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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유선 Oct 02. 2022

주짓수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2화 홀린 듯 조율이 시작되다

주짓수를 어떻게 시작했느냐는 질문을 가끔 듣는다. 대중가요 가사 같은 ‘우연 같은 필연’이란 답보다 더 적절한 것은 홀린 듯이 시작했다는 표현이겠다.     

 

체육관을 방문한 첫날의 느낌을 나는 영화 ‘쉘 위 댄스’의 주인공 스기야마가 댄스 교습소를 방문했던 장면을 들어 말하고는 한다. 사십 대의 직장인 스기야마는 무료한 기분으로 통근 기차를 타고 가다 우연히 시선이 머문 열린 창문 사이로 보이는 아리따운 춤 선생을 발견하다. 그러고는 한걸음에 댄스 교습소로 발걸음을 향한다. 내 모습이 딱 그랬다.

      

차이가 있다면 체육관 방문 첫날 나를 매료시킨 것은 사람이 아니라 주짓수 간판. 흰색 바탕에 까만 글씨 석 자가 적혀있는 간판이 나에게는 섹시해 보이기까지 했다. 군더더기 없이 새까만 글씨만 적혀있는 것이 오히려 믿음직하고 든든해 보였고, 난 그 강하고 듬직한 느낌에 끌렸다.

      

삶에 지치고 사람에 지쳐서 몸과 마음의 균형이 다 흐트러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원래 있던 대로 맞추고 조이는 '조율'이다. 고난 뒤에 더 성장한다는 외상 후 성장? 욕심은 금물이다. 일단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조율이 간절했던 나는 나를 다시 조이고 맞출 공간이 필요했다. 격투기라면 한 번도 체험해 본 적도 없고 그 비슷한 무엇도 해 본 적도 없지만 나는 내가 필요한 것을 알고 있었다. 영화 쉘 위 댄스 속 스기야마가 통근 기차에서 내려 한달음에 댄스 교습소로 달려갔던 것처럼. 나도 한 걸음에 체육관을 향해 갔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오랫동안 찾다가 발견하면 없던 실행력이 생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발견만 해도 벌써 마음속에서는 조율이 시작된다.     


주짓수를 하는 사람들을 크게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그룹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주짓수 체육관에서 일어나는 조율을 설명하기 위해 개념적으로 구분해 보는 것이다. 이 두 그룹 사이에서 주고받는 에너지로 조율이 일어난다. 이 그룹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고 동시에 유동적이다. 첫 번째 그룹이 두 번째 그룹이 될 수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첫 번째 그룹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큰 사람들이다. 어려서부터 운동에 소질이 있거나 골격이나 유연성이 좋아서 움직임에 관심도 많고 잘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고, 꾸준한 연습으로 능력치를 끌어올린 사람들도 있다. 주짓수 체육관에는 큰 에너지를 발산하고 교류하는 움직임이 익숙하고 즐거운 사람들이 있다. 이 그룹에 속해있는 사람들의 에너지는 체육관의 공기를 데우고 체육관의 구석구석을 비추고 생기를 불어넣는다.

     

두 번째 그룹은 조율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유야 다양하고 정도에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몸과 마음의 균형이 흐트러져서 회복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첫 번째 그룹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흐트러진 균형을 잡으려면 커다란 에너지가 필요하다. 자신만의 에너지로는 안 된다. 균형이 많이 흐트러지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불안정해 보이거나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의 큰 에너지가 필요하기도 하다. 그런 큰 에너지가 있는 곳이 주짓수 체육관이다.

      

조율이 필요한 사람들은 체육관에 가득 채워져 있는 에너지로 흐트러진 몸과 마음을 조율한다. 그렇게 충분히 조율이 되면 두 번째 그룹에 있던 사람들이 첫 번째 그룹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또 조율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된다. 물론 반대로 첫 번째 그룹에 있던 사람들이 조율이 필요해지기도 하다. 예기치 못하는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 아무리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사람도 균형이 흐트러지는 법이니 말이다. 

      

주짓수 체육관에는 조율을 해줄 수 있는 사람과 조율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조율해주고 균형을 찾아준다. 조율이 필요한 사람들, 그 공간과 조율이 가능한 사람들은 그 공간에 홀린 듯이 빨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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