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적 플레이의 순환
하나 길들여지지 않은 가죽부츠는 내 뒤꿈치를 아그작 아그작 깨문다 그러나 나는 그에 대해 그 어떤 핑계도 댈 수 없다 일 년에 두어 번 꺼내 신는 그 신발이 나에게 익숙해졌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자 오지랖에 가까운 망상이다 둘 처음이 어렵지 관성을 얻은 추진체가 계속 나아가려고 하는데 막힘이 없듯이 시간은 그렇게 흐른다 처음 회사를 옮기고 일 년이 가장 길고 어려울 뿐 그 뒤의 시간들은 그저 시계가 다음초를 가르키고자 움직이듯 스스로 흘러간다 그리하여 어느 날 갑자기 지난 시간을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날에 섬뜩하게 등장한다 셋 목공용 풀의 냄새가 임시로 사용할 가구에서 그득하게 난다 언제 나에게 학습되었는지 모르게 아니 아마 초등학교 미술시간? 아닌가 그 더 전인가? 기억을 거슬러 갈 수 없는 순간 나에게 인식된 그 향이 있다 비슷하게 중국집 도마냄새가 있다 언제 인식하지 못한 그 향 그리고 또 비슷하게 밭 옆에 딸린 농막에서만 나는 곰팡이와 농약향이 섞인 향이 있다 의미 없이 내가 싫어하는 그런 향 넷 아래로 아래로 가지를 늘어뜰이는 나무들이 있다 수양버들 수양단풍 마치 중력을 거스른 분수처럼 하늘로 하늘로 태양을 향해 오르는 다른 식물들과 달리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가지들을 드리우는 나무들이 있다 그런데 태생이 그러하지 않음에도 아래로 가지를 늘어뜨리는 배나무가 복숭아나무가 있다 인간의 상품군으로 아니지 소비객체들의 상품으로 빠르고 효율적으로 전환되기 위함이지 바짝 매 잡아서 아래로 원래의 흐름을 거스른 그 나무들은 과수원이란 군집 속에서 겨울이면 마치 좀비나무라는 상상력을 자극하곤 한다 다섯 편의점에 들려 과자를 한 봉 산다 그리고는 바로 뜯어서 길을 걸으며 먹는다 저 멀리 하교하는 학생들이 나와 같이 과자를 먹으며 내 쪽으로 다가온다 우리들은 왜 그런지 왼손에 봉지를 들고 오른손으로 과자를 집어 먹고는 부스러기를 털어낸다 마치 누군가가 가르친 것 같이 그렇게 동일한 움직임을 각자 만들어낸다 그리곤 서로를 힐끔 본다 우리의 과자 취향은 맞진 않지만 행위의 규격에서 우리는 데칼코마니 마치 도플갱어다 서로를 바라본 순간 저주에 묶이는 도플갱어와 같이 다시금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지 않은 채 지나간다 입안에 있던 스낵을 침으로 녹이며 천천히 그들을 지나치며 꿀꺽 넘긴다 이건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규율이다 호흡을 길게 하며 쉬잇 여섯 저녁 근처는 매우 새벽 같을 때가 있다 이유를 찾자면 동과 서 어디가 되었든 치우친 해로 인한 어스름도 한몫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새의 지저귐이다 아침처럼 저녁 무렵에도 새들은 강렬하게 지저귄다 그 새소리에 아침이 밝아오는 듯 동트는 듯한 그 인상적 감정 일어나라고 나를 부르는 듯한 그 소리가 있다 저녁을 아침으로 둔갑시키는 소리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축축함 습기 습도가 있다 아침과 저녁의 차이를 나는 구분하지 못하고 그저 아침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리하여 금요일 오후 반차를 쓰고 집에 와 약을 먹고는 쓰러져 꼬박 하루를 자고 일어난 어느 날 당연히 아침일 거라 생각한 그 시간이 창문을 활짝 열고도 나는 아침이라 믿은 어리석은 내가 있다 일곱 아이폰 메모장을 내리고 내려 그다지 멀지도 않은 과거 두 달 전에 적은 일기를 읽는다 나는 읽으면서도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놀라며 기억이 즉각 떠오르지를 않는다 기억의 실타래를 더듬고 더듬어야만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하지만 사실 세부 내용은 바람 앞의 모래처럼 날아간 상태이다 글이 아니라면 남아있지도 않을 그런 기억이다 사실 사진도 뭐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이폰의 갤러리 속 사진을 보고 보고 또 보다가 생긴 기억의 가지가 있을 뿐이다 그걸 기억이라고 부를 만한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만들어낸 거니까 내 기억이라고 명명은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여덟 가을이 오는 그 시점이 되면 복숭아가 하나 둘 등장한다 나는 황도를 좋아하는데 아닌가 백도를 좋아하나 사실 둘 다 좋아하나 하여튼 나는 여름의 끝을 맞이하는 그 과일을 여름밤의 여왕 같은 옥수수와 같이 먹곤 했다 그래 황도다 나는 황도를 좋아했다 물이 그득 배어 나오는 황도 그 황도가 지금 내 냉장고 가장 아래 신선칸에 종이 포장지에 잘 쌓여져 비통한 앞날을 대기 중이다 아홉 설거지는 이롭다 그릇들과 함께하는 물장난과 같은 설거지라는 행위는 꽤 즐겁다 무언가를 만드는 순간들도 좋지만 깨끗이 하여 다시금 원래대로 만드는 과정 뽀드득 그 느낌도 좋고 특히 기름기가 사라지는 과정은 꽤나 근사하다 물기를 다 빼고 다시금 찬장에 그릇들을 넣는 순간은 가장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다 별것도 아닌 아주 일상적인 것들로 가득 차는 일상들의 흐름 내 눈에 익숙한 환경들의 연속이 그냥 좋지도 싫지도 않은 삶의 흐름 인생일지도 모른다 열 오늘의 시작과 끝을 1이라는 숫자로 맞추고 싶어서 하나부터 열을 세었다 하나부터 열을 세며 걸음을 걸으면 꼭 열하나를 다시금 하나로 세곤 한다 되돌이 같은 걸음을 반복한다 그리 대단치 않더라도 또 반복하고 반복한다 지루하고 지루하다 지겨움이 그 안에 있다 그러나 이 지겨움을 벗어날 필요가 있나 또 싶다 하나에서 열 그리고 다시 하나에서 열 열에서 하나 하나부터 열 열 그리고 다시금 하나 열하나로 가지 못하는 막힘 그러나 그건 숨막힘이 아닌 숨하나 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