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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시계를 따른 흐름 속 사고

by 빙빙

르 블랑은 『캉길렘과 인간의 삶』에서 기관학적 사상의 궤적을 베르그송에서 시작해 라피트Jacques Latfite와 캉길렘을 거쳐 시몽동에 이르며 “생물학적 문화철학이라는 사건 그리고 생물학적 인류학의 정교화와 호응하는 것”으로 식별할 것을 제안한다


과연 이것이 타당한 것일까? 이렇게 읽어도 되는 것일까? 그냥 받아들임 밖에 없는 것일까? 철학책을 읽는다 그런 나를 바라본다 그 어떤 비판도 없이 그 텍스트를 읽어 들이는 나는 암기를 하기를 원하는 것일까 아마 암기왕이 되기를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닌가 철학책을 읽는 내가 그저 좋은 것일지도 그런 나의 모습을 제3자의 관점에서 즐기고 있을지도 마치 영화 스크린 속 등장인물이 오래된 도서관에서 얕은 빛의 찰랑임을 받아들이며 먼지를 뿌리며 책을 한 장 넘기는 그 느릿하면서도 찰나와 같은 순간을 귀뒤에 놓인 연필 끝의 지우개에 포커싱하며 그리고 다시금 집중하는 나의 눈 그리고 뾰족스럽게 뾰로퉁하는 입술 그 장면을 보고자 나는 그렇게 읽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명과 생명의 개념의 차이를 그렇게 즉자적 대자적 시각으로 포장하며 즐기는 나는 내 손 위의 연필을 마치 땅콩처럼 느끼며 그렇게 흔들어본다 삐죽 나오는 입술이 여간 들어가지 않는다 읽고 다시 읽고 또 읽고 이 문장을 여러 번 읽어본다 결국 그냥 넘어갔다가 와인 한잔을 하고 갑자기 바라본 시계 2:55 노려보고 싶은 감정적 동요로 바라보는 디지털시계 넘어갈 듯 넘어가지 않는 다음 숫자로의 기다림 갑자기 시간이 우웅하고 늘어지는 듯한 순간 초조하지는 않으면서도 6이란 숫자가 오리란 건 자명하면서도 마치 그 시간이 다가오지 않을 듯 길고 긴 심연의 연장 영혼이 치킨수프 속에 푸욱 가라앉는 당근 조각처럼 노곤하게 늘어져 푹 삶아져 빠져 내려갔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의한 수프국물의 순환에 따라 올라간다 딸각 5가 6으로 바뀐다 그렇게 삼일 만에 마음의 꺼림칙함에 넘어간 그 페이지들을 다시금 돌려봐야겠다는 굳은 마음이 든다 카페에 들러 다시금 열어서 읽어본다 생물학적 문화철학 생물학적 인류학 생물학적 생물학적 생물학적 기관학 사상의 궤적 라피트 시몽동 캉길렘 캉길렘 캉길렘 베르그송 생물학적 생물학 생물학 생물 생명 생명체 생명체라 생명 vie 생명은 생의 아우성이다 그리고 눈에 띈 내가 사로잡힌 문장이 적힌 페이지의 쪽수 255 느릿하게 다시 커피 빨대를 입 앞으로 가져다 대어 커피를 빨아드려 입안으로 분사한다 느릿하다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운 나 vie 그랬나 르 블랑의 제안이 어색한 그것은 오직 그 흐름에 프랑스적 연결성이 가득했나 다시금 생각한다


베르그송에서 라피트, 캉길렘, 시몽동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서는 삶과 규범, 기술이 얽히며 응축되어 섬세하지만 확실한 윤리적 맥박을 형성한다 그러나 유럽 전체적 시각으로 보자면 이 응축이 해산되며 펼쳐진다 라캉적 주체는 결핍과 욕망으로 찢기며 독일의 Scheler, Plessner, Gehlen 전통에서는 인간의 결핍과 기관·제도의 보충이 삶의 구조를 조형하고 영국의 Spencer, Haldane, Huxley 계보에서는 진화와 유기체적 사유, 사회적 조직이 생명의 분산적 이해를 드러낸다


결국 생명학과 진화학적 연결성을 라캉을 소환하여 연결해 본다 이러면 좀 나을까? 다시 한번 읽어본다 원문을 그게 더 담백하다 이제는 뭔가 더 지저분해졌다 단단함이 흩어지고 복잡성만 불필요하게 늘어져서 세 달 넘게 쓰다 버려지기 전의 머리끈 같다 다시금 생각한다 그 순간 255가 탁 256으로 변경되는 그 순간 그 순간이 나에게 알리려고 노력한 그 상황 모든 것이 변하지 않은 듯 미묘하게 변해버린 그 순간 변한 것이 무엇이지 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두리번거리지만 허탕이다 256 다시금 생각한다 2의 8승 2의 8승과 기관학이라 기관과 전체와 개별 8과 2 16 16페이지로 가본다 칸트의 반성적 비판 철학함과 유기적인 것 판단력 비판의 255페이지로 훌쩍 그 어떤 도약의 저항도 느끼지 않고 넘어가본다 상징적 표상방식은 직관적 표상방식의 일종에 지나지 않는다 직관적 표상방식은 도식적 직관방식과 상징적 직관방식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일방적 표상 직관적 표상 미 알레고리 이 흐름이 그레이엄 하먼으로 흐르지 않으라는 법은 이제 더 이상 없어진다 객체의 자율성과 비환원적 실재 withdrawn being 환원이 없는 그 순간 나는 나다 다층으로 나뉘어 마치 다중 우주에 펼쳐져있던 것 같던 기관들이 매개하는 모든 흐름이 멈추는 그곳 모든 심연의 그 끝이자 시작 나의 중심이 빛나며 객체화되었던 내가 다시 수복된다 다시금 시계는 2:55 아직 시간은 지나지 않았지만 2:56이 오는 것은 확정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그 순간 존재적 자립성을 수복해 오자 다시금 그 글이 생물학적 인류학의 정교화의 호응 그 호응 corresponding이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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