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ight as day

그냥 그런 밤

by 빙빙

우수에 걸린 달이 우수수수 떨어지듯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에 걸려있다 코코넛오일을 넣어 달짝지근한 망고밥에 고춧가루를 뿌린 뒤 한입 가득 그득하게 입안으로 넣는다 맵다맵다 콧물이 주륵 나의 의식의 관여 없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의 전원을 켠다 휴대폰과 연결되었다는 음성이 나온다 디멘시아의 노래를 듣는다 Great Escape 전기포트에 물을 올린다 잠시 후 타닥 물이 다 끓었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미리 뜯어놓은 티백 위로 끓인 물을 적셔내린다 꿀배차다 매콤한 내 입술과 위장을 달랠 반의 반만큼만 수줍게 나타난 달에게 어울리는 차다 꿀배의 달콤한 향을 코로 마셔본다 그리곤 입안에 퍼져버린 꿀배향을 뒤로하고 삼킨다 눈꼭 감고 기분 좋은 따뜻함을 목구멍에서 느껴본다 바닥에 퍼져버린 슬라임처럼 매트리스 위에 터억 눕는다 그리고는 다리를 위로 올렸다 내렸다 휘휘 저어도 본다 자전거 타듯 돌리다가 좀 더 본격적으로 등을 들어 올려본다 it kills me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책을 집어 올린다 코발트블루보다는 채도가 낮은 그 책의 78 페이지를 열어본다 Technology and the Limit of Comparative Studies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바로 책을 닫는다 그러나 소심한 나는 감히 한 번에 다 닫지 못하고 책을 편채로 베개 옆에 책표지가 위로 올라오도록 덮어 놓는다 배가 그득하다 과감하게 남은 차를 한 번에 위장으로 밀어 넣는다 망고망고와 꿀배꿀배의 만남이라니 의외로 꽤나 근사한 조합일지도 모른다 갑자기 발톱이 눈에 거슬린다 발가락을 벌려도 보고 오므려도 본다 맘에 들지 않는다 발딱 일어나 발톱깍이를 서랍에서 꺼내온다 램프를 끄고 LED등을 켠다 발톱을 하나하나 짧게 자른다 나와 하나였던 단 몇 초 전에만 하더라도 나였던 것들이 이제는 바닥에 널부러져 놓여있다 갑자기 미안함이 느껴지다가 또 반대로 잘려진 발톱들은 나와의 이별에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에서 잘 모아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시금 매트리스 위에 쓰러진다 왼쪽으로 뒹구르르 오른쪽으로 뒹구르르 뒹굴뒹굴 거려본다 배가 사르륵 아파온다 머리맡에 덮어두었던 책으로 다시금 손길이 간다 이번에는 105쪽을 열어본다 I may not be a good German, but I am a good European. German과 Germany 사이에서 얼마나 반복적으로 나는 틀렸는지 모른다 형용사와 명사 사이에 서성거리는 나는 망할 오류에 학습되어서 에러머신이 되었었다 그래 그러고 보면 항상 나란 인간의 삶은 false positive일지도 Under shade 그래서 이 향이 내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다 폐부 깊이 들어오는 iris로 시작하여 cedarwood로 끝나는 향 나도 모르게 덜컥 사버린 이 향은 마음에 든다 disappear의 피아노 반주와 잘 어울린다 배에서 고륵고르륵 물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내장과 가까워지는 듯한 가까움 밸브 속이 보이지 않아도 나를 깨우는 느낌 푸르른 앨범 커버가 마치 내가 내팽겨처버린 책의 표지색과 비슷하게 질려버린 얼굴로 보일 때 다시금 삼나무 향과 같은 향이 가슴 깊이 들어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눈이 조금씩 감긴다 Who Am I 그런 고민을 하기에 시간은 10:53 깊지도 낮지도 않은 어둠을 헤맨다 몽롱한 듯 멍청한듯한 내 두 눈은 감기듯 다시 열리고 열리듯 다시 감긴다 달은 구름 속에 가려졌을까 궁금하다 하지만 그 궁금함보다 더 궁금한 것은 과연 나는 뭘까 나는 무엇을 생각할까 생각이 생각을 멈추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는 일어나 컵을 주방에 옮긴다 달은 수줍은 게 아니라 피한 것일지도 모른다 턱 11시를 알리는 시계의 기계식 태엽 소리가 들린다 자야 하는데 잠이 오지 않는 밤 책을 읽고 싶지만 책이 눈에 아니 손에 안 잡히는 밤 그 밤이 지나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솜사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