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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블루 Feb 09. 2024

경계선 인격장애를 고치는 이야기

마음을 고치는 이야기

경계선 인격장애는 마음의 병 중에서도 고치기 어려운 병으로 알려져 있다. 


치료자들이 이 병을 고치기 어렵다고 하는 이유는 경계선 인격장애를 가진 분들의 마음은 사막의 모래 같아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단단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좀 쌓았다 싶으면 무너지고 또 무너진다. 


마음의 통합이 어려워서 그렇다. 한 사람 안의 다양한 생각, 감정, 사상 등이 응집성이 강할수록 마음의 통합이 잘 이뤄졌다 할 수 있는데 경계선 인격장애가 있으면, 극단적인 선과 극단적인 악, 천사와 악마의 극성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긴장감을 만들어 내고 결국 그 긴장감으로 문제가 생긴다.  마음을 지키는 구조가 내적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내리는 것이다.   

 

경계선 인격장애는, 감정적이고 극적인 성격장애 범주인 B군 성격장애의 하위 유형이다. 아래 특성 중 5가지 이상의 항목이 충족되는 경우에 해당된다.

(1) 실제적인 또는 가상적인 버림받음을 피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

(2) 극단적인 이상화와 평가절하가 특징적으로 반복되는 불안정하고 강렬한 대인관계 양식

(3) 정체감 혼란: 자아상이나 자기지각의 불안정성이 심하고 지속적이다

(4) 자신에 손상을 줄 수 있는 충동성이 적어도 2가지 영역에서 나타남 (예: 낭비, 성 관계, 물질 남용, 무모한 운전, 폭식)

(5) 반복적인 자살 행동, 자살 시늉, 자살 위험 또는 자해 행동

(6) 현저한 기분 변화에 따른 정서의 불안정성 (예: 간헐적인 심한 불쾌감, 과민성, 불안)

(7) 만성적인 공허감

(8) 부적절하고 심한 분노를 느끼거나 분노를 조절하기 어렵다

(9) 스트레스와 관련된 망상적 사고나 심한 해리적 증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낸다.      


상담실에 찾아오시는 분들 중에 충동성, 혼란감, 자살사고 등이 있다며 본인이 경계선 인격장애가 아니냐면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 진단을 해 보면 조울증이나 다른 성격장애로, 대개는 감정 조절의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진단이 된다. 실제 진단되는 경우는 많지는 않다는 말이다. 감정 조절에 극단적 어려움을 겪는 부분에서 조울증과 상당히 유사하나 경계선 인격장애는 '현실검증력'이 대체적으로 유지된다는 것에서 조울증과 구분된다.


경계선 인격장애 병리의 핵심은 버려질 것 같다는 두려움, 유기불안이다. 경계선 인격장애 환자들이 느끼는 불안은 유기불안과 깊은 관련이 있다. 목숨이라도 바칠 것처럼 완벽하다고 치켜세우던 애인이나 친구를 천하에 보잘것없는 사람처럼 깔아뭉개기도 하고, 너무 행복하다가 너무 불행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죽어버리고 싶어 질 만큼 진폭이 큰 불안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경계선 인격장애의 모습은 하룻밤 데이트 파트너였던 여성이 하룻밤 상대였던 남성에게 다시 만나기를 거절당하자 극도의 정신적 혼란을 일으켜 남성의 삶을 망가뜨리는 모습으로 자주 묘사되곤 한다. 여성에게 유병률이 높고 성적 문란함이 이 병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별을 요구받았을 때 심각한 정신적 혼란을 겪는 것은 이별 통보가 이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유기불안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약물치료로는 경계선 인격장애를 고치기 어렵고 정신치료가 수반되어야 한다.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정신화(mentalization) 중심의 치료. 온전히 수용할 때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시키는 변증법적 행동치료가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계선 인격장애 치료에서 키워드를 하나만 말한다면 ‘통합’이다.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분들의 마음은 모래와 같이 뿔뿔이 흩어지는 경향이 있다. 심각한 충동성의 문제가 생겨 집안이 발칵 뒤집힐 정도가 되어도 가족 중에 누군가 자신에게 언짢은 이야기를 하면 참기를 힘들어한다.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고 자신의 충동을 다스려서 맥락 안에서 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이 이분들에게는 상당히 어렵다. 


다양한 입장을 연결하여 큰 그림의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염려되는 때도 있다. 상대방의 입장을 종이로 가리고 못 보고 있는가라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충동이 올라오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그 충동을 만족시켜야 하기도 한다. 보통의 겨우 충동을 조절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 예를 들어 상식, 도덕, 규칙 또는 타인의 시선 등이 마음속 어지러움을 정리해내지 못한다.     


경계선 인격장애의 경계선(borderline)은 신경증과 정신증의 경계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경증과 정신증에 속하는 증상을 일부 나타내며 그 어느 쪽에서도 속하지 않는 중간집단을 지칭하기 위해서였다.


망상이나 환각은 드문드문 나타나지만 현실 검증력은 일시적으로만 저하되며, 충동적이고 감정 조절이 어려운 경우에 경계선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러다가 이러한 증상을 가진 분들에게 특징적인 성격구조적 결함이 있다고 주장이 제기되면서 경계선 인격구조(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치료 중에 치료를 방해하는 오해가 생기기도 하는데, 치료진이 자신을 무시한다거나 싫어한다거나 거짓을 꾸미고 있다며, 불안한 자기 이미지나 상대에 대한 불신을 투사하곤 한다.     


방어기제가 심해서 자기 마음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에는, 자기 안에 서로 다른 마음이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 그리고 그 서로 다른 마음들이 소통하도록 돕는 것도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경계선 인격장애 환자들은 어린 시절 충격적인 외상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정신적, 언어적, 신체적 아동학대, 양육태만, 부모 상실이나 이별을 경험한 경우들이 많다.       


치료자들이 이분들을 대할 때 취해야 하는 치료적 태도는 중립적이고 안정적인 태도이다. 극단적인 감정의 변화를 따라가며 맞장구치듯이 공감해 주는 것은 경계선 인격장애를 본질적으로 다루는 태도로는 적절하지 않다. 단, 정신증이 발현되어 현실감각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에는 지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권장된다.     

경계선 성격장애와 같은 성격장애는 최소 1년 이상의 꾸준한 정신치료가 필요하고, 정신치료를 꾸준히 해서 인격장애로 인해 발생되는 우울감이나 불안감 등을 사전에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에세이 '마음을 고치는 이야기'는 정신과 치료실에서 마음을 고치는 이야기로, 

건강선교잡지 『건강과 생명』에 기고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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