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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Sep 13. 2021

지금 아니면 못 산다는 말에 놓쳐버린 진짜 지금의 것

포모 증후군

지금 아니면 못산다는 말에 내가 놓쳐버린 진짜 지금의 것

고립공포감을 아시나요

저는 포모증후군에 걸렸습니다


얼마 전에 뉴스를 보다가 어떤 증상을 나타내는 단어를 들었는데, 설명을 듣고서 '아, 이거 정말 나잖아?' 생각했다. 오늘 그 단어가 생각이 안나서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다시 발견했다. 바로 포모증후군. 영어로는 fomo sydrome이라고 한다. 주요한 흐름을 놓치거나 자신만 주류에서 소외되어 있는 것 같은 공포를 나타내는 일종의 고립공포감이라고 한다. ‘Fear Of Missing Out’의 약자인 포모(fomo)는 원래 마케팅 기법이었다. 남들은 다 산 제품이니까 더 늦기 전에 사라는 식의 광고들. 홈쇼핑을 보면 많이 나오는 '매진 임박', '기간 한정',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지금이 아니면 더는 못사요'와 같은, 마음을 왠지 조급하게 만들어버리는 마법의 문장들. (2000년대 초반에 포모증후군은 질병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본 뉴스는 주식과 비트코인에 관한 거였다. 요즘 전 국민이 정말 미친듯이(!) 주식과 비트코인에 몰두하고 있는데, 그 열풍의 이면에는 바로 이런 포모증후군이 있다고. 주식을 할 성격은 절대 못된다고 30년 평생을 생각했던 나도 33살이 돼서 뒤늦게 아주 조금씩 주식을 사기 시작했는데 역시 나만 뒤쳐진다는 불안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새해 목표 : 주식 시작하기

추가된 목표 : 주식 보지않기


작년 새해 목표에 '재테크 책 한권 돌파'를 적어두고는 결국 지키지 못했고, 올해 새해 목표에는 '주식 시작하기'를 적었다. 주식 계좌는 만들었지만, 반년이 다 지날 때까지 과연 내가 시작할 수 있기는 할까 망설였다. 언제나 주식으로 버는 돈은 꽁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 책상에 지갑이라도 두고 오면 (누구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다음 날 출근해서 내 눈으로 책상 위에 고스란히 놓여있는 지갑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불안해하는 나에게 당연히 주식은 불로소득이 아니었다. 시간을 쪼개서 들여다보고 신경쓰게 되는 엄청난 노동의 댓가처럼만 느껴졌다. 그래서 거기에 진입할 자신이 없었는지도... 그러면서도 계속 걱정은 한다. 정말 나는 나중에 어떻게 하지? 나만 이렇게 뒤쳐지는 건가? 남들은 다 잘 따라가는데 나만 소외되어 있는 건 아닌지. 평소에도 디폴트로 이런 걱정을 가지고 있는데 주식 열풍이 부는 요즘은 오죽했겠나.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던 즈음에 종자돈을 모아 몇 개의 주식을 샀다. 나름 지조를 지킨다고 남들이 다 사라는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나 산업군의 주식을 골라담았는데 날이 갈수록 마이너스 수식을 경신하고 있다. 주식은 장기전이라고, 시간이 지나고 보면 언젠가 오른다고 하는데, 그 말을 믿으면서도 계속 어플을 확인하는 내가 참 한심해질 때가 많다. 아예 어플을 지우면 덜 볼테니 낫겠다 싶었는데, 어느새 다시 네이버에 들어와서 내가 산 주식종목을 검색해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 새해 목표에 '주식 시작하기'를 적어놓고, 이제는 그 목표 밑에 '주식 보지않기', '없는 셈 치기'라고 적어놨다. 나는 정말 다짐하기의 고수가 아닐까.



나는 학창시절에 늘 학교와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다. 내가 타고 다니는 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지각을 할 때면 그래서 더 불안했던 것 같다. 이 버스 안에 같은 교복을 입은 사람이 없으니까, 늘 나만 지각을 하는 걸까 봐. 헐레벌떡 언덕길을 뛰어오르지만, 늘 아슬아슬하게 교문에서 선생님께 잡히기(?) 일쑤였다. 그러면 곧이어 익숙한 지각꾼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럼 그제서야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 불안의 대부분은 아마도 ‘혼자'라는 생각이 만들어낸 열등감 때문인 것 같다. 못난 생각이라는 걸 알지만, 슬프고 안 좋은 일도 누군가와 함께 겪으면 견딜만 했다. 외딴 여행지에서 추위에 덜덜 떨며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릴 때, 이 버스가 여기 서기는 하는 건가 불안하다가도 함께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생기면 힘이 났다. 깜깜한 밤길을 걸을 때도 마찬가지.


대학교를 갈 때도, 회사에 들어갈 때도 그랬던 거 같다. 언제나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지만,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괜찮은 일처럼 느껴졌다. 내가 무언가에 실패했다고 느낄 때나 나만 손해를 보고 있다고 느낄 때, 뒤쳐지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내 곁에 괜찮은 사람이 많으면 조금 위안이 됐다. 못난 생각인 걸 아는데, 내가 위안을 얻는 방법이 그랬다.


포모증후군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늘 주변에 휩쓸리고 영향을 많이 받는 내 모습이 바보같지만, (역시나 포모증후군 보유자답게) 이런 증후군이 있는 거라면 나만의 문제는 아니구나, 누구나 고민하고 걱정할 수 있는 부분이구나, 하고 안심해버리는 것. 언젠가 현대인이 걸리는 '증후군'에 대해서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는 그런 마음이 컸다. 내가 그 증후군을 극복하는 방법은 알려주지 못하더라도 그 증후군과 함께 살아가는 하루가 슬픔만으로는 가득차게 하지는 말아야지. 나에게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불안해서 일단 시작을 하기는 했는데, 막상 주식을 해보니까 이건 내 성향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계속 하기는 할 건데... 불안을 없애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조금씩 나만의 방법을 찾아가야지. 주식말고 지금 내가 우선적으로 내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일기장에 적어 본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 잘 맞는 옷이 있는 법이니까.


네고왕을 보고 홀린 듯이 주문했던 화장품은 (제품은 참 좋지만) 나랑 맞지 않아서 아무래도 곧 이별할 것 같고, '대박혜택', '마지막 기회'라는 말에 끌려 구매한 OO포인트 교환권은 지금 회사가 망하게 생겨 쓰지 못하고 있다... 막차를 타야할 것 같은 불안감에 했던 일들은 대개 후회를 조금 더 남기는 편인 듯 하다. 선택에 대한 원망은 온전히 스스로에게 해야하는 거니까, 그 '속편함'을 위해 내 마음의 목소리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또 이렇게 일기장에 다짐왕의 레벨을 한 단계 더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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