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던 날 나는 바에 있었어
두 눈을 보았어 그 눈을 빤히 쳐다보았어 붉으면서도 푸른 조명 아래였어 누군가의 눈을 그렇게 빤하게 쳐다본 건 너무 오랜만이었어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가 않았어 그때 갑자기 나는 내 두 눈을 번갈아 보던 두 눈이 생각났어 정말 뜬금없이 말이야 아주 오래전 반짝이는 눈으로 내 두 눈을 하나씩 움직이며 집중해서 쳐다보던 그의 두 눈이 생각났어 따뜻하면서도 마치 나를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로 생각하는 듯한 어미가 아이를 바라보듯 하는 그 표정의 그의 두 눈말이야 가만히 그저 바라보고 있지만 사랑이란 게 매질을 통과할 수있는 물질로 전환될 수 있다면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음파처럼 나에게 전달되는 기분이 드는 그런 눈빛 말이야 내가 한쪽 눈을 찡그리면 같이 따라서 찡그리던 그 두 눈이 생각났어 그래서였을까 나는 꽤 오랫동안 빤히 봤어 상대방의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어 그저 두 눈 눈동자 안구 각막 뒤의 수정체를 쳐다보았어 조금 건조한 표현이지만 맞아 나는 포유류의 아니 그것보다 더 범용적이지 맞아 척추동물의 안구를 바라본다는 느낌이었어 거기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이성의 안구 그래서 그건 객체화된 누군가의 이성의 두 눈동자 그래 그런 거야 그게 누군지는 중요치 않아 졌어 그저 그곳에 눈동자가 있고 내가 그걸 바라본다는 게 중요했어 가슴이 콩닥거리고 얼굴이 발그레해지기 시작했어 분명 그 어떤 관계성도 없는 그 수많은 눈동자들 사이에서 뭔가가 다가오는 두 눈동자들 일상 속에 바라보는 눈동자들과는 다른 그 안구들을 뭔가 채집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이상한 생각에 다다랐을 때 그 눈동자의 주인공이 내 옆으로 왔어 오! 오해는 하지 말아 줘 그가 스스로 움직인 건 아니야 장소가 협소해서 이리저리 자리를 재배치하다가 우연찮게 앉게 된 거야 그래서 양옆에 나란히 앉게 되었어 이제는 눈동자를 바라보기가 어렵잖아 그럼에도 나는 그의 옆모습을 쫓으면서 눈동자를 찾아냈어 어스 푸르무레한 불빛에 갇혀 담배를 피우는 그의 손길과 입김 사이에서 그의 눈을 바라보았어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날의 아니 그 순간의 나는 그러했어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어 화안 담배향기가 내 코 안으로 들어왔어 내가 살짝 찡그리자 미안하다는 듯 그는 이마를 살짝 움츠렸어 그리고는 내 귀에 손을 대고는, 아까부터 뚫어지게 나를 보던데요 환승연애한 전 남친이라도 닮았어요?라고 읊조렸어 분명 그 공간 속 음악은 시끄러웠는데 그의 목소리가 아마 그의 목소리가 중저음이라 저주파수라 잘 전달되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고주파수의 음량이 큰 상태에서 저주파가 잘 전달될 수 있을까 그래 aliasing이 생기는지 Nyquist 법칙으로 충분히 계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에 생각을 하고 있었어 나는 딴생각을 잘하는 편이니까 그러자 그가 다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이번에는 소리 없이 입모양만으로, 밖으로 나갈래요?라고 했어 나는 고개를 저었어 그러자 그가 다시금 내 귀에 중저음의 목소리로 설마 실어증은 아니죠?라고 하더라고 내가 다시금 고개를 젓자, 내가 좋아하는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이 딱 당신처럼 실어증 티를 안 내려고 사람들 앞에서 고개만 까딱까딱하던데 아님 말고요, 하더니 일어나서 자리를 옮기려고 하더라고 갑자기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도 의자를 부시듯이 박차고 일어나서 그의 팔목을 잡고는 그의 두 눈을 다시 바라봤어 맞아 그제서야 뭔가 다름을 느꼈어 가슴이 더 쿵쾅거리면서 얼굴이 화끈해졌어 그건 그저 그런 그 무언가 객체의 안구 한쌍이 아니었어 그런데 왜일까 갑자기 잃어버린 기억 속 그의 두 눈이 생각나며 눈물이 흘러내렸어 가슴을 앞뒤로 움직이고 싶은 욕구가 생길 정도로 깊은 눈물이었어 눈동자들 사이의 상관관계 속에서 마치 잃어버렸던 나의 즉자가 돌아온 듯 나는 빙글 돌며 공간을 날아다니다가 지금으로 돌아온 코마 환자처럼 그 순간 그렇게 와락 쏟아냈어 왜였는지는 모르겠어 그는 그저 나를 이끌고 그 공간의 입구에서 나갔어 지하여서 전혀 몰랐는데 장대비가 쏟아지더라고 그와 나는 처마 밑에 나란히 섰어 그는 담배를 새로 하나 꺼내더니 나에게 건네더라고 나는 사실 담배를 피워 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그냥 정말 그냥 그 담배를 잡고 그가 붙여준 불씨를 느끼며 폐부 속으로 담배 연기를 빨아드리려고 해 봤어 콜록 으 목구녕부터 폐 속 가득 형용할 수 없이 마치 50도가 넘는 백주를 넘기듯 따갑고 울렁거렸어 그렇지만 죽지는 않겠지라며 그의 두 눈을 바라보며 다시금 연기를 빨아드렸어 그가 담배 처음이에요?라고 왜 난데없이 다정하면서 부드러운 어투로 말을 하는지 나는 크게 콜록 거리며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자 그는 내 손에 담배를 빼앗아 장대비 그 사이로 던져서 하수구 어딘가로 떠내려가는 길거리의 쓰레기 중 하나로 만들어버렸어 멍하니 떠내려가는 그 담배꽁초를 바라보니 뭔가 서글픈 감정이 사라졌어, 고마워요, 그제서야 말이 입 밖으로 꺼내져서 마치 밧줄 끝에 매달린 작살을 꺼내 올리듯 나오더라고 그러자 그가 내 왼손을 잡았어 따뜻했어 그랬어 그리고 음 끝이야 서로 연락처나 이름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 잠깐 빗소리를 함께 손을 맡잡고 들은 게 다야 내가 화장실을 다녀오자 그는 사라졌거든 그냥 그랬어 그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