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취비취취

술자리의 재귀적 필연성

by 빙빙

어느 날인가 아닌가 어느 때였나 기억나지도 않는 어느 시점 이후부터 나는 술자리에서 있었던 말 행동 그런 것들에 그닥 신경 쓰지 않기 시작했다 내 주변인들도 그냥 그렇다 물론 우리도 어머 왜 그랬을까 진짜 이상하다 넌 괜찮아 등등 감성의 파도타기와 가끔은 반짝이는 재치의 아름다움 뒤에 근데 왜 그랬니 쟤는 왜 저러니 도대체 항상 왜 그따구니 등등의 쏜살같이 쏘아붙이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사실 말은 그렇지 그 시절 번데기같이 주름이 많던 그 시절의 우리는 서로 하고 싶은 말만 했다 그래서 뭐라고 해도 또 뭐 굳이 크게 상처받지 않았, 아 아니다 사실 상처받았다 많이 받았네 그땐 또 그런 사소한 것에 왜 그리 집착했는지 별것 아닌 말 한마디 그것도 지나가며 투욱하고 나온 단어 하나에 상처를 받았다 사실 그런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확대해석과 난독오류를 합리적 이성이라는 비호하에 내걸고 술잔을 마주치며 공격과 방어의 합을 맞추듯이 풀어내고는 상처받은 마음을 서로 끓어 안고 하루고 이틀이고 그 어색한 분위기가 풀릴 때까지 그 장면 내 입을 꿰매고 싶은 아니면 상대의 입을 꿰매고 싶은 그 장면을 돌리고 돌리고 멈춤 버튼이 사라진 비디오 기계 앞에 앉은 사람처럼 계속 돌리고 돌리고 계속 봤었다 후 그랬다 그랬지 싶다 잊어버린 과거의 우리는 서툴었던 우리는 더 강렬했구나 에너지가 있었구나 그래그래 그때는 더 했구나 그래 더하면 더 했지 매일 싸우고 또 화해하고 그럼에도 소외받기 싫어 고독과 외로움이 무서워 잘 보이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상대에게 맞추려고 노력하고 어느 날 저녁이라도 휴대전화가 울리지 않거나 누군가가 부르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진 듯했다 그래서 그렇게 부단히도 나를 삼키고 맞추다가 한 번 맘이 상하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쏘아붙이고 왜 나만큼 너는 나를 안대해 주는 거야라고 크게 응애거렸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이 되는 그런 시절이었다 어렸고 흠 그래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의 나는 어렸다 그저 몸집이 큰 아이였지만 그래 얼집 다니던 그 시절의 나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난 성인이라 생각하는 그런 시절이었다 거기에 술이 주는 자유와 속박이란 매일 아침 머리를 부여잡으며 깨고는 오늘은 내가 마시나 봐라 하지만 오후 4시가 되면 오늘은 무슨 안주를 먹을까를 고민하는 나는 알콜에 절여진 자두청이었을지도 그래서 술에 절여지면 그나마 나의 새콤함이 감춰진다 생각해서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술을 마시면 뭐 다 똑같다 기분이 살짝 좋아지고 수다스러워지고 그러다 더 마시면 우주를 뚫고 나갈 듯 자아가 미쉐린타이어의 마스코트를 닮은 고스트버스터즈의 그 유령처럼 커진다 커진 자아는 인간 따위가 눈에 채일 스케일이 아니다 이제는 그냥 우당탕탕 신나게 달린다 누군가가 가지고 다니는 뮤온트랙을 본 순간 더 흉폭해져서 날뛰기 시작한다 그래서 적당히가 좋다 적당히 불필요한 감정을 신나게 마치 소금산 출렁다리를 양끝에서 흔들듯 위아래로 높게높게 낮게낮게 흔들거리게 만들고 나면 결국 그 감당은 다음날 아침 두통으로 직결된다 그리고 미안해 얘들아 내가 요즘 너무 스트레스 많이 받았나 봐 안 해도 될 말을 너무 많이 했어 미안해,라는 문자와 함께 말이다 사실 그냥 안 하면 될 일인데 말이다 굳이 술을 마시고 불필요하게 그렇게 된다 그랬다 결국 자두청에 가려진 설익은 자두가 더 폭발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는 그냥 이걸 받아들인다 들였다? 그렇다 그냥 그렇구나 술자리의 안주 중 하나구나 마치 테니스를 치러 가서 랠리가 안 되는 날이 있듯이 뭐 그런 거구나 아닌가 아니지 테니스공 그래 그래 그거다 테스트공 술자리의 필수 등장 요소 그런 거 그냥 술자리면 늘상 있을 수 있는 것 그것으로 귀결시켰다 그건 우리의 잘못이 아닌 알콜이 후두려팬 전두엽 소실의 시대의 여파일 뿐이다 그리고 사실 술자리니까 할 수 있는 것 개같은 소리 어처구니없는 낱장부림 우리가 어디서 여기가 아니면 어디 가서 그런 걸 할 수 있을까 우리니까 여기 안에서 마치 황새치 보호구역처럼 이 안에서나 할 수 있는 거지 싶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언어라는 매개체를 앞에 두고 평소라면 입 밖으로 끌어낼 수 없는 것들을 끌어내고 쏟아 뱉는다 그리고 서로 갑론을박하다 우격다짐으로 간다 가끔 진짜 전봇대랑 싸우기도 해서 무릎에 금이 가는 놈도 있지만, 그리고 다음날 만나 또 시작한다 마지막 두 명이 하나가 될 때까지 계속하겠지

작가의 이전글고양이로부터의 사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