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로부터의 사념

그냥 나오는 라디오 소리

by 빙빙

고양이 그래요 고양이가 문제였어요 고양이 한 마리가 모든 것을 뒤흔들었죠 우주 전체를 믹서기에 넣어서 갈아버린 그래서 원래의 흔적을 지워버렸고 정말 그렇게 되었죠 그들의? 흠 그 단어가 적정한지는 확신은 없지만 그것들은 그렇게 정말 해버렸죠 하나 둘 그런 작은 개체의 수준이 아니에요 앞전에도 이야기드렸지만 전 우주 차원의 변화였죠 그 이전의 세계와 그 이후의 세계가 구분될 정도로요 하지만 더 재미있는 건 뭔지 아세요? 그걸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는 거예요 물론 그걸 모른다고 인간의 삶이 아주 못생긴 양배추 인형처럼 찍혀 나오는 것 또한 아니죠 아무 일도 없을 정도로 미미한 변화량이 될 수도 있지만 그건 집단 지성계의 큰 획이었어요 그럼에도 모두가 인지하지 못했다는 게 신기하신가요? 왜 많은 사람들이 나는 자연이다를 그렇게 즐기는지는 이해가 되세요? 그런 관점이에요 그렇지만 자연에 사는 그도 분명 느낄 수 있었죠 그건 또 그런 관점이기도 해요 모두가 알 수도 있지만 일부도 알 수 있는 그런 것이죠 무슨 대단한 비밀도 아니에요 인간이 이 지구에 등장하기 전부터 있었던 그냥 그런 법칙? 정책? 그런 것 중 하나였으니까요 그저 인간의 인지 범주 안에 그 고양이가 들어왔을 뿐이죠 그리고 그 결과가 예상치 못한 급변하는 변곡점을 만들었을 뿐이고요 그럼에도 제가 이 부분을 이 고양이를 다시금 끌어들이는 이유는, 맞아요 퀘퀘한 논쟁일뿐더러 이미 다 끝난 쉬어터진 의제를 가져왔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럼 코기토에 왜 그리 집착을 해왔나요 저는 그저 당당하게 코기토를 반복 논의하는 철학자들에게서 차용해 왔을 뿐이에요 쉬어터진 이 고양이 의제를 가져온 것이 그닥 이상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드리려는 것뿐이죠 그리고 고양이라 펠리세트 그 이름을 아나요? 당신이 아는 펠리세이드가 아녜요 펠리세트는 고양이의 이름이죠 우주에 간 최초의 고양이 오 물론 고양이는 스푸트니크 2호 탑승자인 라이카와는 다르게 지구에 잘 돌아왔답니다 그 뒤의 삶이 아름답진 않았지만 길냥이 었던 펠리세트는 펠리세트라는 이름을 얻었죠 인간의 세계에서의 명명의 힘은 모두가 알 거예요 그리하여 여러분도 저도 이제 그 고양이와 접점을 이루게 되었죠 무튼 제가 이야기하는 고양이는 그 고양이가 아니에요 락페스티벌에 긱한 안경을 쓴 남자가 입고 있는 바로 그 티셔츠의 뒤판에 그려진 네 맞아요 그 고양이죠 슈뢰딩거의 고양이 맞아요 그 고양이입니다 아이러니하게 슈뢰딩거는 그 고양이를 생각해 내었음에도 본인의 사고 실험의 결과가 더 큰 오해를 낳을 것이란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죠 누군가가 말해요 양자역학은 이해의 영역이 아닌 받아들임이라고요 흠 그래요 맞아요 그리고 혹자들은 아니 그건 우리의 사회에 적용가능해라고 말해요 그건 여기 이곳에 있어요라고 말하면서 말여요 오 물론 그래요 decoherence 때문에 우리가 모를 뿐이죠 하지만 20세기 철학 사조들은 직접적 언급이 없었음에도 그 사실을 고전철학을 받아들인 것처럼 교묘하게 짜깁기 하며 오려두어서 스크래핑을 해두었죠 그들은 갇힌 벽안에 머리를 박는 파리와 다름없이 그 벽을 점점 더 좁혀갔어요 관계가 존재를 만든다는 관점으로 까지 말이죠 오 물론 이런 관점은 고전 철학에도 있던 이야기여요 하지만 존재는 관계 속에서만 실현된다로 까지 화이트헤드는 나갔어요 들뢰즈는 어떤가요? 물론 들뢰즈는 그 벽을 해체하고자 했지만 Becoming과 manifold는 어색한 듯 얼굴을 붉히듯 양자역학의 superposition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죠 오 낭시의 being-with는 entanglement와 동시성을 가진다고 볼 수도 있고요 여기에 더해 캐런 바라드는 agential realism을 통해 존재는 행위 속에서만 드러나며 관측자-피관측자 구분의 해체를 도모했죠 관여적 작용에 파고들어 형이상학에 윤리적 책임을 강조했어요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부질없음이 드러나죠 왜냐면 양자적 중첩은 미시세계에서는 허용되는 물리법칙이기 때문이에요 결국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거시세계에 사는 우리에게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인 거죠 오 맞아요 퀀텀컴퓨팅은 decoherence를 제거하여 cubit 사이즈를 늘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그러나 저의 논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지하고 인식하는 세계를 의미해요 그러하기에 아마도 그래서 슈뢰딩거도 아인슈타인도 이 코펜하겐 학파의 주창을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거시물리학의 세계는 현재까지 두 가지만 존재해요 뉴턴이냐 아인슈타인이냐 고전물리냐 상대성이론에 기반한 현대물리냐 그러하기에 중첩 상황이 관측 이후 결정된다는 그 상황 자체를 우리가 스스로 확인할 수 없어요 이미 잘 아시다시피 실험실의 기계도 관측자에 속해요 이 세계에는 관측되지 않는 것이 없죠 그러하기에 그 규칙은 미시세계에만 허용되는 거예요 그것도 실험과학의 범주하에서요 그걸 거시세계로 끌고 들어와 마치 누군가가 관측한 어떠한 행동 기반의 관계성이 없으면 존재의 당위성이 없다는 듯이 표현하면 매우 흠 어렵죠 그건 아무리 소극적으로 동조하려고 해도 동조하기 어려워요 퀑탱 메이야수가 지적했듯이 상관주의 기반의 철학 사조는 절대적인 과학의 결과인 지구가 이미 아주 오래전 생성되었다를 표현할 수 없거든요 그게 우리가 알고 있던 우리 지성의 finity라도 말여요 그러하기에 그 고양이를 뿅 하고 소환해서 눈앞에서 살지도 죽지도 않은 상태로 고려할 수 없어요 우리의 세상은 살았다 죽었다 하나만이 가능하니까요 물론 확률적 분포 속에서 cuasation을 따라 살 수도 죽을 수도 있지만 그건 그저 우리가 미래를 모를 뿐이에요 인지적 부족을 중첩과 헷갈리면 안돼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그 고양이는 산다 혹은 죽는다 to be or not to be에 갇혀있죠 그러나 팽배해져버진 이러한 relationism이 무엇을 만들었냐라고 한다면 내가 모르는 것은 그냥 없는 것이다라고 단순하게 확언해 버렸죠 신은 없다는 비호 속에서요 그렇게 세상은 단순하게 닫혀버렸어요 멀리 가지 않아도 푸코는 말에 가두어버렸죠 그렇게 우리의 세계는 언어에 달라붙어 확장이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렸죠 과연 그 언어와 폭력적 절대 권력이 이 모든 것을 표현하기에 적정할까요 실험실 기계도 관측자가 되는 이 세계에서 말이 어떻게 모든 사고의 겹층을 표현할까요 오 물론 그 해석은 꽤나 정확해요 단 한 가지 그 너머의 사건들을 아웃라이어로 뒤뜰에 compling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리고 사람들이 이러한 인지적 중첩과 물리적 중첩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갖도록 철학자들은 돕고 더욱더 존재의 상태를 아래로 아래로 환원시켜 우리는 한 줌의 모래알이 되어버렸어요 이제 아름다움을 벗어던지고 그저 탄소 원자들의 합이 되어버렸죠 르네상스 그래요 인간 중심이 필요할지도 몰라요 AI가 인간 보다 더 중과 정을 이해하는 이 세계에서는 듄에서 일어났던 그런 혁명적 사건이 필요할 지도요 하지만 인간중심의 반작용은 항상 인간에게 돌아오죠 업보라는 이름으로요 왜냐면 인간은 그저 대양의 한 파도의 방울일 뿐이거든요 그러나 우리도 바다에 속해요 그걸 생각해야죠 심해와 파도가 부서지는 표면이 하나라는 것 그것을 이해해야 하죠 관계 관계 그리고 그 사이사이의 네트워크들 네트워크가 만든 결과물이라는 존재에서 벗어나 그 이면을 좀 더 이럴 땐 사변적 존재론을 바라봐도 좋아요 하지만 그 또 한의 한계는 존재하죠 그럼에도 사변적 존재론이 꽤나 훌륭한 이유는 제1성질을 되찾아왔기 때문일 거예요 루크가 주창한 원론적 성질을 인간에게 다시금 되찾게 도와주었죠 캐캐묵은 코기토가 죽지도 않고 살아 돌아온 것처럼 그것은 기적에 가까웠어요 인간은 다시금 권리를 가져왔죠 하지만 보세요 지표면이 70도가 넘어가고 날아가던 새가 더위에 떨어지는 세상이 되었어요 존재의 도를 넘어서 이제 그 어떤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비극처럼 벌어지고 있어요 이 와중에 그 어떤 것도 나의 윤리적 책임이 아니라고 할 텐가요? 맞아요 이러한 복잡계 속의 사건에 윤리를 가져다 붙이는 건 사회운동가나 하는 짓이에요 하지만 다시금 생각해 본다면 과연 정말 아무 연관성이 없을까요 낙관적으로 이 또한 있어야만 하는 지구 정화의 과정 중 하나라고 봐야 할까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의 실천은 더 거대한 대양을 움직이는 파도에 묻히더라도 그 실천이 시작점이 된다는 건 알고 있어요 고양이에 묶여 바로 내 주변만 아주 작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편했죠 맞아요 그건 정말 편리해요 하지만 이젠 그 조차도 걷어차여져야 하는 시대인 거죠 그래요 그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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