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베스트셀러 순위를 역주행하고 있는 책이 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오늘 기준 교보문고 소설 분야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1947년에 발행하고, 우리나라에 책사랑 김화영 교수 번역본이 나온 것이 1992년이니 보통 역주행 아니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스테디셀러이기는 하지만 갑자기 이렇게 베스트셀러가 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학부에서 불문학을 전공하면서 산 페스트, 책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한 책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거의 읽지 않아서였다.
"4월 16일 아침, 의사 베르나유 리유는 자기의 진찰실을 나서다가 층계 참 한복판에 죽어 있은 쥐 한 마리를 목격했다."라는 소설 첫 문장 때문이었다. 진찰실 앞에 죽은 쥐라니. 음산한 기운을 느껴서인지 아무리 읽어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이방인>처럼 빠르게 읽히지 않았다. 너무 무겁고 어두웠다. 어젯밤, 하필 어젯밤이 4월 16일이었다. 책장에 꽂힌 채 나이만 먹고 있던 책을 꺼냈다.
소설 페스트에서 역병이 2차 세계대전을 상징한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다. 카뮈는 항독 지하 시절과 해방 직후까지 가장 권위 있는 일간지 <전투>의 편집장이었다. 몸이 약해 입대 거절을 당했던 카뮈는 총을 들고 싸우지 못하고, 펜을 들고 싸웠다. 전쟁의 공포 속에서 희망과 감동의 메시지를 전하던 그는 최전선에서 글로 싸웠던 경험을 <페스트>에 쏟아부었다.
페스트도 전쟁처럼 일상을 마비시키고 사람의 생존을 위협하기에 그의 '전투'경험을 전달하는데 페스트라는 소재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고 훌륭했다.
코로나 19로 일상이 마비된 지금, 이 책이 많이 읽히는 데는 상황적 공통점 외에도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페스트가 퍼지고 난 후 사람들이 보이는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 흥미롭다. 코로나 19가 전 세계에 퍼지고 난 후,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다. 죽음을 맞는 사람,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병과 맞서 싸우는 사람, 그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
소설은 페스트가 힘을 잃고, 사람들이 '죽은 페스트'를 기뻐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사람들은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아이들은 폭죽놀이를 한다. 페스트가 죽는다는 결말은 우리가 너무나도 바라는 결말 아닌가.
카뮈는 이 소설에서 극한의 고통에서도 "성찰하고 침묵하고 고통을 분담했던 사람들의 이미지"를 제공하려고 했다. <페스트>가 많이 팔리고 있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 성찰과 침묵, 또 고통의 분담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죽은 코로나 19'를 기뻐할 날이 오기를, 전 세계 발이 묶여 고통받는 이들이 무사하기를, 고통 중에도 의미를 찾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