 안 된다 생각하면서도 막대한 사례금에 사로잡혔고 내 팀의 크루들이 다 이전 미션에서 죽은 참에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돈에 사로잡혀 그 행성 고대의 그것이 잠든 곳을 가게 되었다 때론 나는 남한의 공작원으로 북한 간첩을 잡으러 몇 년의 시간을 보내다 드디어 러시아에서 그 간첩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는데 커다란 얼음 산사태가 일어나 건물이 무너져 그 기회를 놓쳤는데 그 산사태가 바로 지구가 멸망하는 징조였다 멸망의 시작점을 피하고자 나는 죽기살기로 러시아를 벗어나 인도로 떠난다 하하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또 이는 어떤가 전제군주에 맞선 레지스탕스의 우두머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전제군주 놈이 내 친남동생이다 과학과 자원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그 녀석의 국가 그 국가는 7세가 되면 사상검증을 통해 사상에 맞지 않는 인간은 모두 즉사시킨다 나는 그에 반대하고자 결국 도망 나와 레지스탕스로 활동하지만 우리는 항상 가난하다 그리고 우둔하고 우리 안에서 우리를 항상 헐뜯는다 우린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단 하나 행운의 아이 그 아이가 우리의 희망이고 그 아이가 태어남을 나도 그리고 내 동생 녀석도 알아 차렸다 이건 또 어떤가 미국의 한 의과대학을 다니는 나는 친구들과 함께 마법의 의식을 통해 무언가를 깨웠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우리의 과제 시험 이런 걸 도와준다 그러나 그 무언가는 평행 세계 속에서 온 누군가였고 그가 속한 세상은 붕괴되어 있었다 그는 그 붕괴된 세계를 재건하고자 우리 세계를 그들의 세계로 전환시키고자 오게 된 것이었다 어느 날은 나는 지구에 온 외계인이었다 지구를 차지하고자 하는 외계인을 저지하고자 나는 지구의 어머니인 가이야에 접속한다 그 순간 세상은 마치 나니야 연대기와 식스센스를 섞은 듯한 세계로 바뀌고 나는 나의 자아마저 잊어버린다 그렇다 나는 꿈을 보는 자이다 아주 오래 전의 아랍의 한 여자이기도 했다가 아주 멀지 않은 미래의 인간과 기계의 결합체로 실험당하기도 하고 평범한 40대 가장이기도 하고 전쟁통의 고아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꿈을 자각한 날처럼 어느 날 내가 본 꿈이 어딘가에 있는 무언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접속을 한다고 이해했다 어딘가에 잠시 접속했다가 돌아오는 과정 그걸 보는 사람 그게 나였다 나의 여행에는 두 가지의 규칙이 있다 하나는 그 공간의 어느 것도 입안으로 넣으면 안 된다고 다른 하나는 꿈의 스토리에 간섭하고자 내 의지로 말하기 시작하면 꿈은 마치 타르처럼 나를 끈덕하게 만들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나는 이 규칙 특히 첫 번째 규칙은 중학생 때 깨달았는데 무언가를 먹으면 몸이 아팠다 규칙을 깨닫고는 어찌 되었든 꿈이란 것을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기에 먹을 순간이 오면 거부했다 가끔은 그 또한 어려워 먹을 때도 있지만 되도록 먹는 행위는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두 번째 규칙은 꽤나 큰 성인이 된 이후에 깨달았는데 지금 나의 자아로 꿈속에서 간섭을 하기 시작하면 꿈의 세계가 나를 내보내려 한다 그러면 꿈은 갑자기 진행되지 않는다 그리고 잠에서 깨게 된다 그래서 꿈은 그저 보아야만 한다 오랜 시간 꿈을 보는 나는 첫 번째에 대한 가설을 세워봤는데 내 가설은 그곳의 에너지를 흡수하면 이곳의 나에게 분명한 대미지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 규칙을 잘 지키면 나는 꽤나 흥미롭고 재밌는 세계들을 많이 돌아다닐 수 있다 너무나 현실에 가까운 꿈들은 마치 지금의 현실과 약간의 변경이 있어서 다중우주론을 믿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꿈을 해석하는지가 궁금할지도 모른다 나는 꿈을 해석하지는 않는다 그냥 본 것 중 재미있었던 것은 적어둔다 재미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가끔은 인상을 주는 듯한 꿈들이 있다 그런 꿈들은 가끔 태몽일 때도 있고 돌아가신 분의 혼을 풀어줘야 하는구나 그분의 삶을 기려야 하는구나 하는 때도 있다 그냥 그렇다 마음에 와닿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꿈에 큰 이유를 나는 붙이지 않는다 꿈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그 또한 새로운 객체가 되어 스스로 살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불필요한 업을 만들어 둘 필요는 없다 가볍게 그냥 즐기면 된다 그리고 꿈은 그만큼 재밌다 그 어떤 영화보다도 현실감이 강하면서 하나의 꿈에서 한 인생의 모든 세월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압축적이면서 강력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나는 꿈에서 냄새도 맡을 정도니까 기분 나쁜 냄새 습도 온몸을 쭈뼛하게 만드는 본능적 감각들 그 모든 것이 꿈에서 제공된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본다 보다는 겪는다에 가까울 지도 모르지만 그건 일인칭일 때만이다 나는 삼인칭 관찰자로 참여하기도 한다 배경 속 나무일지도 큽 그럴지도 모른다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문득 낮에도 꿈을 꾼다 아니 역시나 나는 본다 갑작스레 내 대뇌에 쏟아부어지는 그 느낌 나는 본다 그걸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은 일정 기간 뒤면 알게 된다 낮에 보는 꿈은 현실이 된다 물론 가끔은 밤에 꾼 꿈 중에서도 몇몇 가지는 현실이 되곤 한다 하지만 낮에 꾸는 꿈은 100%에 가깝게 현실화가 된다 내가 초능력자로 보이는가 풉 전혀 아니다 낮에 보는 꿈은 거의 그저 30초 정도의 시간의 흐름만 보이고 언제인지 어디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지인과 커피를 마시며 웃는다 뭐 이런 것이다 전혀 인생에 변화는 없다 그저 그 순간이 오면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말이다 그리고는 아 그게 지금이었구나 이렇게 속으로 외치는 것 밖에 없다 정말 별게 없어서 미안할 정도다 그럼 꿈을 보는 자인 나는 뭐냐고 그냥 나는 나다 나는 너이기도 너의 옆에 있는 그 자이기도 너가 어제 길에서 지나가던 누군가이기도 혹은 내일 너가 만날 누군가이기도 하다 왜냐면 그게 꿈을 보는 자이다 꿈을 보는 자는 독특한 누군가가 아니다 그저 우리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일부를 좀 더 잘 느끼는 그러니까 단지 시력이 2.0인 몽골인과 같은 것이다 그냥 그런 우리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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